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명단 공개 파장 일파만파…여야 모두 “선 넘었다”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2.11.1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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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민주당도 공범” 정의당 “참담”…한동훈도 “문제 有“
민주당 “동의없는 공개 부적절하나, 원하는 유족 상당수일 것”

“정치적인 도모를 하려는 사람들이 저런 짓을 한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가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

여야 수뇌부가 14일 유감을 넘어 분노가 담긴 입장을 동시에 내놨다. 진보 성향의 온라인매체 ‘더탐사’와 ‘민들레’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실명이 담긴 명단을 공개하면서다. 국민의힘이 “2차 가해”라며 반발한 가운데 진보 정당인 정의당도 “참담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조계 일각에선 유족과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명단의 무단공개는 법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1월8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임시 추모 공간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과 메시지가 붙어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11월8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임시 추모 공간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과 메시지가 붙어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진영 넘어 “유가족에 2차 가해” 동시 비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4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와 관련해 “광주 민주화 유공자 명단도 공개 안하고 있다”며 “유족 대부분이 공개를 원치 않는 것을 누가 함부로 공개했는지, 여러 가지 법률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 원내대표는 “어떻게든 유족을 자꾸 모아서 무언가 정치적 도모를 하려는 사람들이 자꾸 저런 일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시각을 갖고 있다”며 “이에 따른 법적 책임이 있다면 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통해 “유족 동의 없는 희생자 명단 공개는 분명한 2차 가해”라며 “2차 가해도 언론의 자유라고 보장해줘야 하는가. 이건 자유의 영역이 아닌 폭력이고 유족의 권리마저 빼앗은 무도한 행태”라고 비난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유족 동의 없는 희생자 명단 공개라는 용납할 수 없는 행태를 설계했던 것은 민주당”이라며 “지금은 온라인 매체 뒤에 숨어 방조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도 공범”이라고 주장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참담하다. 누차 밝혔듯이 정의당은 유가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희생자 명단 공개는 정치권이나 언론이 먼저 나설 것이 아니라, 유가족이 결정할 문제라고 몇 차례 말씀드린 바 있다. 과연 공공을 위한 저널리즘 본연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번 명단 공개로 또 다른 피해가 발생되지 않도록, 그리고 유가족의 상처가 더 깊어지지 않도록 많은 언론과 국민들께서 함께 도와주시기를 당부드린다”라고 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침묵’ 속 한동훈 “법적으로 문제” 지적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이번 희생자 명단 공개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앞서 이 대표는 9일 최고위원회에서 “세상에 어떤 참사에서 이름도 얼굴도 없는 곳에 온 국민이 분향을 하고 애도하냐”며 사망자 명단 공개를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논란이 여권을 넘어 야권으로도 확산하자, 여론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안호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희생자 6명의 유족 9명과 이재명 대표 등과의 비공개 간담회 후 기자들을 만나 명단 공개에 일부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재명 대표도 말한 것처럼 진정한 추모가 되기 위해선 희생자 명단, 사진, 위패가 있는 상태에서 추모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유가족 동의가 먼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억울하게 희생을 당했는데, 희생자들이 국민 속에서 기억됐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 것들이 대부분 공개 안 돼 답답하다는 취지의 말이 있었다”며 “그런 것으로 봐선 유가족 중에서도 실제 희생자들 명단이 공개되고 사진도 공개되고 제대로 된 추모가 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가진 유가족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간담회에 동석했던 신현영 의원은 “오늘 저희가 받은 느낌은 오히려 이 사건이 빠르게 잊힐까 봐 걱정하실 분들이 대다수이고, 156명 공개에 대해서는 부정적 의견을 표명하는 유가족은 없었다”고 전했다.

법조계 일각에선 유족의 동의 없이 희생자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범법(犯法)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역시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장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에 출석해 “일방적인 명단 공개가 유가족에게 깊은 상처가 되지 않겠느냐”는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유족과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무단공개는 법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친야(野) 매체라고 했는데,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했던 ‘더탐사’더라”라며 “그런 단체가 총대 메듯이 국민적 비극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개탄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온라인매체 ‘민들레’는 14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태원 희생자, 당신들의 이름을 이제야 부릅니다’라는 제목 아래 사망자 155명(이달초 기준) 전체 명단이 적힌 포스터를 게재했다. 이름 외의 다른 정보는 표기되지 않았다.

민들레는 “시민언론 더탐사와의 협업으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 명단을 공개한다”며 “희생자들을 익명의 그늘 속에 계속 묻히게 함으로써 파장을 축소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재난의 정치화이자 정치공학”이라고 주장했다.

유가족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명단을 일방 공개하는 데 대해서 이 매체는 “유가족 협의체가 구성되지 않아 이름만 공개하는 것이라도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양해를 구한다”면서 “희생자들의 영정과 사연, 기타 심경을 전하고 싶은 유족들은 이메일로 연락을 주시면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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