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새로운 개그맨은 유튜브에서 나온다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14 13:05
  • 호수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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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개콘》 폐지로 공개 코미디 시대 문 닫아…《숏박스》 《너덜트》 등 유튜브에서 새 길 찾은 코미디

그 많던 개그맨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한때 TV만 틀면 볼 수 있었던 그들은 이제 TV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존재들이 됐다. 이 변화의 흐름은 앞으로 코미디의 어떤 미래를 그려내고 있는 것일까.

한때는 주말 저녁만 되면 마치 일주일을 버텨낼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듯 공개 코미디를 보던 시절이 있었다. 1999년 KBS 《개그콘서트》가 그 문을 열었고, 2003년 SBS 《웃찾사》, 2006년 MBC 《개그야》까지 생기며 이른바 지상파 ‘개그 삼국지’를 이루던 공개 코미디 전성시대. 하지만 그 후로 약 20년간 부침을 겪으며 하나둘 문을 닫더니 급기야 2020년 6월 《개그콘서트》마저 폐지를 선언하면서 공개 코미디 시대는 종지부를 찍었다. 물론 tvN 《코미디 빅리그》가 여전히 남아있지만, 과거만큼 공개 코미디를 찾아서 보는 시청자들은 현저하게 줄었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youtube 캡쳐
유튜브 채널 《빵송국》ⓒyoutube 캡쳐
유튜브 채널 《숏박스》ⓒyoutube 캡쳐

《개그콘서트》 폐지 후, 유튜브로 간 코미디

대신 시청자들은 유튜브 코미디 채널을 찾아 본다. 《피식대학》에 들어가 ‘한사랑산악회’나 ‘05학번이즈백’ ‘B대면데이트’를 보고, 《숏박스》에 들어가 ‘장기연애’ 같은 스케치 코미디를 챙겨 본다. 《웃음박재》의 정치까지 포함하는 과감한 풍자 성대모사를 보며 깔깔 웃고, EBS 《딩동댕 유치원》을 패러디한 《딩동댕 대학교》를 찾아 어른들을 위한 갖가지 교양강좌(?)를 들으며 낄희교수와 붱철 조교의 매력에 빠져든다. 이러다 보니 어느 순간, 지상파에서 공개 코미디를 통해 탄생하고 얼굴을 알리던 개그맨들은 유튜브를 통해 발굴된다.

물론 공개 코미디가 사라지기 전후에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고 유튜브로 자리를 옮긴 개그맨이 적지 않다. 《흔한남매》의 장다운과 한으뜸이나, 《엔조이커플》의 손민수, 임라라 같은 개그맨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예 브랜드화돼 버린 채널의 인지도를 따라 새롭게 위상이 세워진 개그맨들이 등장하고 있다. 《피식대학》의 이용주, 정재형, 김민수나 《숏박스》의 김원훈, 조진세, 엄지윤이 그들이다.

이들의 인기는 한때 《개그콘서트》에서 빵빵 터지는 웃음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개그맨들을 압도한다.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줬던 건 2022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이다. 개막식 블루카펫에서 《숏박스》의 김원훈, 조진세, 엄지윤은 등장만으로 그 어떤 개그맨들보다 압도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또 이들은 이틀 간 1000석 규모의 극장에서의 유료 공연을 전석 매진시키는 인기를 보여줬다. 그만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열렬한 구독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개그맨들이 이제 명실공히 공개 코미디 이후의 코미디를 이끌고 있다는 걸 말해 주는 대목이다.

공개 코미디에서 유튜브 코미디로 옮겨가면서 코미디의 형식이나 소재, 표현 등도 달라졌다. 공개 코미디는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콩트 코미디를 위주로 했다면, 유튜브 코미디는 일상을 배경으로 삼아 펼쳐지는 몰래카메라로 시작하더니, 차츰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하이퍼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이른바 스케치 코미디의 전성시대를 만들었다. 《숏박스》 《너덜트》 같은 채널들이 이끄는 스케치 코미디는 현재 190여 개가 난립한 상황이다. 또 아예 《빵송국》의 매드 몬스터(곽범, 이창호)처럼 보정카메라를 이용한 부캐를 통해 아이돌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내고 실제 활동하는 세계관 코미디도 등장했다. 이제 하이퍼 리얼리즘처럼 진짜보다 더 진짜같이 느껴지는 코너의 캐릭터들은 저마다의 세계관을 구축함으로써, 때론 협업을 통한 웃음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마치 마블처럼 개개의 캐릭터가 특정 프로젝트를 통해 이합집산하는 유니버스 개념의 코미디 세계가 펼쳐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유니버스 개념의 코미디가 실제로 비즈니스로 가능해진 게 메타코미디라는 국내 최초 코미디 레이블이다. 지난해 7월 본격적으로 설립된 메타코미디는 실제로 이렇게 유튜브 생태계에서 저마다 한 가락 하는 크리에이터들과 소속 계약을 통해 하나의 기업으로 묶어냈다. ‘신병’ 같은 메가 히트작을 소유한 《장삐쭈》(구독자 336만), 《피식대학》(162만), 병맛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과나》(78만), 스케치 코미디의 일인자 《숏박스》(227만)는 물론이고, 《김해준》, 《면상들》(이선민, 조훈), 《웃음박재》, 《나몰라패밀리》(김경욱), 《빵송국》(이창호, 곽범) 등이 모두 이 레이블 소속이다.

이들의 협업은 지난 6월 개설된 《메타코미디클럽》 채널을 통해 미루어 알 수 있다. 마치 《코미디 빅리그》의 유튜브 버전처럼 보이는 이 채널은 스탠드업 코미디 방식으로 소속 크리에이터들이 한자리에 모여 개그를 선보이고 누가 가장 웃겼는가를 뽑는 투표도 진행하고 있다. 아직은 한 달에 한 번 서비스를 올리는 일종의 파일럿 형태지만 메타코미디가 소속 크리에이터들 간 협업을 통해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유튜브 채널 《딩동댕 대학교》ⓒyoutube 캡쳐
유튜브 채널 《딩동댕 대학교》

본격적으로 열린 유튜브 코미디의 세계

《개그콘서트》가 21년 만에 폐지된 후, 한때 그 전성기를 이끌었던 서수민 PD는 JTBC에서 《장르만 코미디》를 통해 새로운 코미디 실험을 한 바 있다. 《부부의 세계》를 패러디한 ‘쀼의 세계’나 ‘끝보소’(끝까지 보면 소름 돋는 이야기)가 패러디 콩트 코미디를 시도했고, 심지어 2312년에서 타임리프한 아이돌의 이야기를 다룬 ‘억G&조G’는 SF 코미디를 실험했다. 또 ‘찰리의 콘텐츠 거래소’는 과거 《웃음충전소》에서 했던 ‘타짱’ 같은 개인기를 소재로 하는 코미디를 선보였고, 《개그콘서트》 폐지로 일자리를 잃은 개그맨들의 이야기를 다룬 ‘장르만 연예인’은 코믹한 상황을 다큐적으로 연출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에도 그다지 성과를 내지 못한 《장르만 코미디》는 결국 ‘너튜브 고등학교’라는 코너를 통해 유튜브 스타 크리에이터들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이미 코미디의 패러다임이 레거시 미디어를 떠나 유튜브로 옮겨갔다는 걸 징후적으로 보여주는 코너가 아닐 수 없었다.

그 후로 KBS가 다시 독한 서바이벌 형식을 가져와 코미디의 계승자를 꿈꾸며 《개승자》를 시도했지만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장르만 코미디》도 또 《개승자》도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건 이 두 프로그램이 모두 지금의 달라진 코미디의 새로운 길을 제안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이를 상징하는 새로운 스타 개그맨들을 탄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답은 대중에게 있었다. 점점 인터넷과 모바일이 중심적인 매체로 등장하고, 이를 통해 유튜브 같은 새로운 공간에서 웃음을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대중의 웃음 감수성이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변화는 단지 웃음을 소비하는 매체만 이동시킨 게 아니라, 그 웃음의 방식이나 감수성도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의 코미디를 좀 더 긴 역사의 흐름으로 들여다보면, TV라는 매체를 통한 코미디는 그 흐름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본래 연희는 마당에서 남사당패가 줄타기를 하며 농을 주고받는 그 현장에 있었고, 그 후에도 TV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줄곧 유랑극단을 통해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그러다 TV로 들어오면서 콩트 코미디로 명맥이 이어졌고, 그 힘이 빠질 즈음 공개 코미디라는 일종의 경쟁 틀을 가져옴으로써 부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코미디는 다시 TV 바깥으로 나오게 됐다. 이제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가 끌어안은 코미디는 스튜디오를 나온 현장성과 더불어 콩트 코미디적 전통이 더해져 독특한 세계관이 가능해진 형태가 됐다. 과연 이 새롭게 열린 길에서는 어떤 새로운 개그맨들이 탄생할까. 한때 주말마다 《개그콘서트》를 들여다보던 우리들은 이제 언제 어디서든 유튜브를 들여다보며 그 차세대 코미디의 징후들을 마주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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