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현직 검사장 “중대재해처벌법, 이대로 가면 암수범죄만 늘릴 것”
  • 울산=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2.10.10 14:05
  • 호수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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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환 울산지검장, 논문 통해 법 허점 직격…“개정 시급”
주관한 세미나에 유관기관·기업 관계자, 법조인 등 대거 몰려

최근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화재로 7명이 사망한 뒤 가장 크게 대두된 키워드는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다.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을 운영하는 현대백화점그룹 오너까지도 이 법으로 처벌할 수 있을지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1월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서 안전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근로자 사망 등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법인엔 50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50인 미만(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유예 기간을 거쳐 2024년 1월27일부터 법이 적용된다. 

노정환 울산지검장이 9월27일 울산 남구 울산지검 검사장실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중소기업들에 큰 타격…입법 보완해야” 

무거운 처벌 조항을 앞세워 산재 사고를 예방해 보겠다는 취지의 법이지만, 적용 기준과 대상이 모호하고 비현실적인 조항도 많아 논란에 휩싸였다.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자칫 위법행위 수사와 처벌의 당위성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새어 나온다. 

이런 가운데 현직 검사장이 공개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의 허점을 지적하고 나서 화제다. 노정환 울산지방검찰청 검사장(55·사법연수원 26기)이 그 주인공이다. 노 지검장은 9월27일 울산 남구 울산지검 대강당에서 ‘중대재해·산업안전 세미나’를 열어 직접 쓴 논문을 발표했다. 마침 고용노동부가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 조사를 시작한 날이었다. 

울산은 사고가 난 대전 못지않게 이번 이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동차·석유화학 공장, 조선소 등 주요 산업 시설이 밀집해 있는 울산은 우리나라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지역이라 할 만하다. 울산지검이 7년 전 전국 유일의 산업안전 중점 검찰청으로 지정된 이유이기도 하다. 지역적 특성과 사안의 중대성이 동시에 반영돼서인지 세미나 현장에선 긴장과 열기가 느껴졌다. 유관기관과 기업 관계자, 법조인 등 200여 명이 열 일을 제쳐두고 모였다.  

노정환 울산지검장이 9월27일 울산지검 대강당에서 개최한 ‘중대재해·산업안전 세미나’에 유관기관과 기업 관계자, 법조인 등 200여 명이 모였다.ⓒ시사저널 이종현
노정환 울산지검장이 9월27일 울산지검 대강당에서 개최한 ‘중대재해·산업안전 세미나’에 유관기관과 기업 관계자, 법조인 등 200여 명이 모였다.ⓒ시사저널 이종현
노정환 울산지검장이 9월27일 울산지검 대강당에서 ‘중대재해·산업안전 세미나’를 열어 직접 쓴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노정환 울산지검장이 9월27일 울산지검 대강당에서 ‘중대재해·산업안전 세미나’를 열어 직접 쓴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세미나에서 노 지검장은 논문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의 문제점과 보완 필요성을 조목조목 풀어냈다. 노 지검장은 “산업안전을 도외시하고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해 산업현장 종사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경영책임자에게는 당연히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엄중한 형사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도 “문제는 방법론이다.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은 다양한 산재 원인 중 기업의 책임만 부각해 처벌만능주의에 편승함으로써 나머지 원인들에 대한 과학적 접근과 해결책 마련 모색을 어렵게 만들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주어진 경영 여건에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해 최대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산재 사고가 발생했단 이유만으로 결과 책임을 지는 일이 없도록 법을 적용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우선 정확한 산재 실태와 통계를 파악하고, (입법 모델이 된) 영국을 넘어 미국, 일본,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덴마크, 캐나다 등 다수 선진국의 입법도 두루 비교해 불완전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미나 이후 노 지검장을 따로 검사장실에서 만났다. 논문 내용보다 더 솔직하고 날카로운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그래도 통계를 보면 올 상반기 전체 사업장 사망 사고가 303건(320명)으로 전년 동기(334건, 340명) 대비 건수로는 31건(9.3%), 인원 수론 20명(5.9%) 줄었다. 법 시행 효과가 영 없다고 하긴 힘들지 않나. 

“단기적인 현상이지 않을까. 당장 기업 경영책임자 등이 처벌받지 않기 위해 산업안전 관련 예산과 인력을 늘리며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산재 사고 예방이란 궁극적인 법의 목적보다 처벌 회피에만 집중할 여지가 크다. 딱 처벌받지 않을 정도로 조치하고 손을 털어버리는 것이다. 이러면 효과가 떨어지고, 더 나아가 암수범죄(수사기관에서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해도 증거불충분 등으로 검거하지 못하는 범죄)를 늘리는 역효과까지 나타날 거라고 예상한다.” 

관할 지역이자 국내 최대 공업도시인 울산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어떤 분위기인가. 

“노동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강도가) 부족하다고 느낄지 몰라도 확실히 경영계는 너무 엄한 게 아니냐며 불편해한다. 다만 직접 현장을 돌아보니 대기업 사업장들은 전반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전 예방 조치를 잘하고 있었다. 그 정도면 법을 위반하기 쉽지 않다. 반면 중소기업 사업장 대부분은 제대로 대비하지 못해 심각한 분위기였다.” 

중소기업들이 처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전해 달라. 

“중소기업 대표들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일단 산업안전 인력이랄 게 없으니 산재 사고가 나면 대표가 다 책임져야 한다. 형이 확정되고 5년 이내에 다시 법을 위반할 경우 누범 규정으로 인해 가중처벌도 받는다. 대기업에서는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가 대표로 수사받고 기소돼 처벌당하게 되는데, 우리나라 법체계상 확정 판결까지 2~3년이 걸린다. 그사이 CSO는 바뀔 테니 누범 규정도 적용되지 않을 거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에선 한 번 대표면 회사가 안 망하는 한 계속 대표다. 중소기업 대표들은 기본적으로 엄격한 처벌에, 더 무서운 가중처벌까지 받을 수 있기에 느끼는 두려움이 상상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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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보다 더 강화된 누범 규정이 위헌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고 노 지검장은 우려했다. 그는 논문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의 다양한 조문에 죄형법정주의 위반, 위임입법 한계 위반, 비례성의 원칙 위반, 책임주의 위반 등 위헌성이 있다’는 법조계 시각을 소개했다. 

노 지검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 등에게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 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 의무를 부과하면서 구체적인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해놨다”면서 “그런데 시행령에서 ‘안전·보건 관계 법령’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채 동어반복을 하고, 고용노동부 해설서에조차 범위를 정확히 규정하는 대신 산업안전보건법 등 10가지 관계 법률만 예시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경영책임자 등을 자기가 수사 대상에 해당하는지도 예측하지 못하게 하면서 유례없이 엄한 형사처벌을 받게 하는 법이라면 위헌성이 높다고 충분히 지적할 수 있다. 조속한 법 개정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노정환 울산지검장이 9월27일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노정환 울산지검장이 9월27일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중대재해처벌법의 단점과 개정 필요성만 부각하다 보면 노동계의 반발에 부닥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노동계는 ‘압수수색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경영책임자 구속은 1건도 없다’는 등 이유를 들며 오히려 제대로 된 법 집행과 처벌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가 언급한 내용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엄벌주의에서 비롯된 부작용과 맞닿아 있다고 판단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에는 산재 사고 발생 후 진행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수사에서 담당 실무책임자에 대한 조사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처벌받으면 됐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르다. 조사 때 하는 진술이 경영책임자와 회사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부담감 탓에 잘 협조하지 않는다. 변호인도 과거 검찰 수사 단계에서 개입했던 것과 달리 요즘은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달려가 철두철미하게 기업을 방어한다. 산재 수사가 전반적으로 늘어지거나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수사가 총체적으로 부실하다고 지적하기도 하는데. 

“수사란 것 자체가 사건이 다 벌어지고 난 다음에 거슬러 올라가며 증거를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한계가 있다. 더구나 산재 사고 수사는 더 어렵다. 예컨대 대형 폭발 사고 현장에 가보면 그냥 불타고 망가진 흔적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원인 규명이 매우 힘든 수사에 대해 무턱대고 부실하다고 해선 안 될 것이다.” 

“경영·노동계 양극단 융합해 나가야”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앞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데 대해 사과의 뜻을 전하고 있다.ⓒ연합뉴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앞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데 대해 사과의 뜻을 전하고 있다.ⓒ연합뉴스

 

폭발과 화재로 7명이 사망한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사고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말하기 굉장히 조심스럽지만, 종이상자가 쌓여 있었다거나 소방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등 지금 들리는 얘기들이 사실로 확인되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듯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논란과 혼란이 당분간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울산지검의 향후 계획은. 

“유관기관과 함께 산재 사고 예방법을 모색하고 허무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역량을 집중해 나갈 것이다. 세미나와 간담회, 강연 등을 통해 양극단을 융합하려는 시도를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노 지검장은 인터뷰 말미에 태극기의 태극 문양을 언급했다. 태극 문양에서 양(陽)을 의미하는 빨간색과 음(陰)을 의미하는 파란색은 부드럽고 유려한 곡선으로 연결돼 있다. 그는 “태극 문양의 핵심은 음과 양의 만남이 아닌, 접점의 곡선에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양극단에 치우쳐 있는 경영계와 노동계의 견해가 가운데로 모여 태극 문양의 곡선처럼 합리적이고 중도적인 결론, 즉 중용(中庸)에 이르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정환 울산지검장이 9월27일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 노정환 검사장은 누구 

노정환 울산지검장은 1967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대구 경원고와 경찰대(6기)를 졸업했다. 경찰대 법학과에 수석 입학해 1990년 졸업했는데, 1992년 파출소장직을 끝으로 퇴직했다. 경찰 경력을 마무리하고 사법시험을 준비해 1994년 36회로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26기로 수료하고 울산지검 공안부 검사,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 검사, 주중대사관 법무협력관, 서울중앙지검 외사부 부장검사, 서울북부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 창원지검 통영지청장 등 검찰 내 다양한 직무를 거쳤다. 

인천지검 제2차장검사로 재직하던 2019년 7월 경찰대 출신으로선 처음 검사장으로 승진해 대전고검 차장검사에 임명됐다. 이후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 청주지검과 대전지검의 검사장을 거쳐 현재 울산지검장으로 일하고 있다. 

노정환 검사장이 평검사 시절인 2005년 쓴 중국 유학 수기 《중국 대륙의 심장으로 들어가다》 표지와 저자 소개ⓒ나무와숲 출판사
노정환 울산지검장이 평검사 시절인 2005년 쓴 중국 유학 수기 《중국 대륙의 심장으로 들어가다》 표지와 저자 소개ⓒ나무와숲 출판사

노 지검장은 평검사 때부터 ‘공부하는 검사’ ‘책 쓰는 검사’로 이름을 알렸다. 기저에는 ‘자신의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주변을 돕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었다. 그는 한양대에서 법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2003년 8월부터 1년 동안은 법학 분야 중국 최고의 대학으로 손꼽히는 정파(政法)대에서 방문학자 과정을 밟았다. 유학 경험을 토대로 2005년 쓴 수기 《중국 대륙의 심장으로 가다》는 당시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중국 유학 준비 과정에서 대학을 선택하기 위해 고민하는 단계부터 겪는 수많은 경험담을 진솔하고 흥미롭게 풀어냈단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어 정파대에서 함께 공부한 한국인 유학생들과 의기투합해 중국 법률 서적 번역서인 《중국민법》(2007년)과 《중국노동법》(2008년)을 잇따라 선보였다. 중국법 번역으로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을 돕기 위한 취지였다. 

이번 ‘중대재해·산업안전 세미나’ 개최와 논문 발표는 기업뿐 아니라 유관 기관의 관계자, 법조인 등 다양한 분야 종사자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주고자 계획했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바쁜 일상 속에 시간을 쪼개가며 틈틈이 준비한 결과다. 6월27일 울산지검장으로 취엄하고 1주일 뒤부터 논문을 작성하기 시작해 두 달여 만에 완성했다고 노 지검장은 전했다. 그는 “원체 연구하고 논문 쓰는 데 관심이 많았다”며 “‘학자형 관료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늘 품고 일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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