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정쟁화’ 프레임 갇힌 민주당, 지지율 정체 ‘돌파구’ 있나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2.11.1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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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발등 찍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 논란
尹정부 겨냥 공세에도 민심은 ‘요지부동’
“정쟁보다 민생에, ‘민주당다움’ 회복해야”

35.7%⟶34.2%⟶34.6% 
37.6%⟶37.4%⟶36.1%
46.4%⟶46.8%⟶46.8%

14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이다. 순서대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 흐름이다.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인 10월4주차부터 11월2주차까지 진행된 여론조사 종합이다. 세부 수치는 다르지만, 윤 대통령과 여야 지지율은 최대 1.5%포인트 내외에서 등락을 반복했다. 사실상 변동이 없는 수준이다.

유례없는 규모의 대형 재난으로 기록된 이태원 참사가 민심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란 전망과 달리, 실제 민심은 관망세에 가까운 분위기다. 경찰의 늑장‧부실 대응 논란이 확산했는데도 민심은 요지부동인 셈이다. 정부 책임론을 꺼내든 야권의 공세가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다. 

그래픽 = 시사저널 양선영
그래픽 = 시사저널 양선영

‘재난의 정쟁화’ ‘이재명 지키기’ 프레임에 발 묶인 민주당

왜 윤석열 정부를 향한 야권의 공세는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것일까. 야권을 향한 ‘재난의 정쟁화’ 프레임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민주당 지도부의 대응 방식은 기존 ‘초당적 협력’에서 ‘적극 공세’로 바뀌었다. 국가애도기간 종료 이전부터 정부 책임론을 제기했으며, 최근엔 국정조사와 특검 도입을 요구하며 장외행동을 불사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에선 “재난을 정쟁화하려는 시도”라고 규정하고 맞불을 놓은 상태다.

특히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 논란이 야권을 향한 ‘재난의 정쟁화’ 프레임에 불을 댕긴 모습이다. 전날(14일) 민주당 성향 온라인매체에서 유족 동의 없이 희생자 실명을 공개한 데 따른 후폭풍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직접 희생자 추모를 위한 명단 공개를 요구해왔던 만큼, 비난의 화살은 민주당을 정조준하고 있다. 당내에서도 곤혹스러운 분위기가 감지된다. 명단 공개 이후 민주당 의원들은 침묵을 유지 중이다.

대규모 압사 사고에 대한 전 국민적 트라우마가 가시지 않은 국면에서 이 같은 움직임은 부정적으로 여겨진다는 게 중론이다. 11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 결과, ‘군중 압착 사고를 당할까봐 걱정되나’를 물은 질문에 “걱정된다”는 응답이 73%였다. “나도 압사를 당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55%였다. 10명 중 7명은 압사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 연합뉴스
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 연합뉴스

與野 모두 지지율 정체기…“탈출 전략은 ‘정쟁’보다 ‘민생’에”

이태원 참사와 비교 선상에 놓인 8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재난의 정쟁화’ 프레임은 예민하게 받아들여졌다. 당시 참사 직후 2주 동안 정부여당 지지율은 10%포인트 안팎으로 폭락했지만, 야당 지지율은 횡보했다. 정부여당에서 이탈한 민심이 야당으로 흡수되지 않고 무당층으로 빠진 결과다. 한 달 뒤 치러진 지방선거에선 오히려 여당(새누리당)이 광역단체장에서 8석, 기초단체장에서 117석을 확보하는 등 선전했고,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도 11석을 차지해 사실상 압승했다. 이때에도 참사를 정쟁화하는 태도에 민심이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때문에 야권 인사들 사이에선 지지율 정체기 출구 전략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여권에서 제기하는 ‘재난의 정쟁화’ 또는 ‘이재명 지키기’ 구호에 말리지 않으려면 다른 카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그 일환으로는 ‘민생 의제 발굴’이 거론된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수도권 의원실 관계자는 “보수 지지층이 콘크리트처럼 정부여당 지지율을 받치고 있어서 정쟁을 주도해도 지지율은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며 “결국 중도층을 확보하려면 민주당다운 정책 의제를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역 5번 출구 앞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검추진 범국민 서명운동 발대식에서 서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역 5번 출구 앞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검추진 범국민 서명운동 발대식에서 서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당 일각에선 최근 치러진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도 소환된다. 경기 침체로 인해 정부 심판론이 고개를 들면서 민주당에 불리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으나, 결과는 상하원 모두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 투표 당일 출구조사(에디슨리서치 수행) 결과, 인플레이션(32%) 다음으로 낙태권(27%)이 투표에 영향을 끼친 최대 요인으로 꼽혔다. 민주당이 낙태권이라는 새로운 의제를 주도해 청년층과 여성들의 폭넓은 참여를 이끌어낸 결과라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해 여론조사 전문가인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내려갈 대로 내려간 상황이어서 웬만한 이슈로는 콘크리트층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며 “민심은 선거 전후로 동요되기 마련인데, 제일 가까운 선거가 2년 뒤라 이전까진 지지율이 큰 폭으로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입장에서도 진보 지지층은 결집할 대로 결집한 기류라서, 중도층을 매료할 수 있는 안보나 민생 이슈 등을 발굴하는 쪽이 결국엔 민심 흐름을 잡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사에 언급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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