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팬덤정치 극복할 새로운 ‘해방일지’ 써야 [유승찬 기고]
  •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6.14 10:00
  • 호수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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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정치, 민주주의 파괴하고 포퓰리즘 부추겨
‘팬덤-권리당원’ 고리 차단해 당내 민주주의 세워야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봤다. 오랜만의 본방사수. 필자에게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구씨나 염미정이 아니었다. ‘해방’이라는 단어 그 자체였다. 청년 시절 필자에게 ‘해방’은 불온한 단어였다. 민족해방, 인민해방. 여기엔 언제나 붉은색이 덧칠돼 있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칠흑 같은 감옥이었던 ‘해방’이라는 단어가 3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드라마를 통해 ‘해방’된 셈이다. 

필자는 동시에 6·1 지방선거 과정에서 민주당 지지로부터 ‘해방’되려는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났다. 중도층과 소극적 지지자들은 민주당에 대한 ‘환멸’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난 문재인 정부 5년, 민주당 주변엔 ‘검찰’이라는 단어가 짙게 아로새겨졌다. 검찰·조국·정의. 이런 단어들이 민주당을 지배하는 동안 중산층과 서민이 사라졌고, 을지로위원회 같은 따뜻한 동행은 멈춰섰으며, 평등·자유·복지 같은 숭고한 가치도 흐릿해졌다. 김대중·노무현은 민주당 출마자들의 좌판에만 잠시 전시됐다. 민주주의자 김근태는 그저 무덤에 유폐됐다. 국민의 무의식에는 민주주의 대신 ‘대깨문’ ‘개딸’ ‘양아들’ 같은 기이한 언어가 새겨졌고, 그것이 민주당의 이미지를 에워쌌다.

대선 패배 이후에도 민주당은 반성 대신 ‘검찰’을 다시 소환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패배를 은폐하려고 했다. 이른바 ‘검수완박.’ 그러면서도 지방선거 승리를 공언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자들이 당당하게 출격했다. 하지만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민주당은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했다. 

ⓒ시사저널 국회사진 취재단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5월31일 인천 계양구 계산역 일대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시사저널 국회사진 취재단

중도층 환멸 불러온 팬덤정치

민주당의 지방선거 참패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팬덤정치에 대한 중도층의 환멸이다. ‘환멸’은 매우 자극적인 표현이지만,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민주당의 정치 훌리건들의 행태와 조국 사태로 상징되는 기득권 내로남불에 대한 국민의 감정이 ‘환멸’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다양한 징후가 보인다.

우선 투표율이 역대급으로 낮았다. 50.9%는 지방선거인 점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낮다. 이는 중도층의 반감과 민주당 지지층의 이완을 반영한다. 방송 3사의 출구조사와 심층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인 40대 남성의 투표율은 40.9%, 40대 여성의 투표율은 44.4%에 불과했다. 특히 광주의 투표율은 37.7%로 전국 광역단체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는 대선 패배 이후 반성과 성찰을 하지 않는 민주당에 대한 강력한 경고 표시로 읽힌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본격 발화된 팬덤 현상은 문재인, 이재명을 거치며 정치 훌리건으로 흑화됐다. 이들의 행동도 점점 과격해졌다. 문재인, 이재명의 ‘팬덤 추앙’은 이들의 공격성을 부추겼다.

팬덤 현상은 정치 의사결정을 극단화함으로써 중도층을 적으로 돌린다는 점에서 정당에 유해하다. 나아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포퓰리즘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국민에게도 유해하다. 이른바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소수 극렬 팬덤의 노예가 되어 공포감에 휩싸인다면 그것은 이미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된다. 

팬덤은 권리당원과 융합되면서 민주적 규범을 파괴한다.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 때 귀책사유가 있으면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당규를 개정한 사례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무려 87%의 당원이 이를 지지했다. 검수완박 법안 발의에 민주당 의원 172명 전원이 서명한 것도 이례적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검수완박’ 강행을 위해 위장 탈당한 민형배의 행위는 민주적 규범을 정파적 이익으로 짓밟은 상징적 사건이다. 민주적 규범은 민주주의의 일탈을 막는 일종의 가드레일이다. 극렬 팬덤에 의해 이 규범이 깨지기 시작하면 민주주의 자체가 위기에 직면한다. 

반면 국민의힘은 수없는 패배를 통해 영리해졌다. 30대 당대표를 선출한 그들은 태극기부대와 결별했으며, 호남에 지극정성 공을 들였고, 경기지사 선거에서 강용석과의 연대를 거부했다. 전투에서 패하더라도 전쟁에서 이기는 길을 선택한 셈이다. 

둘째 이유는 민주당에 가장 불리한 프레임인 ‘정치전선’을 전면화한 것이다. 대선 3개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 3주 만에 치러진 선거에서 정치전선에 올인하는 것은 전략적 오류다. 국민들은 기본적으로 새 정부가 잘해 주기를 바란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직후 검수완박을 밀어붙였다. 여기에다 송영길이 서울시장에, 이재명이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함으로써 정치전선을 완성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전선’을 넘어 ‘대선 불복’ 프레임으로 나아갔다.

중도층은 물론 민주당 지지자들마저 극도의 피로감을 느꼈다. 민주당 정당 지지율은 급전직하했고 바닥 민심은 반전의 모멘텀을 찾기 불가능할 정도로 추락했다. 민주당의 이번 지방선거 참패는 명분 없는 참전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다. 그들은 ‘검찰 중심의 윤석열 정부를 견제할 힘을 달라’고 간절히 호소해야 할 시점에 대선 때 하던 지루한 ‘닥치고 공격’을 허공에 반복했다. 경기도에서 김동연이 대역전 신승을 거둔 것은 그나마 민주당과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민주당다움의 부재, 즉 민생-복지-인권 전선의 소멸이다. 국민에게 민주당은 이제 더 이상 김대중의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도 아니고, 노무현의 ‘지역주의 타파와 통합을 위한 정당’도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핵심 이미지는 내로남불, 부동산 무능, 대선 불복이었다. 민주당이 누구를 대변하기 위해, 어떤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정당인지 알기 어려워졌다.

 

김대중·노무현 정신 사라진 민주당

지방선거 참패 이후 민주당이 시끄럽다. 계파 전쟁을 비롯한 민주당의 대혼돈은 불가피하고 또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쉽게 출구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낡은 것의 소멸과 새로운 것의 부재’라는 긴 터널이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다. 

민주당을 위해 그동안 많은 쓴소리를 했던 필자도 이제 지치고 지친 상태에서 비몽사몽 세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팬덤’과 ‘권리당원’의 연결고리를 차단해 당내 민주주의를 확고히 해야 한다. 문자 폭탄을 비롯해 민주주의 파괴에 앞장선 권리당원을 원 스트라이크 아웃시켜야 한다. 정치 훌리건들과의 과감한 결별 없이 민주당의 미래는 없다. 

둘째, 민주당의 존재 이유, 즉 가치와 정체성을 재구축해야 한다. 대토론이 필요하다. 셋째, 이재명의 당대표 출마는 민주당에도, 그 자신에게도 좋지 않은 선택이다. 역사상 대선과 지선 두 개의 전국 선거 패장이 즉시 당대표에 도전한 사례가 없다. 그건 문재인의 길이 아니라 황교안의 길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

민주당이 이런 새로운 ‘해방일지’를 쓰지 못한다면, 2024년 봄에 “그래도 지방선거가 나았어”라는 탄식과 함께 총선에서도 참패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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