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에 따라 들쭉날쭉한 혈압, 고혈압만큼이나 위험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2.11.22 10:05
  • 호수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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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과 진료실 밖 측정 혈압이 다른 ‘백의 고혈압·가면 고혈압’…‘24시간 활동 혈압’ 또는 ‘자가 혈압’ 측정 필요

병원 진료실 그리고 진료실 밖에서 측정한 혈압이 다른 경우가 있다. ‘백의(白衣) 고혈압’ 또는 ‘가면 고혈압’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그 수가 적지 않다. 단순한 긴장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혈압을 자주 측정해 자신의 혈압을 정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방치하면 불필요한 치료를 받거나 아예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다. 그래서 의료계가 최근 진료실 밖 혈압 측정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한 시민이 서울 관악구보건소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전에 예진표를 작성한 후 혈압을 측정하고 있다.ⓒ
한 시민이 서울 관악구보건소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전에 예진표를 작성한 후 혈압을 측정하고 있다.ⓒ뉴스1

진료실 밖 혈압 측정을 ‘고려’→‘권고’로 상향

고혈압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여러 질환의 원인이다. 대한고혈압학회는 정상 혈압을 120/80mmHg로 정의한다. 130~139/80~89mmHg는 고혈압 전단계, 140/90mmHg 이상은 고혈압이다. 이 수치는 진료실에서 측정한 값이다. 집과 회사 등 진료실 밖에서 측정할 때는 135/85mmHg 이상이 고혈압에 해당한다. 이처럼 진료실 또는 진료실 밖에서 측정한 혈압에서 고혈압 기준을 다르게 둔 이유는 진료실과 진료실 밖에서 측정한 혈압에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한 곳에서 측정한 혈압이 정상이라고 해서 안심하기는 이르다. 

진료실 혈압과 진료실 밖 혈압이 모두 정상이면 가장 이상적이다. 모두 정상보다 높으면 고혈압 전단계나 고혈압에 해당한다. 그런데 진료실 혈압은 높고 진료실 밖 혈압은 낮은 경우가 있다. 즉 집에서는 정상인데 병원만 가면 혈압이 높아지는 것이다. 의사의 흰 가운을 보면 혈압이 높아진다고 해서 이를 백의 고혈압이라고 한다. 대한고혈압학회는 혈압 치료를 받지 않는 사람이 진료실에서는 혈압이 높으나(140/90mmHg 이상) 진료실 밖에선 혈압이 높지 않은(135/85mmHg 미만) 경우를 ‘백의 고혈압’으로 정의한다. 

반대로, 진료실 혈압은 낮고 진료실 밖 혈압은 높은 사람도 있다. 마치 고혈압이 가면 뒤에 숨은 것 같다고 해서 이를 ‘가면 고혈압’이라고 부른다. 고혈압 치료를 받지 않는 사람이 진료실 혈압(140/90mmHg 미만)은 높지 않으나 진료실 밖 혈압은 높은(135/85mmHg 이상) 경우다. 병원 진료실에서 정상 혈압이 나왔다고 안심할 일이 아닌 것이다. 

고대구로병원 등 전국 9개 대학병원 연구팀이 2010년 고혈압 환자 1087명을 대상으로 병원과 가정에서 측정한 혈압을 비교한 연구에서 백의 고혈압은 23%, 가면 고혈압은 10%로 집계됐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진료실에서 혈압을 잰 사람 10명 중 2~3명은 백의 고혈압일 정도로 적지 않다. 가면 고혈압은 진료실에서 혈압이 정상으로 측정되니까 그 수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꽤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백의 고혈압과 가면 고혈압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넘길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진료실에서 긴장한 탓에 혈압이 오른 것뿐인데 고혈압 진단을 받을 수 있고, 약물 치료를 받으면서 저혈압에 빠질 위험이 있다. 또 백의 고혈압은 고혈압의 전조 증상일 수도 있다. 백의 고혈압은 단기간(5년 이내)에 큰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고혈압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있고 심혈관질환 위험도 커지기 때문이다. 이제 막 고혈압 범위에 들어온 사람(1기 고혈압) 중 최대 20%가 백의 고혈압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가면 고혈압은 더 위험하다. 가면 고혈압은 진료실에서 정상으로 측정되는 경우여서 실제 고혈압 환자임을 파악하지 못해 치료 시기를 놓치기도 한다. 스페인 연구에 따르면, 고혈압 환자의 사망률은 1.8배 증가하는데, 백의 고혈압 환자의 사망률은 1.02배로 지속성 고혈압보다 낮지만 가면 고혈압 환자의 사망률은 2.8배로 지속성 고혈압보다 높다. 가면 고혈압은 고혈압만큼 심방세동(빠르고 불규칙한 맥박) 발생이 1.8배로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와 같은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대한고혈압학회는 ‘2022 고혈압 진료지침’에서 ‘진료실 밖 혈압’ 측정을 ‘고려’에서 ‘권고’로 개정했다. 진료실 밖 혈압 측정을 강조한 것이다. 혈압의 정확한 측정은 진단뿐만 아니라 고혈압 관리에 필수 지표이기 때문이다. 

혈압 변동성이 크면 진료실 밖 혈압 측정 필요

백의 고혈압이나 가면 고혈압일 가능성이 커 진료실 밖 혈압 측정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백의 고혈압이 흔히 관찰되는 사람은 여성, 고령층, 비흡연자, 임신부 등이다. 또 평소 심방세동이 있는 사람도 백의 고혈압 경향을 보인다. 가면 고혈압은 남성, 젊은 층, 흡연자, 과음자, 당뇨병, 만성 콩팥병,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군, 수면 무호흡증 환자에게서 더 많이 관찰된다.  

또 하루 동안 혈압이 변하는 정도(혈압 변동성)가 큰 사람도 진료실 밖 혈압 측정 대상자다. 여러 연구를 통해 혈압 변동성이 심하거나 야간에 혈압이 낮아지지 않으면 협심증, 심부전, 뇌졸중, 신부전 등의 위험이 큰 것으로 확인됐다. 김혜미 중앙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가면 고혈압이 잘 생기는 부류가 있지만, 그렇다고 진료실 혈압이 정상인 사람을 모두 가면 고혈압으로 의심하고 집에서 혈압을 재보라고 권할 수는 없다. 그래서 최소한 고혈압 전단계인 경우에는 가면 고혈압을 의심하고 집에서 수시로 혈압을 측정하도록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고혈압 전단계는 고혈압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크므로 더 자주 진료실 밖 혈압을 측정해야 한다. 이 외에 처방 약물에 반응하지 않을 때, 간헐적인 고혈압이 있을 때, 임신 중 고혈압이 진단됐을 때, 혈압이 불안정할 때, 자율신경장애가 있을 때, 가정 혈압과 진료실 혈압이 불일치할 때도 진료실 밖 혈압 측정이 필요하다.

이미 고혈압 치료를 받는 사람에게 진료실 밖 혈압 측정은 필수다. 특히 고혈압약을 먹고 혈압을 조절 중인 사람 가운데 백의 고혈압이나 가면 고혈압을 보이는 경우는 진료실 밖 혈압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고혈압을 치료하는데도 진료실 혈압은 높고 진료실 밖 혈압이 높지 않은 경우를 ‘백의 비조절 고혈압’이라고 한다. 반대로 고혈압을 치료하는데도 진료실 혈압은 높지 않고 진료실 밖 혈압이 높은 경우를 ‘가면 비조절 고혈압’이라고 한다.  

백의 비조절 고혈압은 심혈관질환 위험이 증가하지는 않지만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으로 오인될 수 있다. 또 고혈압 환자 중 상당수는 일정한 시간에 병원을 찾아 혈압을 측정한다. 그 시간대에만 정상 혈압으로 나오는 가면 비조절 고혈압은 나머지 시간대에 혈압이 조절되지 않아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거나 특정 시간대에 혈압에 변화를 줄 만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생활을 교정할 수 없다면 의사와 상담 후 약물 용량에 변화를 줘서라도 혈압 변동성을 조절해야 한다. 김혜미 교수는 “백의 비조절 고혈압과 가면 비조절 고혈압도 평소 진료실 밖 혈압을 잘 관찰해야 한다. 이에 따라 고혈압 치료 약물을 바꾸거나 용량을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리 꼬지 말고 혈압 측정해야

진료실 밖 혈압 측정은 어떻게 해야 할까. 크게 2가지, ‘24시간 활동 혈압’ 측정법과 ‘자가 혈압’ 측정법이 있다. 24시간 활동 혈압은 하루 혈압의 변동성을 잘 파악할 수 있다. 의사와 상담한 후 권고에 따라 24시간 활동 혈압을 측정할 수 있다. 휴대용 혈압 측정기를 팔 위쪽에 부착하고 하루 일상생활을 하면 자동으로 30분마다 혈압을 측정해 기록한다. 다음 날 의사는 이 기록을 보고 환자의 혈압 변동성뿐만 아니라 심혈관질환 위험성이나 고혈압 약물 치료 효과를 파악한다. 

24시간 활동 혈압을 측정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사람은 ‘자가 혈압’ 측정법을 이용하면 된다. 가정용 전자식 혈압계로 집에서 주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해 기록하는 것이다. 시중에서 파는 전자식 혈압계를 구입해 최소 아침 시간에 2번, 저녁 시간에 2번 측정한다. 특히 아침의 혈압 급상승(모닝 서지)은 뇌혈관질환 위험을 높이므로 아침식사 전에 혈압을 측정할 필요가 있다. 하루 중 마지막으로 혈압을 잴 때는 잠자리에 들기 전이다. 그 외에 화장실에 다녀오고 5분 휴식 후, 샤워(또는 목욕) 전 등에 혈압을 잰다. 만일 고혈압약을 복용 중인 사람이라면 아침에 약을 먹기 전에도 혈압을 잰다. 

가정에서 혈압을 잴 때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혈압 측정 30분 전부터는 카페인 섭취와 흡연을 금한다. 의자에 앉아 5분간 휴식한 후 책상이나 식탁에 팔을 올린다. 팔을 책상이나 식탁에 올리고 팔 윗부분(심장 높이)에 커프(압박대)를 착용한다. 커프 속으로 손가락 한두 개가 들어갈 정도의 여유가 있는 것이 좋다. 

등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는 편이 좋다. 등을 기대지 않거나 다리를 꼰 채 혈압을 재면 2~10mmHg 더 높게 나올 수 있다. 혈압 측정 중에 말을 하거나 움직일 때도 혈압이 10~15mmHg 더 높게 측정될 수 있다. 혈압 측정을 마치면 혈압 수치와 측정 날짜·시간 등을 수첩에 기록한다. 그리고 1분 휴식 후 다시 측정하면 오차를 줄일 수 있다. 한편, 대한고혈압학회는 국내 고혈압 환자가 약 1270만 명일 것으로 추정한다. 20세 이상 성인의 약 30%가 정상혈압(140/90mmHg)을 웃도는 혈압값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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