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 출현할까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4.28 11:00
  • 호수 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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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정부가 디지털 화폐 전략 급수정한 배경은?…글로벌 금융체계에 새로운 변화 예상

4월7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가상자산 규제와 관련한 연설을 했다. 그는 과거 여러 차례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하지만 이번 연설에서는 중립적인 관점에서 미국 정부의 입장과 앞으로의 상황 등에 대해 상세히 밝혔다. 당장 큰 정책 변화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향후 본격적인 검토와 정책 수립 등이 가능함을 내비침으로써 디지털 자산을 둘러싼 환경에 근본적인 전환이 있을 수도 있음을 암시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 관련 현안에 대해 검토할 것을 요구한 점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연합뉴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시장이 최근 급성하면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의 출현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가상화폐 거래소 전광판ⓒ연합뉴스

메타 발표 후 스테이블코인 논의 본격화

이미 암호화폐를 포함한 디지털 자산은 폭발적인 증가 추세다. 5년 전 140억 달러에서 2021년 11월 3조 달러까지 증가했다. 디지털 결제는 편리함을 가져왔으나 ‘이중 지출’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디지털화된 일정량의 가상화폐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사용해 지불하고자 할 때 그만큼이 계좌에서 정확하게 차감돼 수취인의 계좌로 이체된다는 것이 보장되지 않았다. 때로는 같은 금액을 여러 번 사용해 다른 사람에게 돈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 디지털 결제를 둘러싼 과제였다.

이와 같은 문제는 비트코인의 등장으로 해결되기 시작했다. 암호화를 사용해 트랜잭션을 검증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한 비트코인은 분산 원장 기술의 개념을 활용해 이중 지출 문제를 해결했다. 이후 수많은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자산이 등장했다. 디지털 기술의 구체적 실현 정도로 이해되던 비트코인과 각종 암호화폐는 점차 본격적인 지불수단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의 가격은 시장에서 매우 높은 변동성을 보여 지불행위에 널리 사용되는 것은 쉽지 았았다. 또한 지불수단으로서의 암호화폐는 높은 수수료와 느린 처리 ​​시간이라는 한계를 아직까지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암호자산의 높은 변동성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됐다. 스테이블코인은 2019년 6월 페이스북(현 메타)이 스테이블코인 리브라(Libra)의 백서를 공개하고, 2020년 중 리브라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발표하면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EU 집행위원회의 출시 제지라는 암초를 만났다. 메타라는 빅테크 기업이 가상화폐를 발행하면 그 여파가 실물경제에까지 미칠 우려가 있으며, 자금세탁과 탈세에 활용될 우려가 크다는 점 때문이었다. G7, 금융안정위원회(FSB) 등 국제기구 역시 잠재 리스크를 억제할 수 있는 규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임에 따라 메타에 의한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2021년 말 잠정적으로 중단됐다.

기업에 의한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난관에 봉착하면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이하 CBDC)를 둘러싼 논의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CBDC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관련 연구가 본격화된 것은 2015년 영국 중앙은행이 중장기 연구과제로 일반 대중이 사용 가능한 CBDC의 발행 필요성을 제시하면서부터다. 무엇이 CBDC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정의되고 있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함에 따라 중앙은행의 부채로 인식되며, 형식적으로는 디지털 형태를 띠고 있는 화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CBDC가 보수적인 중앙은행 차원에서도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현금 이용 감소세와 더불어 경제의 디지털 전환 가속화가 진행되는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 더해 빅테크 기업의 시장 지배력과 데이터 집중을 바탕으로 한 글로벌 차원의 스테이블코인 등장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른 금융·경제 여건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막연한 가능성 차원으로만 논의되던 CBDC는 2019년 페이스북의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계획 발표로 인해 빅테크 기업들이 주도하는 지급결제 시장 혁신 가속화 방안이 빠르게 부상했다. 이에 대항하는 수단으로서 CBDC가 중앙은행들의 주요 정책과제로 대두된 것이다.

현재 CBDC는 발행·환수·유통 업무와 최종 이용자에 대한 대고객 서비스 제공 역할을 중앙은행 및 참가 은행 간에 어떻게 분담할지를 놓고 여러 가지 검토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비트코인과 같은 분산원장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과 중앙집중형 네트워크 기반의 기존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어 구체적인 형태 및 운영방안은 아직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CBDC 도입 시 중앙은행법에 CBDC 발행 근거를 별도 규정해 법적 기반을 확보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AP 연합

달러 중심의 국제 통화질서도 바뀔까

그러나 시중은행에 의해 수행되는 예금과 대체관계에 있는 CBDC가 도입됨으로써 은행의 자금 중개기능 약화, 통화정책 파급경로의 유효성 저하, 금융기관 및 시스템의 건전성 저하 등이 유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CBDC 도입이 달러화 중심의 국제 통화질서에 변화를 초래하거나 일부 신흥국 통화가 달러화 등 주요국 통화로 대체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본격적인 CBDC 발행은 중국이 현재 실제 환경에서의 시범운영을 확대 실시하면서 주요국 중 최초로 2022년 중 도입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는 가운데, 유럽중앙은행(ECB)도 CBDC 도입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디지털 유로 프로젝트에 공식 착수한 상태다. 한국은행의 경우 2021년 8월부터 CBDC 발행과 관련한 모의실험을 수행하고 있으며, 법률적 이슈를 검토하고 있다.

CBDC는 1971년 8월 미국의 금 태환 정지 선언으로 인한 금본위제 폐지 이후 다시 금융체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직은 미래의 일이지만 CBDC는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CBDC가 실제로 도입될 경우 기존의 거시 안정화 정책 및 민간 신용 창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려와 더불어 금융 시스템을 좀 더 평등하고 접근 가능하며 포용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 개인정보 보호를 포함하면서도 어떻게 국가안보 및 금융범죄와 관련된 위험을 관리하도록 설계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검토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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