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마을’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9.26 08:00
  • 호수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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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휴 기간에 가까운 친구들과 남쪽의 한 나라를 다녀왔다. 그 나라는 따뜻한 날씨만큼이나 사람들의 마음도 따뜻하다는 느낌을 줬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을 끈 것은 아이들이다. 어디에서나 아이들이 넘쳐난다. 거리에서는 초라한 행색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교통정리를 하면서 운전자들로부터 몇 푼의 돈을 수고비로 받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한눈에도 고단해 보이지만 그들의 표정은 대부분 밝고 넉넉했다. 그처럼 많은 아이가 해맑게 자라나는 그 나라는 비록 지금은 가난하지만, 미래에는 그 아이들 덕을 틀림없이 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 느낌이 워낙 강렬해서인지 한국에 돌아와 먼저 찾게 것이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아파트 주변에서도, 길에서도 아이들을 보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줄어드는 아이들’은 멀리 갈 것도 없이 통계 수치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 현황 및 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1명이었다. 이는 전 세계에서 홍콩을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국의 낮은 출산율이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님은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세계 꼴찌 수준인 것도 새삼스러운 뉴스가 아니다. 오죽하면 나라 밖에서까지 걱정하는 소리가 나올까.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은 얼마 전 “한국의 출산율을 세계 최저로 떨어뜨리는 것은 자녀 양육 부담”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내면서 직접적인 원인으로, 한글 발음을 그대로 적어 ‘학원들(hagwons)’을 지목하기도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대정부질문에서 OECD 주요국가 성 격차 지수와 출산율에 관한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한덕수 국무총리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대정부질문에서 OECD 주요국가 성 격차 지수와 출산율에 관한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이 같은 출산율 문제를 두고 역대 정부가 각종 지원금 등 ‘돈’으로 해결해 보려는 노력을 펼쳐 왔지만 현실에서는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다. 그만큼 저출산은 이미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서 있다.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사고와 정책으로는 매듭을 풀기가 결코 쉽지 않다. 아이 출산이 우리 삶에 연관된 여러 문제들과 두루 얽혀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저출산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가장 크게 주목해야 하는 키워드는 다름 아닌 ‘여유’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사회에서는 또 다른 가족을 갖는 데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부모의 여유뿐만 아니라 장차 태어날 아이들이 갖게 될 여유까지 동시에 충족되어야 아이를 가질 마음이 생기게 된다. 돈의 여유를 넘어 마음의 여유가 더욱 중요하다는 얘기다.

아프리카 쪽 속담에서 나온 것으로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그 ‘온 마을’은 단순히 공동체를 형성하는 주민들의 도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득, 교육, 주거 등 삶의 질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거기 포함된다고 봐야 옳다. 젊은 부모들은 출산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필요하다고 느끼면 기꺼이 아이를 낳을 것이다. 그 동기부여를 위해 팔을 걷어붙여야 할 주체는 두말할 나위 없이 정부다. 저출산은 통계 발표가 나올 때만 잠시 놀라고 지나쳐서는 안 되는 국가 최대의 숙제나 다름없다. 이 저출산의 가위눌림에서 벗어나려면 ‘온 마을’의 문제가 함께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끈질기고 다각적으로 방책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와 관련해 효율성을 갖춘 범국가적 기구를 구성하는 것도 적극 고려해볼 만하다. 이 나라를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한국에 와서 말했던 ‘집단자살을 하는 사회’로 가게 할지, 말지를 결정할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를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금 바로 서둘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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