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부터 ‘부엉이’까지…여의도 ‘계파 모임’ 잔혹사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2.06.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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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사모임 ‘친박vs친이’, ‘친문vs비문’ 논란 촉발 끝 해체
사모임 반대 기류에 “일방적 해체 요구는 反민주주의” 주장도

여야 모두 당내 ‘사조직’이 화두로 부상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친윤석열계 의원들이 주축을 이룬 ‘민들레’,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주도한 ‘처럼회’가 내홍의 진앙지로 지목됐다. 두 조직 모두 논란의 중심에 선 가운데 여의도 일각에서는 전당대회와 총선 공천권을 놓고 보이지 않는 싸움이 시작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과거부터 반복돼 온 ‘선거 전 사모임 결성→계파 분란→해체’의 역사가 다시금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5년 12월7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서청원 최고위원(오른쪽)이 발언하는 가운데, 원유철 원내대표(왼쪽), 김무성 대표가 앉아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2015년 12월7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서청원 최고위원(오른쪽)이 발언하는 가운데, 원유철 원내대표(왼쪽), 김무성 대표가 앉아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정당 내 사모임은 대학 내 동아리와 다르지 않다. 만드는 게 자유롭고, 가입에 제약이 없으며, 당의 관리도 받지 않는다. 다루는 주제도 다양하다. 사회 현안을 다루는 스터디 성격의 모임부터 초선, 재선 의원처럼 기수를 중심으로 뭉친 모임, 정부와 특정 정치인을 보좌하는 ‘친위대’ 성격의 모임도 존재한다.

보수 정당에서는 2007년 17대 대통령 선거 경선을 앞두고 다양한 사모임이 생겨났다. 명분은 ‘정치 스터디’였다. 그러나 모인 의원들의 구성을 보면,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의원들 간의 ‘계파 조직’ 성격이 짙었다.

친이계 의원들이 주축이 돼 만든 모임은 ‘함께 내일로(내일로)’였다. 18대 총선 3개월 뒤인 2008년 7월 생겨난 모임으로, 국정 운영을 돕는다는 게 조직의 목표였다. 초반에는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을 주축으로 40여 명의 의원들이 참여했다. 이후 세를 불리며 참여 의원 수가 70여 명까지 늘어났다.

친이계와 대척점에 선 친박계 의원들도 사모임을 조직했다. 유기준·김무성 전 의원 등이 참여하는 ‘여의포럼’이 대표적이었다. 18대 총선 당시 친이계의 ‘공천 학살’에 반발해 탈당한 뒤 친박 무소속 연대로 당선된 의원들이 주축을 이뤘다. 박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전 의원과 이정현 전 의원 등이 참여한 ‘선진사회연구포럼’도 대표적 친박계 사모임이었다.

그러나 결국 모든 사모임이 해체 수순을 밟았다. ‘내일로’는 선거개입 논란에 휘말린 끝에 사라졌다. 이재오 고문이 2011년 4·27 재보선을 일주일 앞두고 ‘내일로’ 주최 만찬에 참석해 “오늘 모임은 4·27 선거 승리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다시 짜서 체계적인 지침을 마련하려는 자리”이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진 탓이다. 여의포럼과 선진사회연구포럼은 2011년 말 ‘박근혜 비대위' 출범 뒤 계파 해제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해산 결정을 내렸다.

민주 진영에서도 사모임 갈등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근 사모임 문제가 불거진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른바 ’친문재인‘, ’비문재인, ‘친이재명’ 등으로 나뉜 계파가 모임을 갖는 빈도가 잦아졌다. 실제 21대 총선을 앞두고 친문 의원을 주축으로 한 비공개 모임인 ‘부엉이 모임’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비문 진영이 반발하기도 했다. ‘부엉이 모임’은 노무현 정부 출신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에 영입한 의원 약 40여 명이 몸담았다. 계파 논란이 계속되자 ‘부엉이 모임’은 2018년 7월 해체를 결정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민형배, 김승원 의원 등 '처럼회' 소속 의원들이 2021년 9월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한 인터넷 매체의 '윤석열 검찰총장 재직 당시 야당에 여권 인사들의 고발 사주 의혹' 보도와 관련해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 전 검찰총장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민형배, 김승원 의원 등 '처럼회' 소속 의원들이 2021년 9월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한 인터넷 매체의 '윤석열 검찰총장 재직 당시 야당에 여권 인사들의 고발 사주 의혹' 보도와 관련해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 전 검찰총장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계파 원흉” vs “활동 잘 하면 당에 도움”

윤석열 정부 들어 사모임 논란은 재현되는 모양새다. 민주당 내 검찰개혁 세력인 ‘처럼회’는 지방선거 패배 ‘책임론’에 직면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민들레’가 과거 ‘내일로’처럼 대통령 친위대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향후 전당대회와 총선이 다가오면 두 사모임을 향한 해체 요구가 더 거세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갖은 논란과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의원들이 사모임에 몸담는 이유는 무엇일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초선, 재선 의원들의 경우 ‘소통 기회 증가’, ‘정치 공부’, ‘존재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사모임에 가입하지 않고는 당의 중진들과 접점을 갖거나 중앙당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당을 밝히길 꺼려한 한 의원은 “지역구 이슈만으로는 중앙당에서 존재감을 갖기 어렵다. 모임에 들어가야 내 소신과 색(色)을 (동료 의원들에게) 드러낼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전했다. 다른 초선 의원실의 보좌관은 “초선 의원의 경우 모임에 들어가는 게 필수 코스로 여겨진다”며 “모임마다 선의의 의도를 내걸기 때문에 이를 거절할 마땅한 명분을 찾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정당 내 모든 사모임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모임이 실제 취지에 맞게 운영된다면 민주주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과거처럼 특정 후보의 당선이나 당내 다른 세력 견제용으로 뭉치는 모임이 생겨난다면, 당의 존폐 위기까지 번질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정당 내 사모임을 모두 싸잡아서 ‘좋다, 나쁘다’의 문제로 귀결해 시키는 것은 문제다. 정당은 권력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집합이고, 이들이 서로의 생각에 따라 뭉치고 경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다만 그 모임이 실제 어떤 활동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당의 노선과 발전을 두고 토론할 수는 있지만, 다른 계파를 공격하고 비난하는 행태가 반복된다면 당의 발전을 가로막는 원흉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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