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희생자’ 공개한 민들레, 사과하고 실명 게재 철회하라 [쓴소리 곧은소리]
  • 이정미 정의당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18 16:05
  • 호수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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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인터넷 언론사 ‘민들레’, 유족 동의 없이 상주 자처…또 하나의 참사
피해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줘야 애도? 이런 논쟁은 유족과 무관

기고 요청을 받고 괴로웠다. 이미 유가족들은 수많은 상처를 입었는데 내가 또다시 말을 얹기가 불편하고 힘들다. 그러나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피해자 실명 공개를 한 언론과 이를 지지하는 일부 시민은 한발도 물러설 기미가 없다. 다시 우리 모두에게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용기를 내어본다. 

“오늘 퇴근하고 저랑 공원 같이 걸을 사람 계신가요?” 얼마 전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에 올라온 글이다. 퇴근하고 공원을 같이 걷자니. 출퇴근 시간 발 디딜 틈 하나 없는 지옥철에 몸을 싣고, 하루 낮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정작 퇴근 후 나의 고민과 감정을 나눌 사람은 적다. 한 달 월급이 스치듯 통장을 지나가지만, 그중에 얼마를 저축해야 미래의 내가 행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청년들의 이야기는 특별한 감정이 아니다. 요즘 청년들에게 2022년 대한민국 사회는 말 그대로 각자도생, 외로움과 고립의 시대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대표인 김영식 신부가 11월14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용산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미사’ 도중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했다.ⓒmbn 캡처

감정 과몰입 부추기고 진영의 감정에 사로잡혀

바로 옆 누군가에게 말 하나 건네기 힘든 세상이지만 인터넷 세상에선 용기를 내지 않아도 된다. 상대를 배려해야 하는 감정의 공간을 만들지 않아도 자신의 이야기를 너무나 쉽게 쏟아낼 수 있다. 온갖 자극적인 언어들을 동원해 자신의 분노를 쏟아내고, 누군가를 혐오하는 단어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늘어나는 ‘좋아요’ 숫자에 자신을 위로한다. 

그럴수록 우리 정치가 해야 하는 일은 명확하다. 외로운 사람들을 연결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그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정치의 의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의 정치는 감정 과몰입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개인의 감정에서 진영의 감정으로 나아가 사로잡혀 있다. 우리 편이라면 일단 동조하고 그 이유를 보태 나가면서 논리를 확산한다. 외로운 사회,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진영과 똘똘 뭉쳐야 한다. 진영을 공격하는 것은 나를 공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저편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치가 깊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인터넷 언론사 ‘민들레’의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명단 공개는 공감 능력 부재로 생긴 참사 후의 참사다. 어린 자식을 잃은 부모는 장례식장에 지인들이 조문 오는 것조차 고통스럽다고 한다. 이번 참사를 받아들이기에 지난 20일은 너무도 힘든 시간일 것이다. 하루아침에 곁을 떠난 자식과 친구를 보내기에도 힘겨운 시간일 것이다. 

그런데 피해자 명단이 공개되어야 비로소 우리 공동체가 진정한 애도와 추모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가족의 동의도 없이 또 하나의 상주를 자처하는 민들레와 민들레의 공개를 옹호하는 분들을 보면, 자신들의 슬픔과 애도 방식에 과몰입하며 유족들에 대한 공감력을 잃어버린 상태를 느끼게 한다. 

우리는 수많은 산업 현장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해도, 대한민국의 일터가 더 안전해야 한다는 각성을 더 뚜렷이 해왔다. 파리바게뜨 계열사 여성 청년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우리는 이름도 영정도 없이 그를 추모했고 불매운동에 동참했다. 

왜곡된 언론의 욕망이 무엇보다 우선하여 치유와 회복을 위해 공동체가 세심하게 돌보아야 할 유족들의 감정을 지워버렸다. 심지어 ‘이름 공개를 원치 않는 유족에게 이메일로 연락 주면 반영하겠다’는 민들레의 후속 조치에 분노한다. 

 

국정조사는 정쟁의 대상이 아닌 정치의 의무 

우리 공동체는 시민들의 프라이버시 기본권을 알권리보다 우선한다는 합의를 이루어왔다. 급박한 재난사고 앞에서조차 이 기본권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재난보도준칙을 만들어 놓았다. 취재·보도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족, 주변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신상 공개는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고 정한 것이다. 동의 없는 피해자 명단 공개는 분명한 재난보도준칙 위배이고 언론의 기본의무를 저버린 행위다. 

더 이상 참사 피해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야 진정한 애도다, 아니다로 유족들의 심정 바깥에서 논쟁이 이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 이름 부르며 내가 애통해하는 시간보다 유족들의 마음에 먼저 가닿아 보길 바란다. 몸의 중심은 가장 아픈 곳에 위치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의 중심도 지금 가장 아파하고 있는 유족들을 향해야 한다. 정치권이 이를 명심해야 한다. 

유족들이 원하는 시간을 기다려주자. 정부는 원하는 유족들이 함께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정부의 대책에 대해 진지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자. 정치권도 이번 참사의 본질에 집중하자. 기호화된 이름을 불러주는 것보다 우선하여 유족들이 원하는 것은 왜, 어떻게 참사를 막지 못했고 구하지 못했는가의 질문에 답해 달라는 것이다. 어긋난 경찰 수사에만 맡겨둘 수 없는 이유다. 국정조사가 불가피한 이유다.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해 압도적 국민들은 진상 규명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현재 경찰이 중심이 된 특수본의 수사는 애먼 곳만 찌르고 있기에, 여론과 야당들은 국정조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번 참사는 사법적 책임과 함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의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일이다. 내 자식과 내 친구가 그곳에 갔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예방할 수 있었고, 구해 달라는 요구에 응답해야 했던 정부가 손 놓고 있었기에 발생한 참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식적인 국정조사 요구가 암초에 걸리는 시간은 너무나 빨랐다. 국정조사 찬반 논쟁은 본질을 비껴나 상대 진영의 의도가 무엇이냐로 번지고 있다. 진실 규명, 책임자 처벌의 요구에 응답해야 할 정치의 시간을 그저 주장의 의도를 해석하는 데 허비하고 있다. 그사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은 이들의 아픔은 정치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 참사 이후 정치가 보여준 이 상황들은 유족들과 국민들에게 두 번 세 번의 상처를 남긴다는 것을 명심하자. 당리당략은 지금은 내려놓자. 11월24일 본회의에서 반드시 통과되기를 바란다. 정의당도 최선을 다하겠다. 

마지막으로 당부드린다. 언론기관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에 기반해, 민들레는 지금 당장 유족 동의 없는 실명 공개를 사과하고 게재를 철회해야 한다. 사후 조치로 동의 여부를 물어 일부 블라인드 처리했다지만, 원본 자료가 온갖 SNS에 퍼지고 있다. 그 원인 제공자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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