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는 회계사’가 본 우영우는? “나처럼 인복 많은 장애인”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4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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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체 장애인 회계사 장지혜씨
“장애나 가난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회 되길”

“드라마 속 우영우는 저처럼 인복이 많은 변호사에요. 주변에 츤데레(차가운 척 하지만 속은 따뜻한 사람) 같은 지원군이 많잖아요.”

장지혜(28)씨는 대학에 다니던 6년 전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 장애인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서울대 출신’, ‘대형 회계법인 회계사’처럼 ‘장애’ 또한 자신을 특정 하는 정체성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한다. 물론 갑자기 찾아온 장애를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시 걸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만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고 했다. 장씨를 단단하게 만든 계기는 ‘나’를 있게 해준 주변인들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이 책임감이 이제 장애인들을 위한 목소리로 나오고 있다.

23일 시사저널이 만난 장씨는 5년차 회계사이자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다. 불과 몇 해 전 사고를 당해 지체장애인이 됐는데도 대형 회계법인에 당당히 입사했다. 최근 화제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주인공 우영우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도 대형 로펌에 입사한 것과 비슷하다. 장씨 스스로도 우영우의 삶과 본인의 일상 생활이 닮아있다고 말한다. ‘휠체어 타는 회계사’라고도 불리는 장씨는 이 드라마를 어떻게 봤을까.

'휠체어 타는 회계사' 장지혜(28)씨가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장지혜씨 제공
‘휠체어 타는 회계사’ 장지혜(28)씨가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장지혜씨 제공

최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의 흥행을 기점으로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일상에서 달라진 점을 느끼는가. 

“드라마가 흥행한 이후 내 상황에 공감을 더 이끌어낼 수 있게 됐다. 주변인들은 내가 (드라마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할까봐 언급을 꺼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우영우에 비유할 수 있게 되면서, 주변인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게 더 쉬워졌다. 얼마 전에도 친구에게 ‘네가 나의 최수연(드라마 속 우영우의 친구)이다’, ‘너가 나의 햇살이다’라고 전했다. 또 사회적으로도 드라마를 통해 ‘장애인들도 우리랑 같이 살아야 되지 않을까’ 하며 사회의 일원으로 생각해주는 이들이 많아졌다. 자신과 다른 존재로 여기는 것은 바뀌지 않았지만, 인식이 점차 변해가는 거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어떻게 봤나. 드라마에서 묘사된 상황과 실제 일상은 어느 정도 닮아있다고 보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장애를 가장 입체적으로 다룬 드라마라서 공감됐다. 장애인 당사자 주변에 있을 법한 일상 캐릭터들을 잘 구현했기 때문이다. 최수연이나 정명석 같은 ‘츤데레’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우리 회사에도 이들처럼 뒤에서 묵묵히 챙겨주시는 분들이 많다. 나는 인복이 좋은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우영우도 나처럼 인복이 많은 변호사라고 생각된다. 또 여러 장애인들의 군상을 보여준 점, 장애인의 고난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일반인과 같은 일상을 보여준 점도 새로웠다.”

드라마 주인공인 ‘우영우’ 캐릭터에 대해선 얼마나 공감하는가.

“우영우 캐릭터는 장애인으로서 공감을 자아내는 포인트가 많았다. 우영우가 극중 법정에 처음 섰을 때 ‘장애만큼 동정을 불러일으키기 좋은 요소는 없으니까요’라고 말한 장면이 있다. 이때 극중 주변인들은 모두 벙찐 반응을 보였다. 이건 내 얘기기도 하다. 이를테면 동아리에서 장애인 당사자로서 ‘나는 까방권(까임방지권)이 있다’며 친구들하고 농담을 나눈 적도 있다. 우영우가 극중에서 ‘다른 사람을 공감하지 못해서 좀 외로웠다’고 토로한 장면도 공감이 됐다. 나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걸 좋아하는데, 가끔 비장애인 친구들 사이에서 이방인으로 느껴질 때도 많다.”

드라마에는 장애인에 대해 적대적인 캐릭터도 나온다. 현실에선 어떤가.

“물론 권민우처럼 불만을 토로하는 인물도 존재한다. 퇴근시간에 지하철을 타는데 어떤 할머니가 나보고 ‘복잡한데 왜 탔냐’고 한 소리 하시더라. 드라마에서 권민우도 ‘장애’처럼 ‘가난’이라는 소수적 정체성(소수성)을 가지고 있다. 그는 본인의 어려움이 더 크다며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공감하지 못한다. 실제로 요즘 세대 청년들은 취업난 등 현실 고충 때문에 남의 어려움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만약 우리 사회에 권민우 같은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장애인들이 또 외면 받을까 걱정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서 장애인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이나 비판할 점은 없었나.

“우영우 같은 서번트 증후군은 자폐 장애 내에서 1%도 안 되는 극소수다. 그런데 우영우의 능력이 기준이 되서, 다른 자폐 장애인들에게 ‘너는 왜 우영우처럼 못해’라는 질책이 가해질까 우려됐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도 바리스타 교육을 받는 지적 장애인을 비롯해 여러 군상을 같이 다룬 것 같다. ‘우영우는 장애인을 대표하는 기준이 아닌, 한 사례다’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장지혜씨가 8월22일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본사 카페에서 업무를 하고 있는 모습 ⓒ시사저널 변문우
장지혜씨가 22일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본사 내부 카페에서 업무를 하고 있는 모습 ⓒ시사저널 변문우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 시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시민들이 겪는 불편과 전장연의 입장이 모두 공감돼 안타깝다. 장애인들이 목소리를 낸 건 20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장애인들은 여전히 일반 시민들이 7분이면 갈 수 있는 지하철 환승통로를 20분 걸려서 간다. ‘장애인의 시간은 24시간이 아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정부가 소수의 목소리란 이유로 장애인 문제를 방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시위가 빨리 끝나려면, 정부가 책임을 미루지 않고 장애인들의 목소리에 답해줘야 한다. 그래서 장애인들에게 적어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출발선을 만들어줘야 한다.”

앞으로 한국 사회가 어떤 사회로 변화하길 기대하는가.

“저마다 장애나 가난과 같은 소수성을 숨기지 않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서로의 소수성에 대해 공감하고 인정해주는 거다. 권민우 같은 사람도 자신의 가난을 숨기지 않고, 또 타인의 장애도 공감할 수 있도록 말이다. 또 만약 내가 장애를 가진 아이를 가지더라도 이 세상에 신뢰하며 아이를 낳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은 내가 사회에서 장애인으로서 겪은 고난이 떠올라, 쉽게 장애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고 확신하진 못하겠다.”

지금의 본인은 회계사이자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다. 또 다른 꿈도 있는가.

“김연아 선수처럼 내 목소리에 힘이 생겼으면 좋겠다. 김연아 선수는 피겨스케이팅 불모지 환경을 이겨내고 결실을 보여줬다. 평창 올림픽 유치에도 기여하고, 현재 피겨 환경도 좋아졌다. 나도 장애라는 힘든 환경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장애인들을 위한 실질적 환경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다. 이게 그나마 내가 가진 행운들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는 방법 같다. 또 목소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면 국회의원 분들도 ‘무엇이 필요하냐’며 물어봐주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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