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의 세계는 어디까지 확장될까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2.08.19 14:00
  • 호수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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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전반에 확산된 ‘우영우 신드롬’, 드라마 역주행도 이끌어
종영 이후에도 ‘우영우 효과’ 지속… 시즌2·뮤지컬 제작 계획

드라마 하나가 신드롬을 일으켰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천재적 두뇌를 지닌 신입 변호사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 얘기다. 2022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콘텐츠가 된 이 드라마는 15%가 넘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ENA라는 채널의 존재감까지 알렸다. 단순히 시청률 측면에서 성공했다고 평가하기엔 부족하다. 팬들은 드라마에 과몰입하며 《우영우》라는 심해에 빠져버렸고, 우영우의 머리에서 시시때때로 떠오르던 고래마저 드라마의 시그니처 캐릭터처럼 여겨지며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드라마 방영은 끝났지만 《우영우》가 만들어 낸 ‘우영우 현상’은 아직 방영 중이다. 콘텐츠, 도서, 음악, 웹툰, 뮤지컬 등 문화계 전반에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콘텐츠 자체의 파급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NA 제공

OTT 플랫폼의 역주행 이끌어

KT 계열사인 스카이TV가 운영하는 ENA라는 채널, 주인공이 자폐인이라는 설정. 모든 것이 낯설었다. 0.9%라는 1회 시청률은 이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낯가림을 보여주는 수치였다. 이 드라마가 두 자릿수의 시청률을 찍으며 신생 채널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 이유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오지만, 어쨌든 성공의 전제는 콘텐츠 자체의 매력이다. 드라마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풀어가면서도 법적 쟁점과 사실관계에 기반한 딱딱함이 아닌 ‘우영우’라는 사람을 둘러싼 인간관계의 따뜻함을 드러낸다. 흥행 드라마의 성공 공식처럼 여겨졌던 자극적인 소재나 막장 전개 없이 ‘사람 냄새 나는’ 에피소드로 감동을 전했다는 평이다.

지상파도 이루기 힘든 10%대의 시청률을 찍었고, 드라마에 대한 인지도는 시청률을 훌쩍 넘어섰다. 그 배경에는 OTT가 있다. 드라마는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와 시즌을 통해서도 공개됐다. 특히 글로벌 OTT인 넷플릭스에서 《우영우》는 비영어권 드라마 부문에서 3주 연속 시청 시간 1위를 차지하는 등(8월 둘째 주 기준)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감소세를 이어가던 넷플릭스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가 5개월 만에 반등한 것도 《우영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주연 배우 박은빈의 전작 드라마인 SBS 《스토브리그》(2019~2020), 《브람스를 좋아하세요?》(2020), KBS2《연모》(2021)(위쪽부터) 등의 역주행을 이끌었다.ⓒSBS·KBS2 제공

《우영우》는 ‘역주행’ 신드롬까지 이끌어냈다. 드라마에 빠진 시청자들은 등장인물에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들이 출연하는 과거 콘텐츠들이 소환된 이유다. 특히 우영우 역을 맡은 박은빈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시청자들은 그의 기존 출연작인 《스토브리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연모》 등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가능한 배경에도 OTT가 있다. 과거 콘텐츠를 찾아보거나 다운로드받아야 했던 예전과 달리, OTT 플랫폼을 통해 옛날 드라마를 찾아보는 것은 간편해졌다. OTT가 알고리즘을 통해 관련 작품을 직접 추천해 주는 경우도 있다. 박은빈의 전작 《연모》는 지난해 12월 종영한 드라마지만 8개월이 지난 지금 넷플릭스의 한국 톱10까지 다시 오르며 《우영우》의 인기를 방증했다.

관심 있는 배우의 작품을 찾아보는 일명 ‘필모 깨기’ 현상은 《우영우》가 없는 플랫폼에서도 일어났다. 이준호 역을 맡은 강태오가 다시 조명되면서 그가 등장한 드라마 《조선로코-녹두전》 《딱밤 한 대가 이별에 미치는 영향》이 웨이브와 왓챠의 인기 순위에 오른 것이다. 웨이브는 《녹두전》 외에도 박은빈의 과거 작품인 《스토브리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등을 ‘거꾸로 해도 우영우 출연작 모음 zip’ 카테고리를 통해 공개했는데, 《우영우》의 판권이 없는 웨이브가 마케팅에 나서는 것에 대해 ‘숟가락 마케팅’이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우영우》가 없는 OTT 플랫폼에서 ‘우영우’를 검색하면 박은빈, 강태오, 강기영, 하윤경 등 주요 출연진의 과거 작품이 검색된다. 고래 관련 다큐멘터리까지 검색되는 경우도 있다.

《우영우》는 변호사들의 저서에 실린 실제 사건들을 기반으로 에피소드를 꾸렸다.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2016), 《법정의 고수》(2020)의 판매량이 급증했고 올해 출 간된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는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한겨레출판사·솔·서삼독 제공

영화·출판업계까지 움직이는 《우영우》

‘우영우 신드롬’이 만들어낸 역주행 현상은 드라마 콘텐츠에 그치지 않는다. 본래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드라마의 경우,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 원작 소설을 찾는 이가 늘어난다는 것은 당연한 공식이다. 그 과정에서 과거 출간된 소설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다시 오르는 역주행 현상도 일어난다. 《우영우》는 조금 다른 포맷을 취한다. 오리지널로 기획된 작품이기 때문에 원작은 따로 없지만, 드라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여러 가지 사건들을 다룬다. 특히 호평을 받은 에피소드는 변호사들의 저서에 실린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법정 사건들이 현실적이며 탄탄하다는 평을 받는 배경이기도 하다.

토지 보상금 100억원 때문에 삼형제가 소송을 벌인 ‘삼형제의 난’은 조우성 변호사가 승소를 이끌어낸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했다. 조 변호사의 에세이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에 수록된 에피소드다. 남편을 다리미로 살해한 노인의 무죄를 입증하는 에피소드, 자폐를 가진 아들이 형을 숨지게 한 사건을 밝혀내는 에피소드는 신민영 변호사의 사건 일지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2016)에 수록된 일화가 바탕이 됐다. 소덕동을 관통하는 도로 계획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7~8화는 신주영 변호사의 《법정의 고수》(2020)에 실린 내용을 기반으로 했다.

드라마는 실제 사건에 대한 관심까지 환기시켰고, 그러면서 서점가의 역주행 현상을 만들어냈다. 관련 도서의 판매량은 시청률 상승과 함께 급증했다. 2016년에 출간된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는 방송이 나간 이후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예스24 사회·정치 분야 톱20에 올랐고, 2년 전 출간된 《법정의 고수》도 판매지수가 오르면서 톱100에 포함됐다. 드라마를 기점으로 장애 관련 도서들도 다시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다. 30년간 자폐 아들을 돌본 엄마의 이야기 《아들의 답장을 기다리며》는 7월1일 복간된 이후 감성·가족 에세이 분야 톱10에 올랐다.

《우영우》는 영화 《증인》의 지우가 어른이 되어 변호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 드라마다.ⓒ롯데엔터테인먼트

《우영우》 출연진이 등장하지 않지만 다시 역주행하는 콘텐츠도 있다. 영화 《증인》(2019)이다. 《증인》은 《우영우》를 쓴 문지원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작품으로,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김향기)가 법정에 서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 속 지우는 ‘사람을 도와주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며 변호사를 꿈꾼다. 《증인》의 지우는 “자폐가 있어 변호사는 하지 못하지만 좋은 증인은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문 작가의 드라마 데뷔작인 《우영우》에서 자폐가 있는 우영우는 훌륭한 변호사가 된다. 드라마 초반, 지우와 영우가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지우의 캐릭터가 성장해 영우가 된 것은 아닌지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진 이유다.

실제로 《우영우》는 《증인》의 지우가 어른이 돼서 변호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 드라마다. 문 작가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우영우는 영화 《증인》을 보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지만, 지우는 《우영우》란 드라마를 본방사수할 것 같은 인물이다. 굉장히 재밌게 볼 것 같고, 영우 말투를 복사하듯 따라 해도 유일하게 비난받지 않을 것 같다”며 “캐릭터 성장이라기보다는 그 친구는 그 친구대로 살고 있고, 우영우는 우영우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창작자로서 영화나 드라마 속 인물들이 평행 우주 어딘가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법정물이지만 ‘좋은 사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두 작품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넷플릭스나 티빙 등 OTT 플랫폼에서 영화 《증인》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웹툰을 비롯해 《우영우》의 IP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도 제작 된다. 네이버 웹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네이버 웹툰 제공

웹툰에는 혹평… IP 활용의 과제 남아

종영 이후에도 《우영우》의 영향력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우영우》를 리메이크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한국 드라마를 원작으로 미국 ABC채널이 리메이크한 《굿닥터》는 시즌5까지 흥행하면서 전미 시청률 1위까지 차지한 바 있다. 매회 에피소드별로 전개되는 장르물의 특성상 《우영우》 역시 시즌을 이어가며 흥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제작사 에이스토리는 2024년 방송을 목표로 시즌2를 계획하고 있다. 스케줄 조율이 쉽지 않지만 되도록 출연자와 연출진 교체 없이 가겠다는 것이 제작사의 입장이다.

《우영우》는 슈퍼 지식재산권(IP)으로 자리 잡으면서 콘텐츠 영역도 확장했다. 에이스토리의 자회사인 에이아이엠씨는 최근 공연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와 뮤지컬 제작 업무 협약을 맺었다. 원작 드라마의 3개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3편의 뮤지컬을 제작하고, 2024년 초연할 예정이다. 각기 다른 창작진과 배우들로 제작되기 때문에 원작 배우들에 대한 팬덤보다는 스토리의 힘이 관건이다. 보통 드라마를 뮤지컬로 만드는 경우에는 방대한 스토리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원작의 묘미를 가져갈 수 있는지가 핵심이 된다. 엄홍현 EMK 대표는 “《우영우》는 에피소드별로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무대화를 통해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확장판 형식으로 표현해 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제작 이유를 밝혔다.

이렇게 다방면에서 신드롬을 만들어낸 《우영우》지만 남아 있는 과제가 있다. 콘텐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오리지널리티를 지켜가야 한다. 지난 7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네이버 웹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그 중요성을 보여준다. 드라마의 웹툰화는 방영이 끝난 후에도 웹툰을 통해 IP의 생명력을 보장한다는 장점이 있다. 성공한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의 IP를 활용해 웹툰으로 제작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흥행성을 보장하지만, 드라마와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 생각했던 《우영우》는 시작하자마자 혹평을 받았다. 원작 드라마의 매력을 기대하고 웹툰을 찾는 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웹툰 평점은 6~7점대에 그쳤고, 독자들은 댓글을 통해 연출에 대한 아쉬움과 내용 전달력을 지적했다. 자폐 스펙트럼 특성을 섬세하게 연기했던 드라마와 달리 웹툰이 원작 줄거리를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작품의 디테일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일었다.

SBS 드라마 《그해 우리는》은 방영 기간에 프리퀄(오리지널 작품에 선행하는 사건을 담은 속편) 웹툰으로 남녀 주인공이 고등학교 시절에 겪었던 이야기를 그려내 9.98점이라는 높은 평점을 받은 바 있다. 드라마에 애정을 가진 독자들은 이를 예로 들며 “스핀오프로 우영우의 로스쿨 때 모습을 그리는 것이 나았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웹툰 제작진은 “원작 드라마의 스토리뿐 아니라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에피소드도 추가로 선보이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웹툰에 대한 저조한 반응은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드라마 방영이 끝난 지금은 원작 IP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 IP 활용 영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작의 매력과 디테일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대한민국에 하나의 신드롬을 일으킨 《우영우》의 세계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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