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의 미래’ 아역 배우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 조용신 뮤지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01 13:00
  • 호수 1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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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기 아역 배우, 백스테이지에서 심리 관리 중요
국내 공연계 아동·청소년 활동 조건 비약적으로 발전

2012년 영화 《더 임파서블》로 데뷔해 《캡틴 아메리카》 《어벤져스》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 영화배우 톰 홀랜드(1996년생)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춤을 잘 추는 소년이었고 12세 때부터 이미 런던에서 만들어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을 맡았던 아역 배우 출신이기도 하다. 그가 이후 영화배우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것도 무대를 지켜본 캐스팅 디렉터의 제안 덕분이었으니 무대에서 아역 배우 활동이 훗날 인생의 길을 확실하게 다져준 결과를 낳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세 번 공연된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 ‘빌리’의 캐스팅 가이드 라인에 따르면 ‘만 8~12세, 키 150cm 이하, 변성기 이전의 탭댄스, 발레, 아크로바틱 등 춤에 재능이 있는 남자 어린이’로 규정되어 있다. 작품의 타이틀 롤인 데다 드라마가 빌리의 성장 서사에 맞춰져 있고 공연 전체 시간 내내 고난도의 춤과 연기, 노래를 모두 소화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빌리’를 찾는 오디션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고 8개월 이상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통해 최종 선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로얄 셰익스피어 컴퍼니 제공

주연으로 등장하는 꿈나무들의 경로 

아역 배우가 중심인 또 다른 해외 작품으로는 《마틸다》가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극단이자 《레 미제라블》을 만들었던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가 로알드 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7년의 개발 과정을 거쳐 무대 뮤지컬로 제작한 작품이다. 독서를 취미로 가진 5세 소녀 마틸다는 겉으로 볼 때는 무표정하고 무뚝뚝하게 보이지만 내면에는 호기심과 열정이 가득하고 특히 불의에 맞서는 정의로운 에너지가 넘친다.

《마틸다》 한국 공연이 2018년 초연에 이어 올해 10월 공연을 앞두고 현재 오디션 과정이 진행 중이다. ‘빌리’와 마찬가지로 작품의 서사를 책임지며 이끌어가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가진 여자 아이 ‘마틸다’를 찾는 중이다. ‘빌리’는 발레리노 유망주로 설정되어 있기에 몸을 쓰는 연기가 필수적이라면 ‘마틸다’는 극 중 나이가 5세지만 강하고 독립적인 멘털을 가진 소녀이기에 그 나이를 초월하는 표현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의 선발 과정을 통해 배역에 적합한 아역 배우들이 최종 낙점될 예정이다. 

한 작품에서 주인공 역할이라면 커다란 책임만큼이나 부담감이 생긴다. 따라서 성인 연기자들도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이러한 상황을 어린아이들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 있다. 단지 뮤지컬에 필요한 노래, 연기, 춤과 같은 기능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긴 오디션 과정을 견디는 정신력과 탈락과 합격을 오가는 멘털 관리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다. 

특히 그 아이들을 배우의 길로 안내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들은 바로 그들의 부모이기에 정서적인 안정을 도모하는 데 필요한 책임이 있는 것도 그들이다. 하지만 작품에 투입되는 순간 더 이상 어린아이들이 아니고 사회생활을 하는 프로페셔널이기 때문에 공연을 제작하는 프로덕션의 관리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 가령 《마틸다》의 담당 제작사는 오디션 진행 단계에서부터 향후 탈락자에게도 위로의 박수와 칭찬을 보낼 수 있도록 해당 부모들에게 직접 가이드를 주는 ‘페어런츠 브리핑(parents briefing)’ 행사를 열고 있다. 

ⓒ로얄 셰익스피어 컴퍼니 제공
ⓒ로얄 셰익스피어 컴퍼니 제공

또한 아동·청소년 배우들의 출연 역사가 깊은 해외 프로덕션에서는 아이들을 백스테이지 근거리에서 직접 보살피는 건 물론 대사 연습, 무대 위 등·퇴장의 동선 등을 챙겨주는 조력자를 둔다. ‘샤프롱(Chaperon)’이라는 직책의 이 업무는 두 작품뿐 아니라 《스쿨 오브 락》 등 또 다른 아역 배우가 많이 등장하는 해외 작품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샤프롱이란 보호자라는 뜻으로 ‘사교계에 처음으로 나가거나 미인대회 등에 나가는 젊은 여성들을 도와주는 주로 나이가 많은 여성’을 말하는데, 최근 우리나라 공연계에서 아역 배우들을 전담 관리하는 스태프를 통칭해 부르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주로 공연에 관심이 많은 20·30대 여성들이 맡는다. 

샤프롱의 임무는 아동·청소년 배우의 세심한 권익보호를 위해 꼭 필요하다. 샤프롱 스태프들은 각자 자신이 담당하는 아역 배우들을 연습장이나 공연장에서부터 부모로부터 인계받는다. 배우들은 하루 일정이 빼곡하게 짜여있기에 스케줄을 관리하는 매니저 역할을 기본으로 해야 하며 기간 중 신체적, 정서적 멘털 관리도 담당한다. 

특히 작품에는 성인 배우들의 부적절한 언어가 대사 중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는데 이를 연습이나 공연 중에 아이들이 직접 접하지 않도록 차단하는 역할도 맡는다. 뮤지컬뿐 아니라 《태양의 서커스》처럼 오랜 기간 해외에 체류해야 하는 투어 프로덕션의 경우에도 고등학생 이하 출연자들이 이 기간 동안 원래 다니던 학교에 출석할 수 없기에 아예 개인교사를 별도 채용해 수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을 필수 규정으로 마련하고 있다. 

뮤지컬 《마틸다》의 한 장면ⓒ로얄 셰익스피어 컴퍼니 제공

아동·청소년 전담 관리, 샤프롱이 보호한다

그럼에도 아역 배우 출신 중에는 화려했던 과거만을 추억하며 미래를 두려워하거나 실제로 이후 별다른 활동을 이어가지 못할 때 움츠러드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대다수의 아역 배우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린 나이에 큰 무대에 서는 것에 대해 부모 이상으로 강한 집착을 보이지만, 그중 일부는 성장하면 무대에 더 이상 서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느낀 나머지 주목받는 아역 배우로서의 현상 유지를 원하기도 한다.   

신체적으로 왕성한 성장기에 무대 조명을 받으며 늦은 취침 시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 성장이 더뎌져 성인이 되어 자존감을 잃어버리는 사례들도 있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을 돌봐주는 ‘샤프롱’도 존재하지 않는 때일수록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어린 시절에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지만 이후 상황에 적응하고 주변의 지속적인 관심과 계속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공연계는 아역 배우들이 활동할 수 있는 조건들이 완벽히 갖춰진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아역 배우들이 중심인 작품이 많이 늘어난 이유도 있지만 아동·청소년들이 문화예술을 직접 향유하고 실행하려는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예술적인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은 멀리 보면 우리 공연계에 꼭 필요한 자산이자 투자이기도 하다. 앳된 얼굴로 발레소년을 연기했던 톰 홀랜드가 여전히 전 세계 팬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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