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리스크’ 줄이고, 反文 대신 국정 성과에 집중을”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05 13:00
  • 호수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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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의 반전 카드…인적 쇄신에 국정기조까지 바꾼다
광복절 특별사면과 함께 ‘통합’ 메시지 나올지 주목
전격 영수회담 제의하며 ‘협치’로 교육·연금 개혁 나설 수도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총체적 위기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취임 석 달도 안 돼 20%대로 주저앉았다. “임기 초반 20%대 지지율이면 공무원들도 말을 안 듣는다”는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의 말은 빈말이 아니다. 국정수행의 핵심 동력인 지지율이 이 정도로 추락하면 국정 난맥상은 국민 실생활과 직결된 정책 영역으로까지 번지기 마련이다. 

실제 윤 대통령을 뒷받침해야 할 국정의 세 축인 ‘당·정·대(대통령실)’는 지금 모두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집권여당은 리더십이 붕괴해 대혼란 상태에 빠졌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국민의힘은 지금 ‘비상 상황’이다. 정부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신음하는 민생경제 대책 대신 예민하고 중요한 사안을 자주 졸속으로 추진·발표해 가뜩이나 성난 민심에 불을 지르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려다가 거센 여론의 반대에 부닥친 게 대표적이다. 대통령실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인선을 반복해 비판을 자초했다. 무엇보다 당·정·대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정은 정책 기능에서, 대통령실은 조율과 정무 역량에서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고 지적한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차라리 선거 패배처럼 확실한 원인이 있다면 대응하기 쉬울 텐데, 지금 여권은 가장 최근 치러진 전국 선거를 연이어 세 차례나 이겼다. 대형 악재나 사고 없이 정권 초에 이와 같은 지지율 하락과 총체적 위기를 겪고 있는 전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과연 위기의 원인을 무엇으로 진단하고 있을까. 취재에 따르면, 당·정·대에 고루 분포된 핵심 측근과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들은 윤 대통령에게 지금의 총체적 위기를 가져온 핵심 원인을 각각 보고했다. 다양한 채널에서 여러 가지 안이 윤 대통령에게 보고됐지만,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공통된 핵심 키워드는 ①김건희 리스크 ②대통령의 태도와 메시지 ③반복되는 반문(反문재인) 기조 등으로 요약된다. 윤 대통령이 휴가 첫날부터 지방 방문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서울 자택에 머물기로 결정한 것은 이와 같은 참모진의 보고에 대한 숙고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박은숙

“尹 태도 바꾸고, ‘김건희 리스크’ 관리 철저히”

문제 해결의 시작은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는 데서 시작한다. 윤 대통령은 과연 참모들이 보고한 문제의 원인에 얼마만큼 동의할까. 문제 진단에 따라 처방전도 달라진다. 빗발치는 대통령실에 대한 인적 쇄신 요구에는 어떤 응답을 할까. 국정기조에도 변화를 줄까. 지금 윤 대통령 앞에는 ‘통합과 협치’ ‘일하는 대통령실’ ‘약자와의 동행’ 등의 키워드로 정리되는 반전 카드들이 놓여 있다. 

윤 대통령은 여름휴가에서 복귀하는 8월8일부터 8·15 광복절 특별사면과 광복절 경축사, 취임 100일(8월17일) 메시지와 민생 일정 등을 통해 현재의 위기 상황을 타개할 반전 카드를 국민 앞에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과연 윤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할까. 윤석열 정부의 초반 승부처가 윤 대통령의 선택에 달렸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휴가를 가기 전에 윤 대통령에게는 현재의 총체적 난국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해쳐 나갈 것인지를 담은 보고서가 윤 대통령과 가까운 다양한 채널로부터 전달됐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여권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에게 전달된 현재의 위기 진단은 결국 세 가지로 요약된다”면서 “대통령이 이러한 진단에 동의할지 여부에 따라 인적 쇄신과 국정기조 변화 등 후속 조치들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건희 리스크’는 현재의 위기를 불러온 첫 번째 이유로 지목됐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 취임 이후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핵심 참모들은 ‘김건희 리스크’가 윤 대통령이 정치 참여 명분으로 앞세운 ‘공정과 상식’이란 기조를 무색하게 만드는 뼈아픈 지점이라고 꼬집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김 여사는 취임 당시부터 ‘대통령실 사유화’ 논란 등을 일으켰다. 김 여사가 운영하던 코바나컨텐츠 직원 2명이 총무비서관실 관저팀에 채용됐고, 권양숙 여사 예방 때 김 여사는 자신의 지인을 대동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에 이해충돌 여지가 있는 윤 대통령 외가 6촌과 지인의 아들, 김 여사 회사 관계자 등이 채용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은 들끓었다. 

ⓒ국회사진기자단
김건희 여사가 2021년 12월26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허위 학력·경력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전임 정부 탓 그만하고 업무 성과로 실력 보여야”

문제는 이런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때는 윤 대통령 부부와 인연이 있는 인사비서관의 부인이 동행해 논란이 일었다. 최근엔 김 여사가 코바나컨텐츠를 운영할 당시 전시회 인테리어를 담당했던 업체가 12억여원 규모의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내부 공사 일부를 수의계약 형태로 맡은 것도 드러나 친분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얼마 전에는 ‘건진법사’로 불리는 무속인 전아무개씨가 윤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사칭해 세무조사나 인사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처럼 행세하며 이권에 개입한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대통령의 측근들은 김 여사 외에도 김 여사의 오빠와 모친 등 처가 식구들에 대한 관리도 엄격하고 철저히 할 것을 주문했다고 전해진다. 아무런 공적 직책이 없는 김 여사의 오빠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기자들을 상대하며 선별적으로 대통령 부부 관련 정보를 전달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윤 대통령의 장모는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 등 다양한 의혹에 연루돼 있다. 

윤 대통령에게 전달된 현재 위기의 또 다른 근본 원인은 윤 대통령 자신의 태도와 메시지다. 대표적 사례가 ‘도어스테핑’으로 불리는 출근길 문답에서의 윤 대통령의 모습이다. 실제 출근길 문답은 국민 소통·공감 확대라는 좋은 의도를 살리지 못하고 혼선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 “주 52시간제는 보고받지 못했다” “과거엔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하지 않았느냐” “대통령은 처음이라” 등 숙고하지 않은 발언들이 쏟아지면서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이 됐다.

대통령실 사정에 밝은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이런 양상을 타개할 참모들의 노력도 안 보인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좀 더 정교한 방안들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대통령이 출근길 문답을 할 때 국민 앞에 선다는 마음을 갖고 기존의 자세를 고쳐야 한다. 국민 보시기에 대통령이 불편한 질문은 건너뛰고 지나치면, 오만하고 독선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위기 상황에 비상대응이 필요한데, 메시지 집중 관리와 일관된 관리가 필요하지만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을 못 막았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핵심 측근들은 각종 실패와 위기를 문재인 정부 탓으로 돌리는 대신 국정기조를 ‘일하는 정부’ ‘일하는 대통령실’ 등에 초점을 맞출 것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임 정부에 대한 수사와 감사 등에 대한 속도를 조절하고, 정부여당의 메시지도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윤 대통령은 출근길 문답에서 장관급 후보자의 부실 인사 검증 지적에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고 말해 논란을 산 바 있다. 여당 일부에서도 현 정부의 지지율 하락이 “전 정부의 부채 고지서 폭탄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현재 권력을 쥐고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것은 윤석열 정부인데, 계속 ‘남 탓’만 하는 것은 오히려 민심 이반을 부추기고, 민생을 외면하는 이미지를 고착시킬 수 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현 정부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전 정권과 비교하거나 과거 탓을 하면 국민 눈높이에서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면서 “국정을 책임진 현 정부가 더 이상 과거 정권 탓을 하지 말고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챙기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책 컨트롤타워 세울 시스템 정비 고심

윤 대통령은 과연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휴가 중인 윤 대통령이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가까운 지인과 핵심 참모그룹, 여당의 윤핵관 등이 제기한 현재의 위기 진단에 대해 윤 대통령이 얼마만큼 동의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일지에 따라 향후 대처 방안의 방향과 강도도 상당히 달라질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익명을 원한 한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 앞에는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유력한 몇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면서 “이번 결정은 매우 고도의 정무적·정치적 판단일 뿐만 아니라 향후 인적 쇄신의 강도와 국정기조 변화 등을 결정지을 전략적 판단이니만큼 대통령 외에 누구도 결정을 대신해줄 수 없다. 대통령이 숙고 끝에 내리는 판단에 따라 앞으로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휴가 중인 윤 대통령의 ‘정국 구상’에는 당·정·대 동시 쇄신론은 물론 지금까지 견지해 왔던 국정운영에 변화를 줄지에 대한 ‘국정기조’도 포함돼 있다. 이에 대통령실 안팎에서는 윤 대통령이 휴가에서 복귀한 후 8·15 광복절 대사면 및 경축사 등을 기점으로 국정운영 동력 강화를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인적 쇄신 여부와 그 강도는 현재 정치권이 가장 주목하는 지점이다. 현재 여권에서는 국민의힘이 비대위 체제 전환을 모색하며 쇄신 물꼬를 튼 만큼 대통령실 비서실장과 주요 수석비서관급 참모진의 인적 쇄신도 불가피하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실제 지난주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과 일부 수석비서관이 윤 대통령에게 “책임을 느낀다”며 사실상 사의를 표했으나 윤 대통령은 이를 다독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의 고심은 ‘일하는 대통령실’이라는 핵심 기조 속에 인적 쇄신으로 새롭게 국정 동력을 확보할지, 참모진 교체 대신 시스템 개편으로 흐트러진 대통령실의 기강과 질서를 바로 세울지 사이에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윤 대통령은 정부가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려다 거둬들인 사태 등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판단 아래 정책실장직 폐지 후 정책 컨트롤타워가 부재하다는 지적을 어떻게 보완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사정에 밝은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금 필요한 인적 쇄신의 방향은 크게 ‘감동 있는 쇄신’과 ‘시스템 개편’이 돼야 한다”면서 “국민의힘 비대위도, 대통령실의 인적 쇄신도 파워게임 당사자들이었던 윤핵관이 아닌 실제 일을 할 사람들로 채워지는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 동시에 민정수석실과 정책실장직 폐지 후 기능 공백이 노출된 게 사실이니만큼 인적 쇄신을 통해 다시는 시스템 부재와 충돌로 실수가 이어지지 않게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4선 중진인 홍문표 의원과 최고위원 사퇴를 선언한 조수진 의원은 최근 ‘윤핵관 2선 퇴진론’을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지금 대통령실에 가장 필요한 자리는 특별감찰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별감찰관은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 대통령실의 수석 이상 공무원의 비위행위를 감찰한다. 최근까지 불거진 ‘김건희 리스크’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 등은 현 정부 권력 핵심부에 대한 적절한 감시와 사정 기능이 없어서 생겼다는 분석이 많다. 민정수석실을 폐지한 데 이어, 공직기강비서관도 민간인 조사에 한계가 뚜렷하다. 박근혜 정부 이후 유명무실 상태인 특별감찰관을 서둘러 부활시켜 더 큰 화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윤 정부 상징할 국정 슬로건 제시될까

윤 대통령은 ‘일하는 정부’의 모습으로 현 정국을 돌파하려는 의지도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교육·연금·노동 개혁 등과 같은 중차대한 국가적 어젠다를 임기 초 힘 있게 추진하고자 한다. 이렇게 되면 언론의 관심도 대통령에서 다른 장관과 수석들로 분산될 수 있고 윤 대통령도 부담을 덜 수 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새 정부의 국정기조를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국정 슬로건’을 세우는 작업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정부의 존재 이유와 차별화 지점 등을 국민에게 알기 쉽게 전달할 핵심 슬로건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많았다고 한다. 이기정 전 YTN 선임기자가 최근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으로 발탁된 데도 이런 맥락이 녹아있다는 후문이다. 

윤 대통령이 광복절 특별사면을 고리로,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통합의 정치’를 강조하고 야당에도 손을 내미는 ‘협치’ 메시지를 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전격적으로 여야 영수회담을 먼저 제의할 수도 있다. 8월28일 더불어민주당에 새 지도부가 들어서는 만큼 윤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최근의 경제위기 돌파를 위해 마주 앉은 모습 자체는 국민에게 희망처럼 보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현재의 여소야대 구도 속에서 169석 거대 야당의 협조 없이는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없다는 문제의식도 갖고 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 등을 통해 최근 김진표 국회의장이 밝힌 개헌 제의에 대한 입장을 낼지도 주목된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윤 대통령이 김 의장의 제의에 호응한다면 정국은 빠르게 개헌 논의로 재편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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