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트윈데믹 넘어 ‘멀티데믹’ 도래 가능성 크다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2.09.17 10:05
  • 호수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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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 해제로 코로나19·독감·RSV 동시 유행 조짐
전문가 “국민의 백신 기피 심리 해소해야”  

최근 독감 유행 규모가 ‘유행주의보’ 발령 기준에 근접했다. 영·유아에게 위험한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까지 늘면서 코로나19와 여러 호흡기 감염병이 동시에 유행하는 ‘멀티데믹(multiple pandemic)’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거리두기를 하지 않으니 아데노, 라이노, RSV 등 여러 감염병이 확산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후 강한 거리두기 시행으로 독감 등 다른 감염병이 거의 유행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집단면역이 없는 상태다. 올해는 거리두기를 하지 않으면서 코로나19와 독감 등 다른 감염병이 증가하고 있어 올가을 이후 트윈데믹(두 감염병이 동시에 유행하는 것)을 넘어 멀티데믹까지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남반구인 호주는 겨울이었던 6~7월 코로나19·독감·RSV가 동시에 유행하는 멀티데믹을 경험했다.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인 호주는 북반구 독감 유행을 앞서 가늠할 수 있는 지표 국가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9월1일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코로나19의 재확산보다는 그것과 겹칠 수 있는 질병에 대비해야 한다. 올겨울 코로나19 확산과 꽤 나쁜 독감 시즌(pretty bad flu season)이 맞물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올해는 9월말부터 독감 유행할 듯

국내 독감 유행은 이미 위험 수준이다. 질병관리청이 발간한 ‘감염병 표본감시 주간소식지’에 따르면 36주 차(8월28일~9월3일) 기준 독감 의심 증상을 보이는 환자는 외래 환자 1000명당 4.7명이다. 같은 시기 해당 수치는 2018년 4.0명, 2019년 3.4명, 2020년 1.7명, 2021년 1.0명으로 확연한 감소 추세였다. 그런데 다시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보다도 더 많은 독감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수치가 4.9명일 때 독감 주의보가 발령된다. 임숙영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상황총괄단장은 9월13일 정례 브리핑에서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동시에 인플루엔자(독감)가 유행하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코로나19와 독감 등이 동시에 유행하는 이유는 거리두기와 집단면역이 없는 상황 때문이다. 김우주 교수는 “2020~21년과 달리 지금은 강한 거리두기를 하지 않아 6~8월부터 독감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이는 예년에 보지 못한 양상이다. 보통 11월말이나 12월초에 독감 유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올해는 9월말부터 독감이 유행할 조짐이 농후하다”고 전망했다. 

독감뿐만이 아니다. 급성호흡기감염증 환자는 665명(리노바이러스·RSV 등)으로 전주(614명)에 이어 계속 증가세다. 이는 지난해(94명)보다 7배 이상으로 늘어난 수치다. 특히 RSV는 영·유아에게 모세기관지염과 폐렴을 유발한다. 이 외에 아데노바이러스, 살모넬라균, 수족구병 바이러스 등의 발생도 매주 증가세다. 

문제는 독감 등 이들 감염병 증상이 코로나19와 크게 다르지 않아 증상만으로는 구별이 어렵다는 점이다. 감염병을 정확히 구별하려면 유전자증폭(PCR)검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일선 동네 병·의원에서 환자 전원을 대상으로 PCR검사를 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 때문에 여러 감염병이 동시에 유행하면 의료기관에서 혼란이 커질 수 있다. 김우주 교수는 “코로나19는 50% 전후로 발열이 있다면, 독감은 90% 이상 열이 나고 한나절 만에 열이 40도까지 오르기도 한다. 독감은 근육통이 심하지만, 코로나19는 인후통이 좀 더 뚜렷하고 목소리가 쉬는 증상도 있다. 그러나 동네 병·의원에서 임상 진단 또는 신속항원검사 키트만으로 코로나19와 독감 등을 감별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미국은 지난 5월 코로나19와 독감을 동시에 진단할 수 있는 듀얼 키트를 개발했다. 임숙영 상황총괄단장은 9월13일 브리핑에서 “환자가 의료기관에 갔을 때 정확하고 빠르게 진단하고 치료로 연결하는 것이 가장 관건이다. 동시 검사방법에 대해 정부 내부에서 현재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방역 당국은 다소 주춤한 코로나19 유행이 올겨울 다시 확산할 것으로 본다. 그러면 코로나19와 다른 호흡기 감염병에 동시에 감염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대한민국의학한림원·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9월5일 개최한 ‘계속되는 코로나19 환자 발생과 가을 대책’ 온라인 포럼에서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9월에는 코로나19 재감염률이 7% 이상으로 높아지고 9~10월에도 확진자 규모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기존 백신보다 2.6배 효과 내는 개량 백신 

전문가들은 코로나19와 마찬가지로 독감이나 RSV 등도 불필요한 모임을 줄이고 손 씻기, 마스크 쓰기 등 개인위생 수칙을 지키는 것이 최선의 예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어린이와 고령자 등 고위험군은 독감 예방접종을 꼭 받을 것을 권고한다. 독감 백신은 유행이 시작되기 1개월 전쯤 맞는 게 가장 좋고, 코로나19 백신과 동시에 맞아도 된다. 코로나19 백신은 변이 바이러스를 겨냥한 2가 백신(개량 백신)을 맞으면 된다. 2가 백신이란 두 가지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는 백신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개발 또는 허가가 진행 중인 2가 백신은 총 4종으로 모더나와 화이자가 2종씩 개발 중이다. 2종은 초기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원형 바이러스와 BA.1(기존 오미크론)을, 나머지 2종은 원형 바이러스와 BA.4·BA.5를 겨냥한 백신이다. 개발·허가 일정상 BA.1 변이를 겨냥한 모더나 개량 백신이 가장 먼저 국내에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4분기(10~12월)에 개량 백신을 도입해 고위험군부터 접종할 계획이다.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은 8월31일 ‘2022~23년 동절기 코로나19 추가접종’ 기본 방향을 설명하면서 “먼저 국내 도입이 예상되는 BA.1 기반 2가 백신부터 접종을 시행하되, 품목허가 진행 상황에 따라 BA.4와 BA.5 기반 백신도 신속히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일부 감염병 전문가는 국내에서 우세종인 BA.5 기반 개량 백신을 기다렸다가 맞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한 바 있다. 실제로 화이자의 개량 백신(BA.4와 BA.5 기반)은 동물실험에서 BA.4와 BA.5에 대한 중화 능력이 기존 백신보다 2.6배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김우주 교수는 “문제는 물량 확보다. BA.5 기반 개량 백신의 초기 물량은 미국이 먼저 확보할 것이므로 우리가 도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도입한다는 BA.1 기반 개량 백신도 초기에 약 1600만 도즈가 필요하다. 또 개량 백신이 도입된 후 기존 백신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숙제”라고 지적했다.

누가 이 백신을 맞을 수 있을까. 방역 당국의 코로나19 정책은 고위험군의 중증·사망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이 백신의 접종 1순위는 고위험군이다. 김우주 교수는 “미국은 코로나19 유행 규모를 줄이는 것이 목표여서 백신 접종을 12세 이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 우리는 코로나19 유행 규모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고위험군 보호에 맞춘 방역을 하다 보니 코로나19 유행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고위험군을 보호하더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매일 수십 명의 국민이 죽어 나가는데 정부는 아무런 말이 없다. 코로나19가 치명률이 낮다는 통계 수치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사망과 초과 사망(통상적인 사망 증가 추이를 넘어선 사망)을 줄이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가 10만7894명으로 집계된 8월24일 오후 서울역 임시선별검사소에 검사를 원하는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국민 10명 중 4명 “백신 접종? 글쎄”

백신 접종의 가장 큰 걸림돌은 국민의 백신 회피 문제다. 최근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은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재유행에 대한 국민 인식을 조사했다. 이 조사에서 ‘자신에게 백신 접종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라는 질문에 ‘중요하다’는 응답이 52.5%로 가장 많았다. 지난해 조사 결과에서는 중요하다는 응답이 82.2%였다. 백신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비율이 낮아진 것이다. 

추가 접종 의향을 묻는 항목에서 ‘접종할 것’이라는 응답이 56.6%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절반가량은 접종 의향이 없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접종 의향이 없는 이유로는 ‘백신을 맞아도 감염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55.1%로 가장 많았다. 이어 ‘백신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 37.8%, ‘백신 이상 반응에 대한 보상이나 지원 불만족’ 28.3% 순이었다. 

또 이번 조사에서 국민의 56.5%는 ‘정부 당국의 관점이나 입장만 설명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정부 당국은 나 같은 국민의 백신 관련 의문과 우려를 충분히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응답도 55.8%로 나타났다. 유명순 교수는 “추가 접종 의향 56.6%, 비접종 의향 31.1% 수준인데 지난해 11월 비접종 의향 11.6%와 비교해 약 20%포인트 증가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추가 접종과 관련해 망설이거나 접종하지 않는 이유로 ‘백신을 맞아도 감염되기 때문’(55.1%)이 ‘백신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37.8%)보다 높게 나타났다. 국민이 더 잘 이해하도록 정보 제공과 소통 전략을 새롭게 탐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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