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권도형, 지금도 싱가포르에 있다”…‘도피설’ 반박 증언 확보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2.06.06 09:00
  • 호수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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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폭락 사태’ 장본인 권도형 둘러싼 3가지 의문점…“헤지펀드에 당한 것일 뿐, 수사 피할 이유 없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행방이 불확실한 가운데, 그가 싱가포르에 있다는 가족의 증언을 시사저널이 확보했다. 제3국 도피설마저 제기됐지만 여전히 본사가 위치한 싱가포르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 소환한다 해도 사법 처리까지 갈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암호화폐 관련 사건은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사 당국의 의지가 중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배경이다. 특히나 이번 사건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 전부터 부활을 예고했던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이 수사를 맡았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권 대표의 소재지를 둘러싼 의혹과 향후 그의 처벌 가능성 등을 짚어봤다.

ⓒ페이스북·유튜브 캡쳐

① 권도형은 어디에?

권 대표의 소재지는 지난 5월초부터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권 대표가 테라폼랩스 서울·부산 법인 2곳의 해산을 결정하면서 ‘먹튀’ 우려가 대두된 것이다. 그러다 5월 중순 들어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암호화폐 테라USD(UST)와 루나 가격이 동시 폭락하기 시작했다. 낙폭은 99.9%를 기록했고 결국 각종 거래소에서 퇴출되기에 이르렀다.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하지만 권 대표는 5월21일 트위터를 통해 “나는 작년 12월부터 싱가포르에 있었다”고 주장하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싱가포르 체류는)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내 개인적인 결정”이라며 “이는 이미 여러 인터뷰와 팟캐스트를 통해 밝힌 바 있다”고 했다. 또 테라폼랩스의 글로벌 본사 격인 싱가포르 법인은 여전히 운영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싱가포르에서 권 대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는 보도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한겨레, SBS, JTBC 등 국내 다수 언론은 테라폼랩스 싱가포르 본사를 찾아갔지만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등기부등본상 권 대표의 주거지로 공개된 곳에서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시사저널은 취재 과정에서 권 대표의 아버지 권아무개씨와 접촉할 수 있었다. 권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아들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서도 “아들은 싱가포르에서 처(부인)와 아이를 데리고 살고 있다”고 반복해 말했다. 그 외의 질문에 대해서는 일절 답변을 거부했다. 권씨는 “예전에는 아들을 대단하다고 띄워주더니 이젠 사기꾼으로 몰아간다”며 언론의 보도 행태를 강한 어조로 힐난했다.

기자는 권씨에게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도 권 대표와 얘기하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며 재차 대화를 시도했다. 이후 권 대표의 인척(처가 쪽 가족) A씨가 시사저널에 입장을 전해 왔다. A씨는 권 대표의 소재지에 대해 “싱가포르에 있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면서 “싱가포르 사법 당국은 전혀 수사한 적이 없고 한국도 소환 요청을 한 적이 없다”며 “사법 당국은 가만히 있는데 언론만 죄인으로 몰아가는 형국”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권 대표가 국내 법인을 해산한 이유에 대해 “세금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세금이 징글징글할 정도로 많아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실제 국세청은 지난해 6월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 테라폼랩스 공동 창업자인 신현성 티몬 이사회 의장 등을 대상으로 특별 세무조사를 진행했다.

당시 국세청은 권 대표와 신 의장이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를 통해 암호화폐 발행 수입 일부와 증여에 대한 신고를 빠뜨린 것으로 봤다. 이에 국세청은 지난해 10월 테라폼랩스 BVI 법인인 TERRAFORM LABS LIMITED에 법인세 약 460억원을 부과했다. 또 권 대표와 신 의장 등에게도 소득세 40억여원을 매겼다. 국세청은 ‘테라폼랩스 법인 소재지는 외국이지만 실질 운영은 국내에서 한다’고 보고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권 대표는 국세청의 세금 부과가 부당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한국 정부가 코로나19 관련 지출을 메우기 위해 암호화폐 기업을 상대로 수백만 달러의 창조적 세금을 부과했다”고 주장했다. 또 “우리 몫의 세금은 전부 냈다”며 “어떤 소송이나 조사에도 최선을 다해 기꺼이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A씨 역시 “수사를 피할 이유가 없다”며 “이미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했고, 수사 요청이 오면 응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A씨는 “(권 대표가) 딸 이름도 ‘루나’라고 지을 만큼 자신의 사업에 대한 신뢰와 애착이 깊은 사람”이라며 “친척들도 얼굴을 보기 힘들 만큼 오로지 일에만 파묻혀 산다”고 했다. 이어 “이번 (테라-루나 폭락) 사태는 본인과 무관한 미국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아 일어난 것”이라고 토로했다.

5월17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암호화폐 ‘루나’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② 처벌은 가능할까?

테라-루나 폭락 사태로 전 세계에서 증발한 시가총액은 58조원에 달한다. 이 중에는 국내 피해액도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 5월 중순까지 금융 당국이 파악한 국내 루나 보유자는 28만 명, 보유 개수는 700억 개다. 4월6일 최고가(약 14만원)를 기준으로 하면 9800조원에 육박하는 천문학적 규모다.

피해자들은 집단으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법무법인 LKB앤파트너스는 5월19일 피해자 5명을 대리해 테라폼랩스와 권 대표 등을 검찰에 고소·고발했다. 네이버카페 ‘테라 루나 코인 피해자 모임’은 5월31일까지 피해자 88명을 대표해 2차례에 걸쳐 검찰에 사건을 접수했다. 권 대표에게 적용될 수 있는 혐의로는 크게 사기와 특정경제범죄법(특경법)상 사기,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등이 거론된다.

LKB는 권 대표가 투자자들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알고리즘 설계 오류와 하자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고 봤다. 또 백서 등을 통해 고지한 것과 달리 루나 발행량을 무제한 확대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행위에 대해 LKB는 ‘기망’이라고 주장했다. 거짓으로 사람을 착오에 빠뜨리는 기망은 사기죄의 성립 요건이다.

테라폼랩스는 백서를 통해 ‘루나의 목표 발행량은 10억 개’라고 한정해 놓았다. 그러나 테라USD가 고정 가격인 1달러 아래로 떨어질 조짐을 보이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루나의 발행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그래도 테라USD 가격을 지탱하지 못했고, 루나는 그사이 6조5000억 개까지 시장에 풀렸다. 사실상 무제한 발행한 셈이다. 화폐시장으로 치면 초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구조상 결함을 숨겼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테라폼랩스 전직 개발자 강형석씨는 5월26일 코인데스크코리아에 “앵커 프로토콜(연 20% 수익률을 약속한 테라폼랩스의 탈중앙화 금융 시스템)에 예치된 테라USD가 늘어나면서 시가총액이 늘어나는 데 반해 루나는 뒷받침이 안 됐다”며 “권 대표에게 계속 ‘(루나의 가격을 뒷받침할) 준비금이 적절하게 운영되도록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기망에 고의성이 있었는지 입증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또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재산상의 이득을 취한 점도 입증돼야 한다. 그러나 권 대표가 이번 사태로 어떤 금전적 이득을 봤는지 뚜렷하지 않다. A씨는 가족들도 오히려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가족들이 갖고 있던 300만원어치 루나가 13억원까지 올랐다가 0원 가까이 떨어지면서 모두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암호화폐는 법정 화폐로 인정되지 않아 금융 당국도 손을 놓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암호화폐는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상품도 아니기 때문에 강제 조사권을 발동할 법적 근거가 마땅치 않다”고 전했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권 대표에게 유사수신행위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해당 법률은 ‘장래에 출자금의 전액 또는 이를 초과하는 금액을 지급할 것을 약정하고 출자금을 받는 행위’를 유사수신행위로 보고 있다. LKB는 “앵커 프로토콜을 개설해 지속 불가능한 약 20%의 이자 수익을 보장하며 수십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유치한 것은 유사수신행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권 대표를 두고 ‘폰지 사기’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만 앵커 프로토콜에 예치된 테라USD가 법률에서 정한 ‘출자금’에 해당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A씨는 “코인을 받고 코인을 나눠줬는데 유사수신이라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국블록체인협회 자문위원 출신 이주호 변호사는 “루나의 ICO(암호화폐공개) 형식을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며 “ICO를 했다면 해당 암호화폐를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으로 보고 인허가 여부에 따라 불법으로 지적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권 대표의 행위를 처음부터 범죄로 보기 힘들다는 시각도 있다. 5월23일 전인태 국민의힘 가상자산특별위원회 위원(가톨릭대 수학과 교수)은 국회 세미나에서 “테라USD와 루나의 폭락은 폰지 사기라기보다 알고리즘의 취약점이 드러난 사례”라고 분석했다. 전 위원은 “앵커 프로토콜은 총 예치금과 준비금 등을 블록체인상에서 투명하게 공개했다”며 “기망 의도가 있었다면 이런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네이버카페 ‘테라 루나 코인 피해자 모임’이 5월27일에 이 어 31일 피해자 총 88명을 대표해 고발장을 서울남부지 검에 제출했다.ⓒ‘테라 루나 코인 피해자 모임’ 카페

 수사 진행 상황과 그 의미는?

혐의 입증에 난항이 예상되지만 검찰은 이미 칼을 빼들었다. 서울남부지검 합수단은 최근 테라폼랩스 전직 개발자 강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작년부터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가 제한돼 있지만, 피해액이 5억원을 넘으면 특경법상 범죄로 분류돼 직접수사가 가능해진다.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린 합수단은 지난 2014년부터 6년 동안 금융범죄 수사를 전담해 왔다. 그러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 직접수사 축소 차원에서 2020년 폐지했다. 이후 한동훈 신임 장관은 5월17일 취임하자마자 1호 지시로 합수단 재출범을 알렸다. 동시에 권 대표 수사는 합수단의 1호 사건이 됐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이번 사건은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검찰의 존재감을 입증할 기회라는 분석이 나온다.

통상 수사 당국이 해외의 내국인을 강제 소환할 때는 먼저 여권 무효화 조치를 취한다. 그래도 들어오지 않을 때는 인터폴에 수배 요청을 한다. 다만 권 대표와 A씨는 수사 요청을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수사가 본격화되면 권 대표에 대한 대면 조사는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경찰도 테라폼랩스 직원이 법인 자금을 횡령한 혐의를 포착해 수사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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