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딸 재산 비공개’ 조항 뒤에 공직자 재산 53억원 숨었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2.05.02 07:30
  • 호수 1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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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 공직자 재산공개 대상
 결혼 직전 재산 이전으로 축소 신고 가능성 제기돼

‘출가한 딸은 재산을 공개하지 않는다.’ 공직자 재산공개의 근거 법령이 정한 원칙 중 하나다. 아들과 달리 딸은 결혼하면 재산공개 대상에서 빠지는 것이다. 이처럼 자녀의 성별에 따라 다른 기준에 대해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선 공직자가 결혼한 딸에게 재산을 넘기는 방법으로 재산을 축소 신고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공직자 재산공개의 법적 근거인 공직자윤리법은 재산 등록대상을 규정하고 있다. 그 대상은 공직자 본인과 배우자, 직계존속, 직계비속이다. 여기에는 ‘혼인한 직계비속인 여성과 외증조부모, 외조부모, 외손자녀 및 외증손자녀는 제외한다’는 문구가 덧붙어있다. 이에 따라 결혼한 딸과 그 자녀는 재산을 공개할 필요가 없다.

얼핏 생각하면 별도 생계를 꾸린 여성의 경제적 주도권을 존중하는 원칙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원칙은 아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남성은 결혼해 분가해도 일정 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면 재산을 공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인사혁신처의 ‘정기재산변동신고 안내서’에 따르면, 자녀가 재산고지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독립생계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 조건이란 재산 신고일(2021년 12월)로부터 1년 이상 별도 세대를 구성해야 하고, 소득이 독립생계 기준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득 기준은 1인 가구는 월 116만원, 4인 가구는 307만원이다. 아들의 경우 혼인 유무와 상관없이 이 조건을 지켜야 재산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가령 문석진 서울 서대문구청장 장남은 독일에서 취업·결혼하면서 독립생계를 인정받아 2018년 재산고지 거부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휴직하면서 소득이 없어지자 올해 다시 재산공개 대상이 됐다.

ⓒ일러스트 김세중
ⓒ일러스트 김세중

성별 따라 다른 조건…“‘딸=출가외인’ 관념 드러내”

딸의 재산은 결혼과 동시에 공개 대상에서 빼주는 이유가 뭘까. 인사혁신처 재산심사기획과 관계자는 “과거부터 그래 왔기 때문에 이유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시사저널이 공직자윤리법 연혁을 살펴본 결과, 결혼한 딸에 대한 재산 비공개 조항은 법이 최초 제정된 1983년부터 유지돼 왔다. 당시에는 재산등록 대상에 관해 ‘출가한 여(女)를 제외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표현만 바뀌었을 뿐 내용은 다를 바 없다.

시민단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는 “호주제가 폐지된 지 10여 년이 다 됐는데도 재산공개에 있어 성차별적인 기준이 남아있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김재일 단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과거 남아선호 사상이 일반적일 때 딸은 결혼하면 출가외인이라는 식의 관념이 깔려있다 보니 재산공개 대상에서 빠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공직자윤리법 개정 권한을 가진 국회와 개정안을 낼 수 있는 정부가 정작 재산공개 대상이 되다 보니 특별히 건드려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시사저널이 올해 공개된 정부·지자체 공직자 및 국회의원의 재산내역을 분석한 결과, 딸이 있는 사람은 총 1231명이었다. 이 가운데 혼인 또는 독립생계 유지를 이유로 딸의 재산을 공개하지 않은 사람은 161명(13.0%)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도 약 절반인 84명은 원래 딸의 재산을 공개해 왔지만 올해부터 비공개로 돌렸다.

문제는 이 같은 재산 비공개 조항이 공직자의 재산 축소신고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딸이 결혼하게 되면 딸의 소유분만큼 재산을 줄여 신고하게 된다. 이때 재산 일부를 딸 명의로 돌리거나 증여하게 되면 실제 재산 규모를 파악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명의만 바뀌었을 뿐인데 드러나는 총 재산액은 적어 보이는 착시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일례로 하병필 경남도 행정부지사(현 경남지사 권한대행)의 경우, 지난해 장녀가 결혼하면서 장녀 명의의 재산을 올해 등록 대상에서 뺐다. 그러면서 기존에 공개했던 장녀 재산 9억7000여만원을 ‘감소액’으로 신고했다. 이에 따라 총 재산은 작년 대비 감소액(18억원)이 증가액(15억원)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그 결과 하 부지사의 올해 총 재산은 작년 신고액인 82억원에서 약 3억원 줄어든 79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하 부지사를 포함해 정부·지자체 공직자 및 국회의원 중 딸의 결혼으로 재산을 낮춰 신고한 사람은 총 40명이다. 이들이 비공개한 재산가액은 모두 53억7000여만원에 달한다.

 

부모와 같이 살아도 ‘독립생계?’

독립생계 조건에도 맹점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딸 다혜씨가 그 예다. 지난 2018년 곽상도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은 다혜씨가 그해 4월 남편에게 증여받은 서울 구기동 빌라를 3개월 만에 판 사실을 공개했다. 해당 사실은 문 대통령의 재산공개 내역에서 확인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다혜씨의 재산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혜씨는 혼인 상태이기 때문에 1차적으로 재산공개 대상은 아니다. 그런데 재산고지 거부 이유는 ‘독립생계 유지’로 밝혔다. 여기에 관해서는 이견의 소지가 있다. 다혜씨는 2020년 말 태국에서 아들과 함께 입국한 뒤 청와대 관저에서 대통령 부부와 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독립생계 유지 조건 중 하나인 ‘별도세대 구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다.

소득세법과 판례 등에 따르면, 혼인을 했더라도 부모와 한지붕 아래서 살 경우 별도세대의 구성요건을 인정받기 힘들다. 같은 집에서 부모의 지원을 받는다면 생계를 달리한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반면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공직자윤리법은 주민등록표상 별도세대 구성 상황을 근거로 독립생계 유지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실거주 여부까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즉 부모 집에 얹혀살아도 주민등록표상 주소가 다르면 독립생계 유지 조건을 충족한다는 것이다. 김예찬 활동가는 “대통령의 딸도 재산 비공개 조항 뒤에 숨었다는 비판이 있다”며 “비공개 조항이 재산을 숨기는 꼼수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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