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덮친 ‘친일 색깔론’에 국감서도 사라진 민생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2.10.1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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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논란’ 격화하며 국정감사 뉴스 상대적으로 묻혀
전문가 일각 “이념 정쟁 대신 경제 문제 집중해야” 비판도

“일본을 한반도로 끌어들이는 자충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선이 일본군 침략으로 망한걸까.”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국정감사가 한창이지만 여의도의 화두는 ‘친일 국방’이다. 한·미·일 해군 합동 훈련의 정당성을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연일 충돌하면서다. 이 과정에서 여야 지도부는 ‘친일’, ‘종북’, ‘반미’ 등으로 상대를 비판하며 ‘강대강’으로 충돌하는 양상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여야가 이념 논쟁을 지속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제난이 깊어진 가운데 ‘종북‧친일 몰이’는 여야뿐 아니라 국민에게도 실익이 없다는 주장에서다. 또 이른바 ‘친일·종북 프레임’에 2030 유권자 다수가 싫증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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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블랙홀’로 빨려들어간 여야

‘친일’이 화두에 오른 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미‧일 해상 공동훈련을 비판하면서다. 이 대표는 일본 해상자위대가 참여한 한·미·일 동해 훈련을 ‘극단적 친일 행위’라고 직격했다. 이후 여권이 반발하자 “시대착오적 종북몰이와 색깔론 공세는 해방 이후 친일파들이 했던 행태”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가 친일 논란에 불을 지폈다면,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논란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정진석 위원장이 ‘친일 국방’ 주장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친일 역사관’ 논란에 휩싸인 탓이다.

전날 정 위원장은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 조선은 안에서 썩어 망했다”며 이 대표의 주장을 맞받아쳤다. 정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을 야당이 ‘식민사관’으로 규정하고 나서면서 공방 양상이 한층 더 격화됐다.

여권 내부에서도 정 위원장의 주장을 두고 논란이 이는 모습이다. 유승민 전 의원은 정 비대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유 전 의원은 11일 페이스북을 통해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 이게 우리 당 비대위원장의 말이 맞나”라며 “이재명의 덫에 놀아나는 천박한 발언”이라고 직격했다.

여야가 공방전을 벌이면서 정치 뉴스란은 온통 ‘친일’로 도배됐다. 여야 지도부뿐 아니라 의원들까지 가세해 한‧미‧일 해군 합동 훈련에 대한 논평을 내면서다. 실제 최근 포털사이트에서 ‘친일’ 키워드 검색량이 급증했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친일’ 검색량(최대 검색량 기준 100)은 ▲8일 26 ▲9일 32 ▲10일 50 ▲11일 100으로 증가했다.

사진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연합뉴스
사진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연합뉴스

‘색깔론’ 격화에…“수준 낮은 논쟁” 비판도

여야가 촉발한 ‘친일 논쟁’은 정계 울타리를 넘어 시민사회에도 영향을 미치는 모습이다. 여야 주장에 학계·역사학자·정치평론가들까지 말을 얹으며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정진석 위원장의 발언을 문제삼고 있다. 다만 이재명 대표가 정략적 이유로 친일 논란을 부풀리려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정진석 위원장의 발언은 분명 문제가 있다. 일본의 침략논리를 그대로 따르는 주장이기 때문”이라며 “다만 이재명 대표 역시 철 지난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미‧일 군사협력 문제는 명분만 갖고 접근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여야 모두 낡은 사고 방식을 갖고 수준 낮은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권 내부에서도 ‘이념 논쟁’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특히 윤석열 정부 첫 국감에 임하는 초선의원들 사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은 “국정감사는 민주주의 꽃이자 핵심이다. 밤낮으로 준비한 국감이 철 지난 이념논쟁에 묻히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민주당 한 초선의원은 “문제를 제기했고 평가는 국민이 할 것”이라며 “이제 (국회의원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 겸허하게 민생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제난이 가중되는 가운데 이념 논쟁이 장기화되면 유권자들이 ‘정치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이념보다 ‘실용’을 더 큰 가치로 두는 MZ세대(2030세대)에게 균열과 ‘편 가르기’는 공감보다 반감을 부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한국 정치권은 기본적으로 기득권 세력이다. 그리고 그 기득권을 유지하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 진영 대결”이라며 “이 균열의 정치를 가장 거부하고 있는 유권자가 MZ세대다. 이념, 정당, 지역 등을 근거로 투표하는 세대가 아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실용”이라고 분석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여야가 함께 나쁜 정치를 하고 있으니 서로가 상대편을 위안 삼아 안이한 정치적 나태의 늪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이든 민주당이든, 어느 한쪽이라도 먼저 진정한 환골탈태의 모습을 보인다면 다른 한쪽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그런데 서로가 그 모습 그대로이니, 그냥 이대로 가도 되겠다는 생각을 함께 하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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