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격전지] 국회의원 사심이 ‘순천의 역린’ 건드렸나…요동치는 시장 선거판
  • 정성환·박칠석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5.1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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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국회의원 입김 ‘사심 공천’ 논란…따논 당상서 격전지 ‘부상’
민주당 후보 ‘뒷전’…소병철 의원과 노관규 무소속 후보 대결 구도
선거구도 묘한 흐름, 反소병철 정서 극복이냐 vs 反소병철 정서 결집이냐 싸움

‘역린(逆鱗)’. 6월 지방선거판에서 불공정 경선 논란으로 ‘역린지화(逆鱗之禍)’의 위기에 몰린 곳이 있다. 전남 동부권 정치 1번지 순천시다. 민주당의 시장지방의원 공천 과정에서 석연찮은 결정이 이어지면서 공정성 논란이 제기되면서다.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혼란과 분열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된 지역위원장 소병철 국회의원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소 의원은 ‘터무니없는 허위사실’이라며 펄쩍 뛰고 있지만 순천시장 선거는 소병철 대 반(反)소병철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꼴인 중앙정치인의 ‘공천개입’ 논란이 순천시장선거에서 얼마나 표심을 흔들지 관심사다. 

7일 소병철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불공정 공천 규탄 집회하는 허석 순천시장 예비후보 지지자들. ⓒ페이스북
7일 소병철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불공정 공천 규탄 집회하는 허석 순천시장 예비후보 지지자들. ⓒ페이스북

민주, 反 소병철 정서·떠난 노관규와 힘든 싸움할 판

더불어민주당은 9일, 전남도의원 출신 오하근 후보를 순천시장 후보로 최종 공천했다. 하지만 민주당 경선에 지역 국회의원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사심공천(私薦) 의혹’에 휩싸이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경선 한쪽 당사자인 허석 현 순천시장은 경선에 승복했으나 외곽에 있던 노관규 전 순천시장은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에 당초 정치 지형상 민주당의 압도적 우위가 점쳐졌던 순천시장 선거 판세는 안갯속으로 빠져 들었다. 순식간의 판세 전복의 원인을 두고 일각에선 중앙정치인의 원칙을 저버린 사심이 배신감과 허탈감을 키워 ‘순천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순천은 2011년 4월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이후 19년간 민주당 후보를 배출하지 못한 곳이다. 지난 20대 총선에서는 민주당이 소병철 전 법무연수원장의 전략공천 카드를 내밀자 지역 정치권은 다시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정치적 맞수였던 노관규·서갑원 예비후보는 불출마와 출마 기자회견을 통해 한목소리로 “거대 기득권 세력 민주당 무리와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이 같은 전후 사정으로 지역민심 저변에는 중앙정치의 일방적 독주나 외부 개입을 거부하는 정서가 자리 잡고 있다. 이후 순천 선거에 외부 개입은 잦아들었다. 

본지의 취재와 지역정가에 따르면 이른바 ‘사심공천’의 실상은 이렇다. 자신의 보좌관 2명을 도의원과 시의원으로 단수 공천하는 등 도의원 6개 지역구 중 4명을 단수 공천자로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지난 2년 동안 소 의원 추종자로 불린 J, L, K 시의원을 당선 확률이 높은 ‘가’번으로 공천했다. 국회의원 선거때 지역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았던 전 도의원은 시의원으로 ‘나’번 공천을 주는 등 소 의원이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만을 남몰래 챙겨 줬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권리당원 명부 유출에 따른 부정 경선이 이뤄졌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민주당 후보로 최종 낙점된 오하근 후보는 순천시장 최종 경선에서 50.17%를 얻어 조직력이 앞선 허석 시장을 0.34%p 차로 꺾으며 파란을 일으켰다. 경선에서 패배한 허 예비후보는 당원명부 유출 의혹과 소병철 국회의원의 개입 의혹 등을 주장하며 중앙당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기각됐다. 허 후보는 9일 입장문을 내고 “시정에 복귀해 시민과 함께해온 민선 7기를 마무리하겠다”며 경선 승복을 선언했다. 그러나 허 시장은 소 의원에 대해선 ‘편파적 심판’으로 표현하며 날을 세웠다. 

그는 “2년 내내 시정의 발목을 잡은 사람, 경선 시작부터 끝까지 특정 후보를 비호하고 저와 다른 후보에 대해서 비토로 일관한 심판에 어필하기 위해 이의 신청했다”면서 “선수를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심판을 문제 삼은 것”이라고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또 “민주당을 끝까지 지킬 것이지만, 순천을 사상유례없는 폭압 정치로 갈라 치고, 고통 받게 한 소병철 의원에 대해서는 민주 시민과 함께 끝까지 저항할 것”이라고 소 의원을 직격했다. 막강을 조직력을 가진 현직 시장의 비수는 소 의원과 민주당으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11일 오후 순천 아랫시장 H미곡상회에서 한 시민이 시사저널에 실린 6·1전국지방선거  광역단체장 판세 분석 기사를 읽고 있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린 가운데 미곡상회에 모인 서너명의  60대 시민들은 순천시장 선거를 화제 거리로 올렸다. ⓒ시사저널 정성환
11일 오후 순천 아랫시장 H미곡상회에서 한 시민이 시사저널에 실린 6·1전국지방선거 광역단체장 판세 분석 기사를 읽고 있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린 가운데 미곡상회에 모인 서너명의 60대 시민들은 순천시장 선거를 화제 거리로 올렸다. ⓒ시사저널 정성환

이처럼 순천이 국회의원 공천 개입 의혹에 휘말리면서 민주당에 대한 지역 여론도 흔들리는 분위기다. 소 의원 지역위 사무실 앞에서는 줄세우기 공천을 성토하는 집회가 열리는 등 시민들의 분노 게이지가 급상승하는 모양새다. 11일 오후 찾은 순천 신흥 택지개발지구인 금당동에서 연향동에 이르는 거리 곳곳에는 진보당이 내건 ”전남은 막대기만 꽂으면 당선?“”싹쓸이 정치는 가라“는 현수막이 한껏 반민주당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순천 아랫시장의 한 미곡상회에 만난 60대 시민들은 지방선거 얘기를 화제로 올렸다. 시민 전창곤(65)씨는 “민주당이 대선에서 졌는데 경선과 공천을 보니까 원칙도 기준도 없었다”며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박아무개(63)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이번 순천시장 선거는 대선 분위기가 남아 있는 만큼 민주당의 낙승이 예측됐다. 그러나 경선 이후 민주당 대 반민주당 대결구도를 급변했다. 이렇게 된 데는 민주당이 자초한 꼴이다. 주변에서는 지역 국회의원 책임이 크고, 시중에선 이번 선거에서 도의원(오하근 후보)이 무소속 노관규한테 어려울 같다는 말이 무성하더라.”

전남 순천지역 시민단체로 구성된 순천시행의정모니터연대도 민주당의 순천시장 후보 공천 과정에 대해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참혹했다”며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순천시행의정모니터연대는 11일 논평을 내어 “6.1지방선거와 관련 더불어민주당의 순천지역 공천 잡음이 예사롭지 않다”면서 “개혁과 혁신은 없었고 기준은 모호했고 경선 참여자들은 의혹과 분노로 들끓고 있다”고 꼬집었다.

노관규 전 순천시장이 10일 오전 순천 남문터 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6.1지방선거 순천시장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노관규 후보 캠프
노관규 전 순천시장이 10일 오전 순천 남문터 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6.1지방선거 순천시장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노관규 후보 캠프

불공정 공천 반발 노관규 탈당·무소속 출마…‘태풍의 눈’

국회의원의 편파 심판 논란 속에 ‘검사 출신’ 노 전 순천시장의 무소속 출마는 선거에서 태풍의 눈이다. 노 후보는 지난 6일 민주당 후보로 오하근 전 전남도의원으로 결정되고 9일 최종 확정되면서 10일 민주당을 탈당,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친정 민주당을 향해 싸움을 건 것에 대한 비판 여론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지방선거가 현실정치 진입에 마지막 기회로 보는 그로서는 승부를 걸어볼 수밖에 없다. 노 후보는 인지도나 세력 측면에서 오 후보를 압도하고, 소 의원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민선 4·5기 시장을 지내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유치에 성공한 주역이다. 

앞서 노 후보는 민주당 시장후보 경선에 뛰어들었으나 적격심사에서 탈락, 4명의 후보간 1차 경선에 조차 뛰어보지도 못하고 낙마했다. 노 후보가 경선에서 배제되자 특정인의 영향력이 투영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이번 민주당 순천시장 공천 과정에서 ‘사심공천’ 논란이 불거졌다. 상당한 지지 세력을 확보한 그의 무소속 출마는 순천시장 선거판에 큰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더욱이 반(反)소병철 세력의 결집은 노 후보의 무소속 출마에 유리한 측면으로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반민주 내지 반소 정서가 점점 늘어나면서 노 후보의 주가도 오르고 있는 모양새다. 노 후보의 무소속 출마와 함께 그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민주당 당원 역시 탈당하거나 당적을 유지한 채 물밑에서 지지 대열에 가세하는 형국이다. 일찌감치 민주당을 탈당한 김영득·김동현 전 예비후보에 이어 소 의원의 광주제일고 동기인 장만채 전 전남교육감도도 반(反)소로 돌아섰다는 관측이 힘을 얻는다. 장 전 교육감은 다음 주에 측근들과 함께 민주당 당적을 유지하면서 노 후보 지지를 선언하는 방안을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손훈모 전 예비후보 측근 중 일부만 오하근 후보에 가세했을 뿐 대부분은 노 후보 편에 선 것으로 전해졌다. 다수 지방의원과 민주당원들도 물리적으로 오 후보 캠프로 합류는 한듯하나 화합적·정서적 결합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몸 따로 마음 따로’ 분위기가 역력하다 

민주당 소병철 국회의원과 오하근 순천시장 후보 ⓒ페이스북
민주당 소병철 국회의원과 오하근 순천시장 후보 ⓒ페이스북

‘反 소병철’ 진영 결집하나?…복잡 미묘해진 민주당

민주당 사정은 복잡 미묘해졌다. 민주당은 허석 시장 측과 ‘원팀’이 좌절되면서 울타리를 뛰쳐나간 이들과도 크고 힘든 싸움을 벌여야 할 처지에 놓였다. 민주당과 오 후보 측은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선거채비를 갖추고 있다. 일단 ‘원팀’을 강조하며 과열 경선에서 빚어진 후유증을 잠재우기 위해 애쓰는 모양새다. 특히 민주당은 노 후보의 무소속 출마 변수를 애써 축소하면서 민주당 대 배반자 심판으로 선거 프레임을 끌어간다는 전략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일부 원로그룹 등의 동요가 있더라도 대규모 동반 탈당 사태 등은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민주당을 탈당한 노 전 시장이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판세를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민주당 원팀은 굳건하다”며 “다만, 지역정치판을 기웃거리는 일부 사람들이 SNS 등에서 마치 큰일이나 난 것처럼 터무니없는 허위사실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고 논란을 평가 절하했다. 소 의원도 경고장을 냈다. “근거없는 의혹 제기와 비난이 난무하고 있다. 권리당원 명부 유출이 있었다는 의혹이나 지역위원장이 특정 후보 당선을 위해 개입했다는 의혹은 모두 음해다. 공천의 부당성과 관련해서는 1대 1 토론을 하자. 당원 유출 의혹에 대해서는 명백한 허위유포로 엄중한 책임을 물을 예정이다.”

이 같은 민주당과 소 의원의 대응에도 반민주 정서가 점점 늘어나면서 선거판세 또한 점차 ‘민주 대 반(反)민주’ 대결 구도로 형성되고 있다. 심지어 ‘반소(反蘇)’ 전선이 형성되는 모양새다. 중앙정치인 입김에 따른 불공정 경선 의혹에 대한 반발로 불붙은 지역민심이 해당 국회의원 심판으로까지 확산하는 양상을 띠면서다. 선거구도 또한 지난 2년 전 총선 때를 연상케 하는 소병철 의원과 무소속 노관규 후보 간의 재대결로 재편되는 묘한 형국이다. 순천시장 민주당 후보로 결정된 오하근 후보와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노관규 싸움인데도 정작 오 후보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소 의원이 노 후보를 격하게 공격하고 노 후보가 반격하는 대리전 모습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소 의원과 노 후보는 2년 전 총선에서도 맞붙은 ‘정치 맞수’다. 노 후보는 2020년 총선을 위해 민주당의 김영득, 서갑원, 장만채 예비후보와 당내 경선을 준비해왔으나 순천의 해룡면이 광양·구례·곡성으로 붙는 선거구 획정과 당시 소 전 법무연수원장의 민주당의 전략공천 결정으로 경선 기회를 잃었다. 

11일 오후 찾은 순천 신흥 택지개발지구인 금당동에서 연향동에 이르는 거리 곳곳에는 진보당이 내건 ”전남은 막대기만 꽂으면 당선?“”싹쓸이 정치는 가라“는 현수막이 한껏 반민주당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시사저널 정성환
11일 오후 찾은 순천 신흥 택지개발지구인 금당동에서 연향동에 이르는 거리 곳곳에는 진보당이 내건 ”전남은 막대기만 꽂으면 당선?“”싹쓸이 정치는 가라“는 현수막이 한껏 반민주당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시사저널 정성환

소 의원은 노 후보가 탈당하는 날 오후 ‘상습탈당, 분열과 갈라치기 중단하라’며 입장문을 내 노관규 후보를 격렬하게 비난했다. 소 의원은 “불공정 공천 운운하는 것은 무소속 출마를 위한 구차한 변명으로 보인다”며 “복당 당시 화합 약속을 저버린 데다 2020년 총선과 이번 지방선거 등 모두 세 차례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거론하며 민주당을 배신했다”며 노 후보를 직격했다. 소 의원은 “내년에 우리 순천 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정원박람회가 눈앞에 다가왔는데 갑자기 (신대지구에) 스타필드 운운하니 황당하기까지 하다”며 노 후보의 공약까지 거론하며 비판을 이어갔다.

이에 대해 노 후보는 “순천시민들께서 꾸짖으시면 제가 모두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고 엎드려 사죄하겠다”며 “하지만 이 모든 원인을 제공하신 소병철 국회의원께서 하실 말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맞받았다. 그는 이어 “지난 2년 전 총선에서 소 의원이 전략공천이라는 낙하산 공천으로 오는 바람에 쫓겨나듯이 탈당을 했고, 이번에도 두 개 언론사가 연합한 시민여론조사에서 순천시장 적격자 1위로 나타난 노관규에게 경선 기회조차 박탈하니 나갈 수밖에 없는 환경 제공자가 누구냐"고 일갈했다.

지역 정가에서는 민주당이 반(反)소병철 정서를 딛고 순천시장 입성에 성공할지, 급속히 확산 중인 반소병철 정서를 노관규 후보가 얼마나 받아 안을지가 이번 순천시장 선거의  승패를 가를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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