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국제 마약조직, 한국을 ‘유통 경유지’로 악용”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2.08.08 07:30
  • 호수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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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유통 ‘온라인’화 가속...‘다크웹’ 홍보->‘텔레그램’ 주문->‘암호화폐’ 송금

1. 탈북민 출신 동남아 마약총책 검거

국가정보원(국정원)은 2019년 4월 ‘탈북민 최아무개 씨가 동남아에 체류하면서 한국에 필로폰을 밀반입·유통시키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확인 결과, 최씨는 한국에서 마약을 판매하다 수감된 이력이 있고, 2018년 3월 중국으로 출국한 후 베트남·캄보디아를 거점으로 중국·호주에도 마약을 공급하고 있었다.

국정원은 최씨가 캄보디아에 체류 중인 사실을 확인하고 현지 경찰과 공조해 검거에 나섰으나, 최씨는 수사기관의 추적을 유유히 따돌렸다. 이후 2021년 4월 최씨가 태국으로 밀입국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국정원은 태국 수사 당국과 공조해 2021년 7월 마침내 최씨를 검거했다. 이후 인터폴을 통해 국내 송환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태국 당국이 최씨의 보석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최씨는 캄보디아로 도주했다. 국정원은 최씨가 보석 기간 중 마약을 판매한 정황을 추가 확인하고, 캄보디아로 도피한 최씨를 끝까지 추적했다. 두 번의 실수는 없었다. 국정원은 현지 경찰과 공조해 올해 1월 캄보디아 남부 도시에서 최씨를 체포했고, 4월에는 국내 송환까지 마무리했다.

 

7월19일 ‘동남아 3대 마약왕’ 중 한 명인 일명 ‘사라 김’이 베트남 현지에서 검거돼 국내로 송환됐다. 이로써 최씨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로 불리던 박아무개씨까지, 동남아 3대 마약왕이 모두 잡혔다. 이는 한국 경찰과 인터폴, 현지 경찰뿐만 아니라 국정원의 집요한 추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정원은 국가정보원법 제4조 제1항 ‘국제범죄조직에 관한 정보의 수집·작성·배포’에 근거해 국제 마약조직의 국내 침투 시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국정원은 2018년부터 동남아 지역 정보·수사기관들과 공조해 한국인 마약조직 총책 6명을 현지에서 검거했다.

동남아 3대 마약왕 중 베트남에서 마지막 검거된 피의자 김아무개씨가 7월19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강제 송환되고 있다.ⓒ
동남아 3대 마약왕 중 베트남에서 마지막 검거된 피의자 김아무개씨가 7월19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강제 송환되고 있다.ⓒ연합뉴스

2. 삼합회-야쿠자-국내 마약조직 연계된 필로폰 90kg 적발

국정원은 2018년 7월, 정보망을 통해 ‘대만 범죄조직이 태국에서 부산으로 다량의 필로폰을 보냈다’는 결정적인 첩보를 입수했다. 당시는 중국 당국이 국경 단속을 강화하면서 다른 밀반입 루트인 태국·베트남 등지를 경유해 한국으로 마약을 들여올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었다. 국정원이 이 같은 국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가 결국 적발해낸 것이다.

국정원은 경찰과 공조해 필로폰 거래를 위해 국내에 들어온 대만 삼합회(죽련방) 조직원 A의 행방을 쫓는 한편, 세관에도 정보를 제공해 필로폰 밀반입에 이용된 수입화물의 추적에 들어갔다.

국정원과 경찰은 끈질긴 추적 끝에 2018년 8월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려던 A를 체포했고, A가 거주하던 서울 소재 임대주택에서 필로폰 90kg(시가 3000억원 상당, 300만 명 동시 투약분)을 압수했다.

조사 결과 A가 국내에 밀반입한 필로폰은 총 112kg이었고, 이 중 22kg은 이미 일본 야쿠자 조직을 통해 국내 마약조직에 판매됐음을 확인했다. 국정원과 경찰은 판매된 필로폰의 유통 경로를 추적해, 국내 최대 마약조직인 대구 거점 ‘성일파’ 총책 등 9명을 추가 검거했다.

 

국정원은 일본 야쿠자·대만 삼합회 등 국제 범죄조직들이 한국 마약 시장을 고수익 사업으로 인식하고, 국내 마약 밀반입·유통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국내의 필로폰 도매가는 동남아보다 수십 배 높은 상황이다.

마약사범의 경우 2015년부터 2021년까지 7년 연속 1만 명대를 웃돌았는데, 특히 국내 체류 외국인 마약사범은 2017년 932명에서 2021년 2339명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외국인 마약사범의 절반 이상은 동남아인이다. 이에 따라 동남아에 거점을 두고 국내로 마약을 밀반입하는 한국인 조직들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적발한 마약류는 1295kg으로, 2020년 321kg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했다. 154kg의 마약을 적발했던 2017년과 비교하면 8배 이상 폭증했다. 통상 필로폰의 1회 투약량은 0.03g이다. 쉽게 말해 4300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마약이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뜻이다.

적발한 마약류는 동남아의 필로폰·합성대마, 북미의 대마·필로폰, 멕시코의 필로폰 등으로 대표적인 마약 생산지에서 국내로 밀반입됐다.

홍콩세관은 2020년 11월 한국을 거쳐간 화물에서 필로폰 500㎏을 적발했다고 밝혔다.ⓒEPA 연합

3. ‘원산지 세탁’ 수법으로 역대 최대 규모 필로폰 404㎏ 밀반입 적발

2017년 콜롬비아발(發) 한국행 선박에서 코카인 수백kg이 적발됐다. 국정원은 이 사건의 배후에 국제 마약 유통 혐의로 미국·호주 수사기관이 추적 중인 B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B는 중남미발(發) 마약을 호주로 밀반입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마약 안전지대’로 인식되고 있는 한국을 경유지로 이용하기로 하고, 호주 교포 C를 포섭해 아시아 총책으로 활용 중이었다.

국정원은 C가 국내 하수인 D를 통해 위장 업체를 설립하고, 남미에서 대형 기계류에 마약을 숨겨 국내로 수입한 뒤 다시 호주로 수출하는 ‘원산지 세탁 수법’을 사용한 정황을 포착했다.

그러던 중, 2021년 5월 호주 당국이 한국발(發) 선적화물(헬리컬기어)에서 필로폰 230kg을 적발했다. 국정원은 아직 호주로 빠져나가지 못한 필로폰 은닉 헬리컬기어 9개가 국내에 남아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국정원은 관세청과 함께 두 달간 추적한 끝에 2021년 7월, 역대 최대 규모인 필로폰 404kg(시가 1조3000억원 상당, 1300만 명 동시 투약분)을 적발했다.

국내에 마약을 밀반입해온 D도 검거했다. 이후 국정원은 국내외 정보망을 총동원해 아시아 총책 C의 베트남 은신처를 파악했고, 호주·베트남 수사 당국 및 한국 검찰과 긴밀하게 공조해 지난 2월 C를 현지에서 검거해 한국으로 송환조치했다.

 

마약 유통 수법은 날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운반책들이 마약을 소지한 후 한국을 거쳐 다른 나라로 옮기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마약을 은닉한 물품을 정식 수출입 화물로 위장해 한국으로 밀반입한 후 제3국으로 다시 밀반출하는 ‘원산지 세탁’ 수법까지 활용되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마약 안전지대’라고 인식되고 있어, 각국 세관 당국이 ‘한국에서 출발한 화물은 충분한 검색을 했고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국제 마약조직들은 바로 이 점을 노린다”면서 “국제 마약조직들은 마약을 우리나라에 가져다놓고 호주·일본 등 대형 시장으로 유통시킨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약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일부를 국내에 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마약 구매자들은 보안성 높은 메신저 프로그램인 ‘텔레그램’ 등으로 마약을 주문한다.

4. 마약사범 저연령화…다크웹·SNS·암호화폐 악용

마약 시장에도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가 등장했다. MZ세대는 디지털 환경에 친숙하다. 이에 따라 마약 유통에도 각종 IT기술이 악용되고 있다. 마약 유통 채널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에 따르면, 국제 마약조직원들은 IT기술에 정통하며 암호화된 통신 수단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안다. SNS 등의 발달은 마약 소매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국정원 분석 결과, 마약 공급책은 ‘다크웹’이나 해외 SNS를 통해 마약 판매를 홍보한다. 그러면 구매자가 보안성 높은 메신저인 ‘텔레그램’ 등으로 마약을 주문한다. 공급책은 추적이 힘든 ‘암호화폐’로 송금하라고 요구한다. 구매자가 돈을 입금하면, 공급책은 해외 SNS를 통해 국내의 마약 은닉 장소를 알려주고 구매자에게 찾아가라고 한다. 이른바 ‘던지기’ 수법이다.

던지기의 최대 장점은 공급책과 구매자의 대면 접촉이 없다는 것이다. 구매자가 공급책의 얼굴도 모르니, 구매자가 잡혀도 공급책은 그만큼 안전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터넷 거래가 활성화한 흐름도 이러한 수법을 부추겼다.

마약사범들은 날이 갈수록 젊어지고 있다. 마약사범 중 30대 이하 젊은 층은 2019년 7886명에서 2020년 9322명, 2021년에는 9623명으로 늘어났다.

국정원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마약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마약 가격 역시 인근 동남아 국가보다 훨씬 높다. 국제 마약조직은 한국을 ‘고수익 시장’이라고 보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국제 마약조직과 연계한 국내 마약범죄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국정원은 대규모 마약 밀반입 정보를 신속히 입수해 신뢰성을 검증한 뒤, 수사권을 보유한 검찰-경찰-세관과 공조해 국제 마약조직의 국내 침투를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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