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틀리고 지금은 맞다?’ ‘카카오 먹통’에 입장 바꾼 국회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2.10.1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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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업·단체들, 여야 설득 통해 법안 통과 막아
채이배 “기업 논리에 당시 국회가 설득 당했던 것”
경기도 성남시 카카오 판교 아지트 모습 ⓒ연합뉴스
경기도 성남시 카카오 판교 아지트 모습 ⓒ연합뉴스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후폭풍이 거세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카카오톡을 사실상 국가 기반 통신망으로 규정하며 부처의 적극적 대응을 주문한 가운데 국회도 입법 절차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미 2년 전 관련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사후 약방문’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지난 2020년 5월 국회에선 제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앞두고 ‘n번방 방지법(정보통신망법)’, ‘넷플릭스 무임승차 규제법(전기통신사업법)’과 함께 정부가 민간데이터센터 관리감독권을 갖는 ‘데이터센터 규제법(방송통신발전기본법)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당시 박선숙 민생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해당 법안의 핵심은 비상사태에 대비해 민간의 데이터센터(IDC)를 방송·통신시설처럼 국가재난관리시설로 지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2018년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 사건을 교훈 삼아 재난으로 민간 데이터센터 자료가 소실되면 기업과 소비자 피해가 크기 때문에 정부가 감독조사권을 갖고 안전하게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정치권에선 반대 논리가 많았다. 이들이 내세운 반대 논리는 정보통신망법 등과의 중복규제였다. 2020년 5월 20일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록을 살펴보면,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보통신망법에 IDC 보호 규율이 들어가 있는데 방송통신발전 기본법에서 또 다루게 되면 법의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는 중복규제”라면서 “법의 체계상 맞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그러면서 “이 법에서 IDC 사업자는 제외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거나 숙의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점식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도 “데이터센터는 다른 방송통신 사업자와 달리 자신들의 고유 데이터를 보존하고 있다”면서 “데이터센터 사업자는 방송통신 사업자와 구분이 돼야 한다”고 했다. 장제원 당시 미래통합당 의원은 “뭐가 급해서 이렇게 땡처리하는 식으로 하나. 21대 국회에서 또 논의하면 되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이에 최기영 당시 과기정통부 장관은 “데이터센터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시설로, 지난 2018년 11월 발생한 KT 아현지사 화재에서 보듯 재난 상황에서 시설이 중단될 경우 국민의 생활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민생 현안”이라고 강조했으나 결국 법사위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해당 법안을 공동 발의한 채이배 전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이미 제도와 법령 등 틀은 다 갖춰져 있었고 관리 감독 대상만 확대하면 됐을 일이었다”며 “당시 민주당과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여러 이해관계에 얽혀있었다”고 꼬집었다.

당시 과방위와 법사위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해당 법안이 법사위까지 올라오자 네이버·카카오 등이 회원사로 있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를 비롯해 체감규제포럼,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벤처기업협회 등의 관련 단체들은 정치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법안 통과 반대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IT 업계 관계자는 “당시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은 영업 비밀인 설비통합운용 자료제출로 인해 기업 설비와 인프라 장비에 대한 기밀 유출 가능성을 우려하며 재산권 침해라고 반대했다”며 “이에 더해 정보통신망법에 매년 정부에 데이터센터 운영보고서를 제출토록 한 규정이 있는 만큼 이중 규제라는 논리를 폈다”고 밝혔다.

이에 당시 과기부는 “데이터센터 운영을 힘들게 하는 물리적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법률이고, 기업 데이터센터에 보관된 데이터 자체를 점검·관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미래통합당 측엔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이 반대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시했다. 당시 부산시는 MS와 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의 데이터센터 유치를 위해 MOU(업무협약)을 체결한 상황이다. 결국 기업 논리와 지역 현안에 국회가 무릎을 꿇은 셈이다.

지난 10월 16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SK 주식회사 C&C 데이터센터 화재 현장에서 소방과 경찰 관계자들이 1차 감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공동취재
지난 10월 16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SK 주식회사 C&C 데이터센터 화재 현장에서 소방과 경찰 관계자들이 1차 감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공동취재

"기업 사회적 책임 안 하면 그 피해 국민에게 간다"

상황이 달라졌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과기부는 박선숙 전 의원이 발의한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을 중점 재검토, 재발의를 검토하고 있다. 국회 과방위 민주당 간사인 조승래 의원은 지난 17일 카카오와 네이버 등 부가통신사업자와 데이터센터를 국가 재난 관리 체계에 포함하는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을 다시 대표 발의했다.

채이배 전 의원은 “안전에 대한 투자가 기업 부담과 규제라는 논리에 당시 국회가 설득당했던 것”이라며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결국 그 피해가 국민들에게 온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이번에는 거스를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당시 데이터센터 규제법을 강하게 반대했던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측은 “사태가 발생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협회 차원에서 입장을 표명하기 어렵다”면서 “향후 정부나 국회가 추진하는 법안의 윤곽이 드러나고 회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쳐야 협회 입장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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