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 딜레마’ 빠진 前검찰총장 윤석열 당선인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2.04.2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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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관련해 ‘중립’ 유지하자 檢 내부서도 尹 비판
민주 ‘검찰공화국’ 공세 의식해 ‘전략적 모호함’ 선택했다는 분석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친다)이다.”

지난 2021년 3월3일,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구고검·지검을 방문하는 길에 취재진을 만나 이같이 말했다. 그는 “(‘검수완박’은) 헌법 정신에 크게 위배되는 것이고, 국가와 정부의 헌법상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며 “부정부패 대응은 적법 절차와 방어권 보장, 공판중심주의라는 원칙에 따라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총장 시절 ‘검수완박’을 맹비난했던 윤 당선인이 최근 들어서는 관련해 말을 아끼는 모양새다. “국회가 해결해야한다”는 게 윤 당선인 측의 입장이다. 이를 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윤 당선인이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공약 파기’나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선 윤 당선인이 ‘검수완박’을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윤 당선인이 ‘검수완박’ 정국 전면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21년 9월9일 강원 춘천시 금강로 국민의힘 강원도당에서 열린 강원선대위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21년 9월9일 강원 춘천시 금강로 국민의힘 강원도당에서 열린 강원선대위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수완박’ 비판 대신 중재 나선 尹

25일 여야는 ‘검수완박’을 두고 강하게 충돌했다. 당초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받아들였던 국민의힘 측이 입장을 번복하고 재협상을 요구하면서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 법안을 예정대로 이번 주 안에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검찰까지 공개반발하며 ‘검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김오수 검찰총장은 2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간담회를 열고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은 법안의 시행시기만 잠시 늦춘 것에 불과하다”며 “검찰은 중재안에 동의할 수 없고 명확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했다.

‘검수완박’을 두고 여야와 검‧경이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으로선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악재에 직면한 셈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당선인 측은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검찰총장 시절 ‘검수완박’을 강하게 비판했던 모습과는 대조된다.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은 25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서 진행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에서 “윤 당선인은 일련의 과정을 국민이 우려하는 모습과 함께 잘 듣고 잘 지켜보고 있다”는 짧은 입장을 전했다. 이어 “취임 후 헌법가치 수호를 위해 대통령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당선인 측이 ‘검수완박’ 관련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 당선인이 침묵을 유지하자 검찰 내부에서는 윤 당선인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면서 사표를 내고 정치권에 입문한 윤 당선인이 사실상 사태를 방관했다는 비판이다. 부장검사 출신의 서초동 한 변호사는 “(검찰총장 출신으로) ‘제 식구’를 감싸는 문제가 아니라 소신의 문제다. (윤 당선인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검수완박’을 기필코 막아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며 “당선인 신분이 됐다고 스탠스(태도)를 바꾸는 것은 실망스러운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 ‘검찰공화국’ 프레임에 말려들 것 우려

일각에선 윤 당선인이 민주당의 ‘검찰공화국’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발언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 이어 오는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윤석열 정부=검찰공화국’이란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 당선인이 ‘검수완박’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가는 민주당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진단이다.

법조인 출신의 국민의힘 한 의원은 “검찰총장과 대통령 후보, 당선인은 자리의 무게가 다르다. 당선됐다고 (소신이) 바뀌었다는 건 무리한 비판”이라며 “당선인이 조금 더 강하게 ‘검수완박’을 비판했다가는 민주당의 ‘발목잡기’만 세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검수완박’을 둔 당선인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 지도부가 충분히 윤 당선인의 구상을 대변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당선인은 ‘검수완박’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지만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입장 번복’을 윤 당선인의 의중이라 해석하는 모양새다. 향후 국민의힘이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윤 당선인이 구상한 내각과 정책에도 협조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25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국민의힘을 향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당선 이후 국회에서 가장 큰 이슈에 어렵게 의장 중재로 합의한 것을 헌신짝 내던지듯 파기하면 앞으로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는 민주당의 협조를 일도 받지 않겠다는 것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합의를 파기하는 즉시 검찰개혁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킬 것임을 미리 밝힌다”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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