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물건’이 등장했다, 《약한영웅 Class 1》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26 11:05
  • 호수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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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중심에 선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반응이 제대로 터졌다. OTT 플랫폼 웨이브(wavve) 오리지널 시리즈 《약한영웅 Class 1》(이하 《약한영웅》) 얘기다. 성적은 상위 1%지만 몸이 약한 고등학생인 연시은(박지훈)이 타고난 두뇌를 활용해 학교폭력에 대항해 가는 과정을 담은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 온스크린 섹션에서 1~3회를 공개한 직후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니, 11월18일 전체 회차(총 8부작)를 공개한 이후엔 더욱 뜨거운 반향이 이는 중이다. 오픈 당일 올해 웨이브의 신규 유료 가입자 견인 1위 기록을 세우면서 ‘효자상품’으로 등극한 것은 물론, 해외 반응도 심상치 않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10대 학원물, 신예 감독과 배우들, 국내 OTT 플랫폼 가운데 이용자 수는 1위지만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던 웨이브. 이 모든 핸디캡을 극복하고 《약한영웅》이 화제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1》 한 장면ⓒWavve 제공

원작을 영리하게 활용한 기획의 힘

주인공 연시은은 보이지 않는 벽을 두르고 있는 인물이다. 귀에 꽂은 블루투스 이어폰은 무언가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말을 걸지 못하게 차단하는 일종의 갑옷이다. 같은 반 교실에는 이런 시은을 아니꼽게 생각하는 전영빈(김수겸)의 무리가 있다. 그들은 “(아무리 괴롭혀도) 영혼이 안 다치는” 시은을 내버려둘 생각이 없다. 그만하라는 점잖은 부탁은 통할 리 없다. 시은이 명석한 머리를 싸움에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맨 뒷자리에서 매일같이 잠만 자는 안수호(최현욱)에게도 사연은 있다. 밤새 배달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싸움에는 충분한 소질이 있지만, 그럴 시간에 잠이라도 몇 분 더 자두는 게 수호에게는 이득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영빈 무리의 집요한 괴롭힘에 맞서는 시은의 방식이 수호의 눈길을 잡아끌기 시작한다.

같은 반에 전학 온 오범석(홍경)은 언제나 ‘국회의원 아들’이라는 배경이 먼저 이야기되는 학생이다.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적 조건이 매사에 주눅 들어 굽은 범석의 어깨를 그나마 조금 펴게 한다. 전 학교에서 집요한 학교폭력에 시달렸던 범석은 그걸 덜미로 잡혀 영빈 무리에게 이용당하며 시은과 불편하게 엮이게 된다.

저마다의 이유로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택하거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세 사람이 친구가 되는 과정은 《약한영웅》의 출발점이다. 부모와 교사가 깊숙하게 개입할 수 없는 교실이라는 정글, 더욱 정확하게는 폭력의 질서로 유지되는 생태계 안에서 아이들은 각자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한다. 그러다 친구가 생기는 순간, 지켜야 할 것의 범위는 늘어난다. 동시에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거나 고려할 필요도 없었던 ‘관계 안의 감정’이 인물들의 선택을 이끈다.

퀘스트를 통과하듯 위기를 극복하는 주인공 연시은의 방식은 《약한영웅》 전체에 그대로 적용된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약점이 될 만한 지점들을 영민한 아이디어로 돌파한다. 웹툰을 그대로 옮겨 똑같이 찍어내는 대신 인물과 배경의 변주를 고민했을 각본에서부터 기획력은 돋보인다. 이번 시리즈는 시은이 원작의 주요 배경인 은장고등학교로 가기 전의 일들을 그린다. 일종의 프리퀄 형태인 것이다.

인물들의 배경도 원작과는 조금씩 달라졌다. 수호는 시원시원한 액션의 주인공이 됐고, 범석은 학교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폭력에 노출되는 캐릭터가 됐다. 시은에게 복수하고 싶어 하는 영빈이 가출팸 멤버들을 끌어들이는 설정을 만들면서 원작에는 없던 영이(이연), 전석대(신승호) 등 학교 밖 캐릭터들도 추가됐다. 원작과의 비교와 싱크로율에 대한 부담은 줄이고, 원작을 보지 않은 팬층까지 섭렵할 수 있는 시리즈만의 진입로를 깔아두는 전략이다.

4부를 기점으로 전반과 후반이 나뉘는 구성 역시 극의 집중도를 높이는 데 한몫한다. 세 인물이 친구가 되는 동시에 가출팸으로 대변되는 학교 밖 세력과 얽히고 이후 그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전반전이라면, 사소한 오해와 서로를 바라보는 감정들로 인해 관계가 무너지고 와해되는 것이 후반부의 전개를 책임진다.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1》 한 장면ⓒWavve 제공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1》 한 장면ⓒWavve 제공

한 끗의 차이, 액션보다 돋보이는 감정선

《약한영웅》은 현실 고발의 측면보다는 두뇌를 활용하는 액션의 쾌감과 잘 짜인 캐릭터 드라마로서의 매력이 먼저 두드러지지만, 독자적인 질서와 위계로 지탱되는 남성 조직을 주목한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지난해의 화제작 《D.P.》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 있다. 매일 같은 장소에서 수많은 이가 오랜 시간을 공유해야 하는 것, 개별성보다는 단체의 규율 아래 강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의 남학생 교실과 내무반은 문제적으로 닮은 구석이 많다. 교실의 질서를 경험한 이들은 몇 년 뒤 실제로 군대라는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실제로 《D.P.》를 연출한 한준희 감독이 각본과 캐스팅, 연출과 편집 전반에 함께 관여하는 크리에이터로 나선 영향이 적지 않다. 그는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인물 관계를 파악하는 작품에서 강점을 드러내는 연출가다.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눈여겨본 신예 감독 유수민에게 메가폰을 맡긴 것 역시 흥미로운 선택이다. 이들의 목표는 10대 남성 캐릭터들 사이의 세밀한 감정과 관계의 분열을 들여다본 《파수꾼》(2011)에 액션을 결합한 형태였다고 한다.

‘학원 액션물’이라는 외피보다 인물들의 감정을 중심으로 한 캐릭터 드라마에 방점을 찍은 것은 《약한영웅》의 강점이다. 교실 속 10대들의 상황을 공동체 혹은 관계 안에서 누구나 경험하는 보편적인 감정들로 연결하는 확장성이 주효했다. 타인에게 애정을 갖는 과정, 곁에 있는 이를 부러워하고 동경하는 마음, 비뚤어진 시선 사이로 새어나오는 열등감과 수치심, 그 모든 것들은 처음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관계를 만든다. 인물들의 갈등이 최대치로 폭발하는 8회에서 강조되는 것은 액션의 설계보다 그토록 세심하게 길어올려진 감정선의 합이다. 그 중요성을 이해한 한 끗의 차이는 《약한영웅》을 기존 학원물과 다른 노선에 놓이게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이제 막 도약하는 신예 배우들의 반짝이는 재능을 발견하는 기쁨이 적지 않은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반가운 작품이다. 작품 전체를 안정적으로 리드하는 박지훈의 재능, 박자를 가지고 노는 듯한 최현욱의 유연함, 변화무쌍한 호흡의 인물을 기어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홍경의 설득력은 이들을 차세대 주자로 손꼽기에 주저함이 없게 만든다. 분절적으로 등장하지만 장면마다 중요한 방점을 찍는 이연과 신승호를 비롯해 조·단역마저 모두 매력적으로 돋보인다. 이들은 배우가 거쳐온 경험의 크기와 너비만이 작품의 만듦새를 좌지우지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 아님을 넉넉하게 증명한다. OTT 오리지널 시리즈이기에 가능했을 과감한 캐스팅과 기획이 ‘새로운 시도’의 정석에 가까운 사례를 만들어냈다.

《약한영웅》 시즌2 제작 가능성은

웨이브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국내외 반응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열린 상황이다. 국내 반응뿐 아니라 중국 동영상 플랫폼 아이치이(iQIYI), 미주 비키(ViKi) 채널 내 코코와(KOCOWA) 등 해외 반응도 평점 9.9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기 때문. 8회의 쿠키영상에는 원작 팬들이라면 강렬하게 기억할 캐릭터의 등장이 힌트로 제시되기도 한다. 배우들의 스케줄 확보가 관건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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