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나 암 걱정 없는 나라’ 비전에 뿔난 의사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2.10.09 12:05
  • 호수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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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소아종양혈액과 교수 “지방에서 소아암 치료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소아암 전문의, 강원·경북엔 0명 광주·충북·제주·울산엔 각 1명뿐”

국내 사망 원인 1위는 암이다. 그래서 정부는 1999년부터 국가암검진사업을 진행했다. 모든 국민이 주요 암을 조기에 진료받게 됐다. 보건복지부는 2021년 제4차 암관리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어디서나 암 걱정 없는 건강한 나라’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국민이 암 진료를 전국 어디에서나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비전을 본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병원 소아종양혈액과 교수(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정책이사)는 화가 났다. 소아청소년암(이하 소아암) 환자에게 한국은 ‘어디서나 암 걱정 없는 건강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에 따르면 지방의 소아암 환자 10명 중 7명은 진료받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소아암이란 백혈병·뇌종양·호지킨림프종·골암·연부조직암 등을 말한다. 이런 암에 걸리는 아이가 매년 1000명 이상 발생한다. 이 아이들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김 교수와 함께 국내 소아암 환자의 현실을 짚어봤다. 

ⓒ시사저널 최준필

국내 소아암 치료 성적은 어떤가.

“현재 우리나라 소아암 5년 생존율은 약 85%로 세계적인 수준이다. 치료 기간이 2~3년으로 성인보다 길지만 그만큼 치료 성적이 좋다. 완치된 소아암 환자는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한다. 요즘 출산율이 낮아 정부가 출산을 장려하면서도 정작 아픈 아이에게는 관심이 없다. 이미 태어난 소중한 아이를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과 의료진 모두 소아암 치료를 포기함에 따라 국내 소아암 생존율은 낮아질 것이다.”

‘어디서나 암 걱정 없는 건강한 나라’라는 정부의 비전에 화가 난 이유는 무엇인가.

“국가암검진사업으로 성인은 어디서나 암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또 성인암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암에 걸리면 집 근처 병원에서 진료받을 수 없다. 대부분 서울의 큰 병원을 찾아야 한다. KTX 등 운송수단의 발달로 부산에서도 서울의 병원을 찾는 소아암 환자가 많다. 지역 병원에 소아암 전문의가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소아암 환자에게 한국은 어디서나 암 걱정 없는 건강한 나라가 아니다.”

지방 병원에 암 전문의가 많은데 따로 소아암 전문의가 필요한가.

“소아암에는 소아 그리고 암이라는 특수성이 각각 존재한다. 성인에게 발생하는 폐암이나 간암 등은 소아에게 잘 없다. 또 같은 백혈병이나 뇌종양이라도 성인과 소아의 암종이 다르고 치료에도 차이가 있다. 소아암 치료에는 입원을 포함한 집중 치료가 성인보다 많이 필요하다. 아이는 증상을 잘 표현하지 못하므로 의료인이 늘 붙어있어야 하고 주사 한 번 놓으려면 여러 의료진이 달라붙어야 한다. 조혈모세포 이식,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등 소아암 치료는 위험하고 강도가 높아 일반 소아과 의사가 하기에도 어렵다. 그래서 소아과 의사 중에서도 소아암을 보는 전문의가 필요하다.”

국내 소아암 전문의는 얼마나 있나. 

“68명이다. 이들 중 외래진료만 보는 의사를 제외하고 실제 소아암을 치료하는 의사는 50명 남짓이다. 이들 중 25%는 5년 이내에 정년퇴임하고, 전공의의 지원도 거의 없어 앞으로 소아암 진료 공백이 우려된다.”

소아암 의사가 부족하다는 말인가.

“소아암 전문의 수가 부족하다기보다는 분포가 불균형하다. 소아암 의사 68명 가운데 42명이 수도권에 있다. 강원·경북 지역에는 한 명도 없다. 그나마 지방에서 가장 의사가 많은 대구(5명)에도 각 병원에 한 명씩만 있는 정도다. 충북·광주·제주·울산에도 각각 1명의 의사만 있다. 예전에는 전공의가 있었지만 지금은 전공의마저 없어 의사가 외래진료, 응급진료, 당직 모두를 담당한다.”

지방 병원의 소아암 진료 현실은 어떤가.

“지방 한 대학병원의 50대 중반 소아암 의사는 일주일에 3번 당직을 서고 36시간 연속 근무한다. 소아암 전문의 3명이 있는 다른 지방 대학병원도 사정이 녹록지 않다. 1명은 은퇴를 앞두고 있고 젊은 의사 1명은 퇴사할 여지가 있어 40대 의사 1명이 겨우 버티는 상황이다.”

소아암 환자는 흔하지 않으므로 서울의 병원에서 소아암을 치료할 수는 없나.

“지방 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입원 등 집중 치료를 받기는 어렵다. 그래서 모두 서울로 몰린다. 그렇다고 모두 서울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형편상 서울로 못 가는 가정도 있다. 그나마 응급 상황만이라도 지방 병원에서 치료하면 좋겠는데 그렇지도 못한 실정이다.”

응급진료를 받기 위해 서울로 간다는 말인가.

“암 치료는 암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면역세포와 장기까지 손상시킨다. 그래서 소아암 치료의 가장 큰 부작용은 면역 저하다. 소아암 환자 가족은 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 갈 때나 음식을 먹을 때도 감염 위험이 없는지에 많은 신경을 쓴다. 감염의 지표인 발열이 생기면 패혈증과 같은 중증 감염으로 빠르게 진행하므로 신속하게 입원해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입원할 병원을 찾아 이리저리 전전하다가 결국 중증 패혈증으로 악화해 중환자실로 가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갑자기 수혈이 필요한 소아암 환자는 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지방 병원에는 소아암 전문의가 없어 응급 상황임에도 5~6시간 걸리는 서울의 큰 병원을 찾는다.”

아이가 서울에서 치료받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소아암 환자는 성인보다 긴 치료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가 서울의 병원에 입원해 2~3년 치료하는 동안 부모 중 한 명은 생업을 접고 병원 근처에서 숙식한다. 젊은 부부가 헤어져 살아야 한다. 소아암 치료비도 무시하기 어렵다. 그래서 가족 붕괴까지 일어난다. 아예 서울에서 치료받을 처지가 안 되는 가정도 있다.”

소아암 의사 수를 늘리면 도움이 될까. 

“과거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군 필수 의료진을 보강하기 위해 육·해·공군사관학교 일부 졸업생을 의대에 정원 외로 편입시켰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군에 필수적인 중증의료과목인 외과나 신경외과를 선택한 사람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피부과나 성형외과를 선택했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이 제도는 폐지됐다. 이런 전례처럼 의사 수만 늘린다고 특정 부문에 필요한 의사가 확보되지는 않는다.”

일본의 소아암 진료 상황은 어떤가.

“한 일본 의료인은 한국 소아암 현실이 일본의 30년 전 모습과 같다고 했다. 그 후 일본은 소아암과 주산기(출산 전후의 기간) 진료를 국가 서비스로 규정했다. 소아암을 시장경제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국립병원과 지방에 현 병원을 만들었다. 이른바 거점병원인데, 연간 200억~300억원의 운영비 전액을 국가가 지원한다.”

일본 외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나.

“미국에는 소아암 거점 병원이 없고 시장경제에 맡겨져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때 소아암 관련 법이 마련됐다. 미국은 소아암을 성인암과 분리해 치료한다. 소아암 전문의가 약 300명 있다. 이후 소아암 환자의 삶의 질이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네덜란드는 소아암을 전담하는 국립병원 한 곳을 운영한다. 보호자가 거주할 수 있는 시설까지 갖춘 그 병원은 유럽에서 가장 큰 소아암 병원으로 성장했다.”

외국 사례를 벤치마킹하면 어떤가. 

“소아암 환자가 중요한 치료는 상급병원에서 받더라도, 열이 나거나 수혈이 필요한 응급 상황은 집에서 멀지 않은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는 여러 나라의 사례를 검토 중인데, 우선 소아암 전문의와 간호사 등이 충분한 소아암 거점병원을 지역마다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많은 돈을 써서 새 병원을 만들자는 얘기가 아니다. 기존 병원 중 한 곳이라도 의료인과 시설을 갖추면 된다. 그래야 소아암 환자가 언제든지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

소아암 거점병원을 만들려면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은가. 

“소아암은 국가암정책, 소아청소년과 질환, 희귀 질환 범주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다. 국가암정책은 성인암에 맞춰져 있다. 암관리법에 ‘소아’라는 말조차 없다. 세칙에 소아암 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만 돼있다. 소수의 환자도 차별 없이 치료받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마련된 희귀 질환 범주에도 소아암은 없다. 이렇게 국가도 신경 쓰지 않는데 일반 병원이 소아암 치료에 나서겠는가. 병원 입장에서는 소아암을 치료하면 할수록 적자다. 소아암을 시장경제에 맡기면 안 된다는 말이다.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을 국가가 보호한다는 모자보건법에 따라 신생아 중환자실 지원사업을 시작해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전례가 있다.” 

“아이가 열이 날까봐 매 시간 체온을 잰다. 그런데 여기 춘천시에 대학병원이 두 군데 있는데도 소아 백혈병을 치료하는 전문의가 없다. 그래서 아이가 미열만 나도 소아암 전문의가 있는 서울로 갈 수밖에 없다.” 소아암 환자 보호자 A씨

“미세혈관병증 때문에 아이가 주사를 맞고 있는데 금액이 꽤 많이 나온다. 비급여라서 주사 한 방에 1500만원이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힘들다.” 소아암 환자 보호자 B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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