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신뢰 흔든 ‘라임 몸통’ 김봉현의 탈출 미스터리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2.11.19 12:05
  • 호수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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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영장 2회·통신영장 1회 법원 '연쇄 기각'..."법조계 조력 없이 가능했겠나"
‘변호인 집단 사임’ 이상 징후에 전관예우 의혹도…"치밀한 계획, 밀항 성공한 듯"

몸통이 사라졌다. 1조6700억원대 초대형 금융범죄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48)이 자취를 감췄다. 열흘 째 묘연한 행방에 검찰은 비상이 걸렸다. 3년 전 김 전 회장과 ‘라임 사태’ 공범들의 대범한 도주 행각 악몽도 재소환됐다. 미궁인 건 김 전 회장의 행적만이 아니다. 김봉현에게는 정치인들과의 유착설, 전·현직 검사들 향응설 등 숱한 미제 사건이 남아있다. 김봉현이 현재 국내에 있는지, 밀항 등의 방법으로 해외 도피에 성공했는지도 풀어야 할 미스터리다. 천문학적인 피해를 낳고, 자신과 공범들 도주를 실행에 옮겼던 인물의 ‘위험 신호’를 끝내 인정하지 않은 법원 판단도 의문투성이다. 김 전 회장 도주가 드러낸 ‘빈틈’은 사법부 신뢰마저 뒤흔들고 있다.

라임자산운용(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 모빌리티 회장이 9월20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에서 열린 사기·유사수신행위법 위반 관련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정치인 유착·현직 검사 향응 의혹 등 남겨

김 전 회장은 성실했다. 지난해 7월 구속기한 만료를 앞두고 보석으로 풀려난 후부터 11월11일 도주하기 전까지 모든 재판에 빠짐없이 출석했다. 석방 후 법원 명령에 따라 전자팔찌를 차고 생활하며 별다른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보석 보증금 3억원을 내고 풀려난 김 전 회장의 동태를 예의주시하던 검찰은 김봉현의 물밑 움직임에 주목했다. 도주 전력이 있는 데다 라임자산운용으로부터 투자받은 400억원을 포함해 1000억원대 횡령 혐의로 기소돼 징역 30년 정도의 중형 선고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서둘렀다. 9월14일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는 2017~18년 비상장 주식 투자를 빌미로 350여 명으로부터 90억여원을 가로챈 별건 혐의로 김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은 기각됐고, 검찰은 10월 두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결과는 또 기각.

영장 발부가 거듭 불발되자 검찰은 전략을 바꿨다. “김봉현이 중국 밀항을 준비했다”는 동료 수감자의 진술과 수사를 토대로 대포폰 2대를 특정해 통신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영장은 나오지 않았다. 상황이 꼬여가자 검찰은 마지막 카드를 내밀었다. 검찰은 재판부에 김 전 회장 보석 취소를 요청했다.

영장 미발부로 검찰의 손발이 묶인 사이에 상황은 더 긴박하게 돌아갔다. 11월8일 김 전 회장 변호인단은 단체로 사임계를 제출한다. 결심공판을 불과 사흘 앞둔 시점이다. 김 전 회장이 모종의 작전을 펼친다고 판단한 검찰은 거듭 재판부에 보석 결정 취소 의견서를 냈다.

김 전 회장에 대한 두 차례의 구속영장, 한 번의 통신영장을 모두 기각했던 법원은 마침내 11월11일 오후 2시50분 보석 취소 청구를 인용한다. 검찰로부터 구속 대상자가 도주했다는 통보를 받고 난 뒤였다. 김 전 회장은 같은 날 오후 1시30분, 결심공판을 불과 1시간30분 남겨두고 경기도 하남시 팔당대교 부근에서 전자팔찌를 끊고 달아났다.

‘빈틈’ 노린 대담한 도주, 조력자 정체는?

김 전 회장이 장기간 도주를 준비했다는 정황은 여러 대목에서 확인된다. 잠적 직전 조카 A씨와 휴대전화 유심칩을 바꿔 끼우고, 팔당대교까지 함께 이동한 A씨 차량의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도 제거해 놓는 등 단서가 될 만한 흔적을 지웠다. 친족의 범죄자 도피 조력 행위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도 적극 활용했다.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피고인의 대범한 두 번째 도피. 현재까지 드러난 확실한 조력자는 A씨가 유일하다. 검찰은 도주 3시간 후 전국에 지명수배령을 내리고 A씨의 차량 이동 경로나 거주지 CCTV 등을 통해 김 전 회장의 행적을 추적 중이다.

이제 시선은 변호인과 사법부로 향한다. ‘연쇄 기각의 행운’이 아니었다면 김 전 회장의 도주 계획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경을 교란했던 5개월의 도피 생활, 이후 정치권과 한국 사회를 뒤흔든 옥중 폭로에서 김 전 회장은 수사기관과 법조계의 조력을 인정했었다. 정치권과 검찰, 법조계에 향응과 금품을 제공해 왔다는 그의 주장은 당시 여당과 청와대 인사 연루설로 확산하며 문재인 정권에 상당한 타격을 입히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숱한 논란에도 문재인 정부에서 정권 실세 변호를 도맡았던 엘케이비앤파트너스(LKB)를 보란 듯이 선임했다. 총 세 곳의 로펌 변호인단에는 영장 전담 판사를 지낸 위아무개 변호사도 포함됐다. 특히 위 변호사는 김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서울남부지법 영장 전담 부장판사와 고교 동문에, 서울중앙지법에서 함께 근무한 이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전관예우 의혹이 불거졌다.

법조계에서는 결심 직전 변호인들의 이례적인 단체 사임을 석연치 않게 본다. 라임 피해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김정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는 “재판 막바지 일괄 사임은 변호인들이 김봉현의 결심공판 불출석을 예견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김 전 회장 재판이 증인들의 출석 거부 등으로 지연된 점도 김 전 회장 측의 의도된 전략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재판 지연으로 김봉현은 자연스레 구속 기한 만료와 결심 공판 기일 연기를 이룰 수 있었다”며 “이런 설계를 법조계 조력 없이 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강조했다.

도주와 이를 도운 조력자 면면에 대한 해답은 김 전 회장이 쥐고 있다. 이미 그가 국내를 떠났다면 라임 사태 주범들의 처벌은 지연되거나 미완으로 남게 될 것이다. 김 전 회장이 배후로 지목했던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49)은 2019년 말 해외로 나간 뒤 현재까지 도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 항만과 포구의 경계를 강화해 평택 등 서해안에서 중국으로 가거나, 부산·거제에서 일본으로 밀항하는 경로를 차단하고 있다. 경제범죄자의 밀항 수사에 정통한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30년여 년 수감생활이 예상되는 김봉현이 자기가 가진 자산들을 동원해 정치권·법조계에 내통 세력을 만들고, 체계적인 해외 도피 계획을 세우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에 가깝다. 치밀한 계획에 따라 김봉현은 이미 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도적 미비점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은 “검찰이 두 번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판사 역시 혐의를 인정했다면 도망 우려와 신병 확보 필요성에 대한 심각성을 법원이 좀 더 적극적으로 판단했어야 한다”며 “실형이 선고될 수 있는 불구속 재판 피고인의 신병 확보 방안을 논의하고 영장 항고제도 도입 등 적극적인 제도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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