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이 아니라 ‘고객 경험’을 팔아라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06.03 12:00
  • 호수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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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지갑 열게 만드는 X마케팅의 3가지 기술
시사저널 주최 ‘컨퍼런스G 2022’에서 국내외 전문가들이 주문한 변화

최근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하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가 굳게 닫았던 자물쇠를 풀고 있다. 하지만 시곗바늘을 3년 전으로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도래한 만큼 기업 비즈니스나 마케팅 역시 되돌아볼 때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키워드는 ‘경험(Experience)’이었다.

ⓒ시사저널 이종현·최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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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생존 키워드

5월31일 시사저널 주최로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컨퍼런스G 2022’가 열린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핵심 주제는 ‘X마케팅(X-Marketing)’이다. 고객 경험(CX·Customer eXperience)과 브랜드 경험(BX·Brand eXperience), 디지털 고객 경험(DCX·Digital Customer eXperience)이라는 3가지 세부 주제를 통해 엔데믹 시대에도 통할 수 있는 기업의 생존 전략을 마련하는 자리를 가졌다. 권대우 시사저널 발행인은 “주요 대기업들은 이미 수십 년간 유지했던 조직을 고객 관점으로 재편하면서 ‘고객 경험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면서 “비즈니스뿐 아니라 마케팅도 고객 관점에서 바라보고,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꾀해야 할 때가 지금이다”고 말했다.

기조 연설자로 나선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고객 경험’을 X마케팅 실현을 위한 중요 키워드로 꼽기도 했다. 김 교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는 하이테크(Hightech)가 아니라 하이터치(Hightouch)에 의해 만들어진다. 좋은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고객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공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MZ세대가 최근 소비의 주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 세대는 단순 구매보다 경험을 중시한다. 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게 현재 기업 마케팅에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대표적인 회사가 아마존이다. 김 교수는 “아마존은 경험 혁신에 성공한 회사다. 고객 경험에 성공하면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다시 셀러가 모이고, 셀레가 모이면 고객 구성이 다양해진다”면서 “이런 과정을 통해 아마존은 IT회사나 유통회사가 아니라 ‘고객 지향 회사’가 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보라빛 소(Purple Cow)가 온다》의 저자로서 세계적인 마케팅 구루로 꼽히는 세스 고딘은 “마케팅의 타깃이 더 이상 ‘대중’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존의 마케팅은 대중에 맞춰져 있었다. 상품을 더 많이 판매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게 마케팅의 목적이었다. 엔데믹 시대에는 이 공식이 바뀌어야 한다. 불특정 다수보다 로열티가 있는 소수에게 화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들을 ‘최소 유효 고객’ 혹은 변종이라고 칭했다. 세스 고딘은 “모든 사람을 충족시킬 수 있는 마케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최대 유효 고객보다 최소 유효 고객을 위한 마케팅 전략이 더 중요해졌다”면서 “‘우리가 당신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보여준다면 충성 고객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리더가 될지 매니저에 머무를지 결정하라”

세스 고딘은 마케터들에게 끊임없이 혁신하라고도 조언했다. 현대차와 도요타는 현재 전 세계 소비자를 상대로 치열한 영토 싸움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마케팅 전략은 ‘극과 극이다. 도요타는 전기차 기술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하이브리드 기술에 집중했다. 반대로 현대차는 순수 전기차인 아이오닉을 개발해 판매했다. 그는 “현대차는 그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혁신이다”면서 “실수는 올바른 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만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마케터들 역시 리더가 될지, 매니저에 머무를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리 데이비스 영국 맨체스터 경영대학원 전략경영 명예교수도 비슷한 의견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고객 경험을 위해 기술뿐 아니라 디자인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주문했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아마존의 무인 식료품점인 ‘아마존 고’를 꼽았다. 아마존 고는 세계 최초의 무인 슈퍼마켓이다. 아마존 고 매장에 들어가면 계산대에 길게 줄을 설 필요도, 계산을 따로 할 필요도 없다. 앱 설치 후 QR을 찍고 매장에 입장한 뒤, 물건을 장바구니에 넣고 나오기만 하면 된다. 바로 아마존 고의 혁신 기술인 ‘Just walk out’이다. 우리말로 풀어보면 ‘그저 걸어 나오면 된다’는 뜻이다. 개리 데이비스 교수는 “코로나19 종식 후에도 고객들은 익숙해져 있는 비대면 쇼핑을 선호할 것”이라면서 “큰 회사든 작은 상점이든 아마존처럼 기민하게 행동하는 곳만이 엔데믹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 내부 직원의 역할도 중요하다. 직원들이 바로 고객 서비스의 최접점에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업들은 ‘고객 경험’엔 적극적이었지만, ‘직원 경험’에 대해서는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들이 현장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회사가 교감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영국의 대표적인 에너지 기업인 브리티시 가스는 한때 고객 평판이 좋지 않았다. 현재는 영국 내에서 최고의 유틸리티 기업으로 평가된다. 회사와 직원들의 관계를 재정립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회사 직원들은 자신들을 단순 ‘고용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객과의 만남에서 회사를 대표하는 ‘앰배서더(ambassador)라 믿고 책임 있게 행동한다. 자연스레 회사 평판은 좋아지고, 직원들의 자부심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개리 데이비스 교수는 “단순히 종업원 만족도를 높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직원들과 충분히 교감하라는 뜻이다. 회사와 종업원 사이에 신뢰(trust) 관계가 형성되면 매출 증가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면서 “엔데믹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업의 기술뿐 아니라 고객 경험 전략이 더욱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런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도록 기술과 디자인, 직원 관리를 재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이키가 30여 년 만에 슬로건 교체한 이유

오후 세션에서는 ‘X마케팅’의 3가지 주제인 고객 경험(CX)과 브랜드 경험(BX), 디지털 고객 경험(DCX)의 성공 사례나 구체적 실행 방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조언이 이어졌다. 브랜드 경험에서 필요한 주요 키워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재미였다.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의 슬로건은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이었다. 1988년 처음 광고 캠페인을 시작한 이 슬로건은 나이키의 광고나 브랜딩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사용돼 왔다. 최근 이 슬로건이 ‘For once, Don’t do it’으로 바뀌었다. 미국에서 비무장 흑인 남성이 백인 경찰에게 체포당하는 과정에서 숨지는 사건 발생 직후였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는 가치소비를 지향하고 사회 이슈에도 관심이 많다”면서 “나이키가 슬로건까지 바꿔가면서 인종차별 문제에 목소리를 낸 이유도 MZ세대를 겨냥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곰표는 브랜드 경험을 통해 밀가루 브랜드라는 한계를 뛰어넘고 제품군을 다양화한 사례다. 2018년 의류 쇼핑몰 4XR과 협업해 내놓은 ‘곰표 패딩’과 화장품, 식품, 주류, 음료, 생활용품까지 곰표는 MZ세대에게 자사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선보인 곰표맥주의 경우 매출 신기록을 경신하며 품절 대란까지 일으켰다. 김익규 대한제분 마케팅 상무는 곰표의 성공 전략 키워드로 ‘레트로’와 ‘재미’를 강조했다. 김 상무는 “품질은 당연히 전제로 하고, 위트와 반전을 원칙으로 했다. 소비자에게 낯설지만 뜬금없지 않게 다가서려 했다”며 “이런 접근 방식이 곰표의 고루한 이미지를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됐고, 레트로에 관심이 많은 MZ세대에게도 인기를 끌었다”고 분석했다.

2008년 3조원대에 불과했던 골프장 시장이 연 5%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며 2021년 6조원 규모로 커진 것도 고객과의 접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임유슬 골프존 플랫폼전략실 프로는 “신규 골프 입문자(3년 이하) 중 57%가 2030세대다. 골프 인구 4명 중 1명이 MZ세대인 셈”이라면서 “골프존이 마케팅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도 ‘고객 경험 극대화’와 ‘H2H(Human to Human)’ 비즈니스다”라고 설명했다.

노은정 리테일마케팅연구소 소장(동국대 산학교수)은 유휴공간을 활용한 기업들의 상생 모델도 제시했다. 그는 “낙후된 지역과 도시 재생이 필요한 곳에 고객경험 요소와 콘텐츠가 풍부한 로컬 브랜드의  팝업스토어가 진출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면서 “상가 오피스 공실 등 유휴공간을 상업적 용도로 활용하면, 지역 활성화뿐만 아니라 스타트업들도 성장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 소장은 “상품에 대한 입체적인 서비스와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형 기업만이 생존을 넘어 지속 성장할 것이다”고 부연했다. 

 

메타버스 확산으로 온라인 패러다임 변화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소비자가전(CE), IT·모바일(IM) 등 세트(완성품) 부문을 통합하고 명칭을 ‘DX(Device Experience)’ 부문으로 바꿨다. 말 그대로 ‘고객 경험’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승윤 건국대 경영대학 교수는 “과거에는 기업이 디바이스(기기)만 만들었는데, 이젠 플러스 알파(+α)로 고객 경험까지 챙기는 시대가 됐다”면서 “삼성 외에도 모든 기업이 각자의 ‘고객 경험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들어 메타버스가 온라인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쇼핑 부문에서도 이 메타버스가 활용되고 있다. 단순 검색이나 분류가 아니라 탐색과 발견의 즐거움을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김범주 유니티 테크놀로지스 코리아 본부장은 “더 이상 메타버스는 게임과 같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면서 “기술이 발전하고 바뀐 디지털 문법에 익숙해진 이가 많아지다 보니 게임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메타버스가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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