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장작더미 혹은 쓸개가 있는가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6.13 08:00
  • 호수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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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6.1 지방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 총사퇴를 결정한 가운데 3일 국회 대표회의실 문이 닫혀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6·1 지방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 총사퇴를 결정한 가운데 6월3일 국회 대표회의실 문이 닫혀 있다. ⓒ연합뉴스

사랑에서든, 사업에서든, 또 인생의 어떤 일에서든 ‘미련’만큼이나 미련스러운 것이 없다. 미련에 빠지면 이미 벌어진 사건을 두고 마음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상황에 끌려다니기 십상이다. 생각과 다르게 나온 결과에 대한 아쉬움으로 인해 시간을 낭비하며 갈팡질팡하기도 한다. 미련은 그렇게 자주 중요한 결단을 방해하고, 그럼으로써 삶은 더 꼬이게 된다. 우유부단은 미련이 만들어내는 가장 큰 부작용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그 미련의 늪을 슬기롭게 건너지 못해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다. 일각에서는 전체 민의를 가늠케 하는 대선이나 총선과 달리 지역 행정가를 뽑는 지방선거를 진영 대결과 결부시키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승부 자체의 의미가 희석되기는 어렵다. 결국 패배는 패배다.

민주당의 지방선거 패인에 대한 분석은 이미 나올 만큼 나왔다. 대선에서 아쉽게 졌다는 이른바 ‘졌잘싸’의 미련에서 현명하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좌표를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선거를 치른 것이 주된 요인이라는 말이 쏟아졌다. 대선 패배의 아픔을 생산적으로 극복해 내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는 논평도 잇따랐다.

이런 분석처럼 민주당은 대선 패배라는 현실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패배 그 자체에 또다시 졌다. ‘0.73포인트 차’의 아쉬움에 갇혀 새롭게 가야 길을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같은 당 내에서 “대선 패배에 대해 사과만 거듭했을 뿐, 납득할 만한 대안을 제시한 적이 있느냐” “쇼라도 좋으니 통렬하게 반성한다는 액션을 제대로 보여주고 넘어갔어야 옳았다”는 쓴소리가 나온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을 터이다. 이처럼 여러 경로를 통해 이른바 ‘뼈 때리는’ 조언이 계속해서 나오지만,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선택이다. 듣는 쪽에서 그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원인을 제대로 알아 그에 맞는 처방을 내려야 하는데 그 과정을 소홀히 한 채 미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똑같은 모습만 보이면 위기는 깊어질 뿐이다.

최근까지 연이은 선거 패배는 민주당에 매우 심각한 위험 신호일 수 있다. 국민들에게 정당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지표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라는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정당은 정치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유권자들의 마음을 정확히 읽고 그에 맞는 상품을 지속적으로 생산해 제공해야만 정당은 비로소 지속 가능성을 획득하게 된다.

지난 5월31일 시사저널이 주최해 열린 ‘컨퍼런스G 2022’의 핵심 주제였던 ‘X마케팅’은 정치에도 의미 있게 적용될 수 있다. 고객 경험, 브랜드 경험, 디지털 고객 경험을 아우르는 X마케팅에서 앞서가는 정당이 국민에게 더 사랑받을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고객인 국민과의 접점을 넓혀 경험을 공유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국민 친화적인 이미지를 키워가야 정당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정당의 선거 실패는 그 고객 경험, 브랜드 경험에서 뒤처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람이나 정당이나 미련에서 헤어나는 길은 재기를 위한 힘을 영혼을 끌어모아서라도 비축하는 것이다. 패인 분석과 처방전은 이미 대부분 나와 있으므로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 지금 민주당에 중요한 것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에 나오는 오나라 부차의 장작더미와 월나라 구천의 곰 쓸개 같은 자기 채찍질의 도구와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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