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인권 보호’ 유지하면 ‘피해자 보호’는 영원히 불가
  •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9.23 16:05
  • 호수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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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경기대 교수 기고]
스토킹 가해자 감시, 또 정쟁 때문에 놓칠 수 없어
코로나19 감염자 위치추적 가능케 한 ‘전자감시’ 활용해야

강남역 사건에 이어 신당역 사건이 또 논쟁거리다. 결국에는 또다시 ‘여혐범죄냐 아니냐’를 가지고 여야의 정쟁이 시작되었다. 연일 기자들의 전화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신당역 사건에 대한 필자의 입장이 또다시 정치 공격의 대상화가 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무고한 피해자의 죽음을 뒤늦게 정쟁화하다 보니 사건 발생 초기에 여러 부처에서 쏟아내던 나름의 대책이라는 것이 이젠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 젊은 여성의 죽음에 대한 경찰청이나 법원의 과실보다는 여성가족부 장관의 애매한 입장만이 부각되어 논쟁의 정중앙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는 여성들의 시위, 여가부 폐지 반대 국면으로 들어섰다.

물론 한국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서구 사회의 그것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한 것은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문제 제기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한편 이런 정쟁 속에서 이번에도 또, 꼭 바꾸어야 하는 사법정책들은 손도 못 대고 그대로 넘어갈까 걱정된다. 또 다른 어리석은 희생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걱정인 것이다.

9월14일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필자는 이틀간 잠을 설쳤다. 그 젊은 여성이 숨이 끊길 때까지 국가와 정부를 얼마나 신뢰했기에 비상벨에까지 매달렸을까. 역무원이든 경찰이든 꼭 나타나기를, 그래서 자신을 구원하기를 간절히 기다렸을 것이다. 그 심정이 어땠을까. 자책 때문에 잠이 안 온다.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이 젊은 여성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나는 과연 무엇을 하지 않았던가 돌이켜보고 또 돌이켜보았다.

스토킹 처벌법 입법도 돕고 제도도 바꾸려고 했지만, 정말 역부족이었다. 스토킹 처벌 입법 첫 한 해 동안 비슷한 스토킹 살인 사건이 열 건 가까이 발생했다. 심지어 피해자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진 사건에서도 피해자의 가족까지 참혹하게 살해된 사건도 있었다. 무엇이 나아졌는가. 그 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일을 그나마 알게 되어 나아진 것인가. 정말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시사저널 최준필
ⓒ시사저널 최준필

스토킹 처벌법 1년, 질적으로 다른 접근 필요

여성이 살해되는 사건만 일어나면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이슈는 왜 피해자를 잘 보호하지 못했느냐는 질책이다. 이에 대해 여가부는 여가부·법무부·경찰청 간 스토킹 범죄 대응의 연계성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스토킹 사건의 신고 초기부터 피해자 지원 강화를 위해 여가부 산하 여성긴급전화 1366센터가 개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여성 피해자 쉼터 등을 스토킹 피해자들이 좀 더 일찍부터 사용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을 제정하겠다는 것이 여성가족부의 입장이고, 이는 지난 정부 민주당의 입장이기도 했다.

그런데 여성의 일상은 깡그리 무시한 채 몸만 피신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일까. 절대 동의하기 힘들다. 지금처럼 불구속 수사라는 피의자에 대한 인권보호 대원칙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해자에 대한 감시 없이 피해자만을 보호한다는 것이 실질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스토킹 살인은 대부분 오랫동안 앙심을 품고 특정한 피해자만을 해코지하겠다는 의지만으로 자신의 일상도 다 희생시키는 집요한 자에 의해 벌어진다. 수없이 많은 폭력 상황을 상상하고 준비하며 피해자 주변을 몰래 맴돌다 벌어지는 일이다. 목표물인 피해자에게 직접 접근하지 못할 때는 피해자 가족들에게라도 해코지를 하려는 것이 이들의 의지라서 타이르는 것만으론 절대 포기시키기 어렵다. 물론 자신이 원치 않는 이별을 맞이했다고 모두가 스토커로 돌변하는 것도 아니며 적당한 사법적 제재만으로 중단하는 경우도 많다.

 

법무부 ‘반의사불벌죄 폐지’ 발표 유의미

다음 달이면 스토킹 처벌법을 제정한 지 1년을 맞게 되는데, 2만여 건 정도의 사건이 입건될 것으로 보인다. 이 중 10%도 안 되는 사건 정도만이 치명적인 행위로 진행되리라 추정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뭔가 지금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법무부 장관은 아주 재빠르게 문제의 핵심을 짚은 듯하다. 경찰도 피의자도 모두 피해자의 의사결정 향방에만 매달리도록 방치했던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전 법무부에서 밝혔던 반의사불법 조항 폐지는 부적절하다는 입장과는 사뭇 다른 진전이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피의자가 피해자만 쫓아다니며 고소를 취하하라는 위협을 하지 않을 것이다. 고소 취하가 원천적으로 불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의미 있는 정책은 법원에서 발표했는데 구속영장 심사 시 조건부 석방 제도를 만들겠다는 방안이다. 다시 말해 불구속 수사 시 피의자에게 사법적인 조건을 붙이고 이를 어길 시 즉시 구속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만일 이 조건부 처분에 법무부에서 발표한 전자감시 제도를 활용할 수만 있다면 이번 사건에서도 피해 여성은 가해자가 자신에게 접근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리 정보를 활용해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일단 피신한 후 경찰에 신고했다면 피해자는 아직 우리들 곁에서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형태의 전자감시는 코로나 감염자에 대한 위치추적 앱을 상상해 본다면 충분히 사용 가능한 기술임을 누구나 짐작해볼 수 있겠다. 피해자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가장 좋은 방안으로는 생명을 계속 위협하는 포식자를 감시하고 퇴치하는 법이 최선인 것이다.

강남역 사건이 떠오른다. 범행 장소가 두 사건 모두 여자화장실이란 것 말고도 당시에도 여혐범죄란 쟁점이 부각되었다. 일부 정치인은 어김없이 이 이슈를 확대 재생산했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꼭 바꿔야 했던 제도는 입법도 하지 못한 채 정쟁 속에 묻혀 관심 밖으로 밀려났었다. 당시 범인은 폭력 전과를 여러 개 가지고 교도소와 병원을 계속 들락거렸던 조현병 환자였다. 당시 만일 사법입원 제도가 적절히 도입되었다면 경남 진주 안인득 사건에서 일어난 다섯 명의 인명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젠 더 이상 그냥 떠나보낼 수 없다. 내년에도 스토커에 의한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일 이것이 현실이라면 정치적인 입장 차이가 있음에도 이번만큼은 꼭 사법제도를 가해자 중심에서 피해자 중심으로 바꾸는 데 여야가 협력해야 한다. 스러져간 피해자의 마지막 절규를 외면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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