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호도 없어요?”…무관심 속 치러지는 ‘깜깜이’ 교육감 선거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2.05.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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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 선거 관심 없다” 절반 넘어
직선제 15년째에도 ‘묻지마 투표’ 오명 어쩌나

# 6‧1 지방선거 사전투표에 나선 김아무개씨(22)는 지난 28일 기표소에서 연두색 투표용지를 받고 당황했다. ‘서울특별시교육감선거투표’라고 적힌 용지엔 6명의 후보 이름이 기호 없이 가로 배열돼 있었다. 평소 교육감 선거를 눈여겨보지 않았다는 김씨는 “누가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 없더라”고 했다. 김씨는 서둘러 투표를 마치고 나와서는 “누굴 찍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고 말했다.

# 교육감 선거에 관심 있는 유권자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교육감 후보자들의 공보물을 자세히 살펴봤다는 이아무개씨(58)는 “후보가 너무 많은데 특색이 없더라”고 했다. 이씨의 선거구 역시 6명의 후보가 출마한 서울이다. 이씨는 “정당도 없고 기호도 없는 상태에서 찍자니, 어떤 기준으로 마음을 정해야할지 모르겠다. 차라리 기권을 할까 고민된다”고 했다.

지방선거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며 열기를 더하고 있지만, 교육감 선거에 한해선 고질적인 ‘무관심’ 문제가 거론된다. 지방선거 본 투표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아직까지 교육감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는 유권자가 많아서다. 교육감 직선제를 도입한 지 15년이 지났는데, 왜 관심은 유독 저조한 수준일까.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26일 오후 서울 중구 중림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직원들이 사전투표 최종 모의시험 및 점검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26일 오후 서울 중구 중림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직원들이 사전투표 최종 모의시험 및 점검을 하는 모습 ⓒ 연합뉴스

15년째 유권자 관심 못 받는 교육감 선거

3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총 17명을 선출하는 전국 시‧도 교육감 선거에 57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이 가운데 서울과 세종, 강원엔 각각 6명의 후보가 몰려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그러나 경쟁률만큼 유권자의 관심도가 뒷받침되진 않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거나 “잘 모르겠다”는 부동층의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는 지역이 상당수여서다. 또 지난 2018년 지방선거 이후 발표된 중앙선관위 유권자 의식조사 결과(2018년 6월18일~7월6일 조사, 전국 성인 남녀 1500명 대상), “교육감 선거에 관심 있다”는 응답은 43.6%로 절반에 못 미쳤다. 광역단체장(72.9%)이나 기초단체장(66.9%) 관심도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수치다.

때문에 교육감 선거는 ‘묻지마 선거’, ‘깜깜이 선거’로 불리기도 한다. 유권자들의 관심이 저조하다보니, 후보의 정책이나 역량보다 지명도가 당락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교육감 선거 투표용지에는 정당이나 기호도 적혀 있지 않다. 배열순서도 선거구마다 바뀐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추구하려는 장치이지만, 일반 유권자로선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만한 장치가 부족한 셈이다.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6.1 지방선거 투표를 독려하는 홍보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6.1 지방선거 유권자들은 광역단체장(시·도지사), 교육감, 기초단체장(자치구·시·군의 장), 지역구 광역의원, 지역구 기초의원, 비례대표 광역의원, 비례대표 기초의원 총 7장의 투표용지를 받게 된다. ⓒ 연합뉴스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6.1 지방선거 투표를 독려하는 홍보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6.1 지방선거 유권자들은 광역단체장(시·도지사), 교육감, 기초단체장(자치구·시·군의 장), 지역구 광역의원, 지역구 기초의원, 비례대표 광역의원, 비례대표 기초의원 총 7장의 투표용지를 받게 된다. ⓒ 연합뉴스

‘정치적 중립성’ 표방해도 후보들은 ‘색깔론’…교육 현장은 ‘혼란’

상황이 이렇다보니,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색깔론’ 활용 전략을 서슴지 않는다. 선거 과정에서 공약보다는 이념 성향을 강조하고, ‘정권교체’ 여론을 업기 위해 과거 정부의 정책을 뒤집겠다고 공언하는 사례 등이다. 

가령 서울시의 경우 상당수 보수 진영 교육감 후보들은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다. 교육감은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지만, 교육감의 이념에 따라 교육 정책이 4년마다 뒤바뀌게 되는 셈이다.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 교육 현장에선 혼란을 토로한다. 24년째 공교육에 몸 담은 홍아무개(51) 교사는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대한민국에선 통하지 않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문제는 교육감의 권한이 ‘소통령’이라 불릴 만큼 막강하다는 점이다. 17개 시·도교육감이 다루는 한 해 지방교육재정 규모는 82조원에 달한다. 서울시를 떼어놓고 보면, 서울시교육청의 올해 예산 규모는 10조5886억원으로, 서울시(44조2200억원)의 4분의1 수준이다. 또 교육감은 전국 2만여 개 학교의 존폐를 쥐고 있으며 50만여 명 교사의 인사권을 갖는 자리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때문에 교육계에선 교육감 선거를 손 봐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그 대안으로는 특정 정당 출신 시‧도지사 후보와 함께 ‘러닝메이트’ 형식으로 치르는 방식, 혹은 직선제를 폐지하고 임명제를 도입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각 방안 모두에 정치권과 교육계 의견이 분분하게 갈리고 있어, 현재로선 중지를 모으기 힘든 상태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시절 교육감 직선제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어, 향후 교육감 선거 관련 논의에 탄력이 붙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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