섞음주의 시대가 왔다…'주종'은 왜 달라졌나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2.11.26 14:05
  • 호수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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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볼·칵테일 등 ‘섞어 마시는 술’이 대세가 된 이유
MZ세대 중심으로 확산된 믹솔로지(Mixology) 트렌드…주류·유통업계도 경쟁 가세

소주와 맥주는 대한민국의 모임과 회식 자리에 필수적 존재였다. 소주나 맥주를 마시며, 혹은 소맥을 말아 먹으며 부어라 마셔라 하던 술자리 문화에 제동을 건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였다. 코로나19가 촉발한 긴 시간을 거치면서 강제적인 술자리와 늦게까지 진행되는 회식 문화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인식이 고개를 들었고, MZ세대를 중심으로 ‘즐길 수 있는 술자리’를 지향하는 새로운 문화가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주류(酒類) 시장은 그 시대의 주류(主流)에 따라 변한다. 경험을 중시하고 새로운 문화를 좋아하는 MZ세대는 소주와 맥주로 1~3차를 달리던 가성비 좋은 회식을 거부하고, 가심비를 충족하기 위한 ‘술의 경험’에 돈을 쓴다. 그렇게 그들은 수제 맥주 시장을 열어젖혔고, 막걸리를 한식과 페어링하며 전통주를 ‘힙한’ 것으로 여겨지게 했으며, 와인과 위스키 등 다양한 고급 주종의 판매량까지 늘렸다. 이제 이들은 술을 섞는다. 바야흐로 ‘섞음주’를 만드는 ‘믹솔로지(Mixology) 시대’가 도래한 배경이다.

취향-홈텐딩 문화가 맞닿으며 확산

그동안 ‘소맥’은 ‘섞어 마시는 술’의 정의나 다름없었다. 소주와 맥주를 원하는 비율로 섞어 마시는 소맥은, 한국에서는 어떤 섞음주보다 익숙한 믹솔로지의 대표작이다. 소주와 맥주 종류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카스처럼’(카스+처음처럼), ‘테슬라’(테라+참이슬)와 같은 별칭들이 생겨났고, 주류업계도 이 같은 이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회식과 같은 획일적인 문화와 고질적인 업무 술자리를 거부하는 새로운 세대에게, 소맥은 개성이 없는 술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취향인 술’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홈술과 홈텐딩(홈+바텐딩) 문화가 확산하면서, 집에서 스스로 술을 섞어 마시는 믹솔로지 트렌드는 새로운 주류 문화로 정착했다.

실제로 주류업계는 개인화 사회가 되면서 개인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는 섞음주로 주류 트렌드가 수렴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또 세계 최대 비상장 증류주 제조업체 바카디가 지난해 말 발표한 칵테일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칵테일 주류(섞음주) 애호가들은 집으로 주류를 주문해 편안하게 믹솔로지할 것이며, 독특한 칵테일과 주류를 선호하는 등 주류 소비를 재검토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전망은 MZ세대를 중심으로 실현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술은 만취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섞음주는 술을 가볍게 즐기는 젊은 세대의 니즈와 맞닿아있다. 만드는 과정 자체가 요리고, 취미이자 문화생활이 된다. 지금 떠오르는 대표적 섞음주는 하이볼이다. 하이볼은 증류주에 탄산음료를 부은 뒤 레몬이나 라임을 곁들이는 주류를 통칭하는데, 진에 토닉워터를 넣는 진토닉이나 버번 위스키에 콜라를 넣는 잭콕도 넓은 의미에서는 하이볼에 해당한다. 만들기 간편하고 적당한 도수(7~10도)로 위스키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홈술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위스키는 소주나 맥주보다 종류가 다양해 취향에 맞는 맛과 도수로 여러 가지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다. 위스키에 토닉워터나 탄산수뿐 아니라 진저에일, 라임주스, 콜라 등을 섞거나, 원하는 시럽을 넣어 원하는 맛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위스키 매출 상승…2030 구매 비중 높아져

향과 맛을 배가시키기 위해 위스키에 대해 공부하고, 여러 레시피를 만들고, 그것을 SNS를 통해 공유하는 것도 MZ세대의 주조 과정에 속한다. 칵테일 주조 영상을 업로드하는 유튜버 술덕후의 ‘살면서 알아두면 좋을 74가지 칵테일 입문서’ 영상은 295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지난 4월 박나래가 《나혼자 산다》를 통해 공개한 ‘얼그레이 하이볼’은 지금도 SNS를 통해 레시피가 활발히 공유되는 ‘최애 하이볼’ 중 하나다. 레시피에 속한 대중적 위스키인 산토리가 대형마트에서 품절되는 통에 찾기 어려운 술이 됐다. 섞음주 레시피가 다양해지면서 블렌디드 위스키뿐 아니라 개성이 강한 싱글몰트 위스키를 활용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믹솔로지 열풍은 침체됐던 위스키 시장을 부흥시켰다. 유흥시장 상권에 집중됐던 위스키 판매가 편의점이나 대형마트 등 가정채널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 그것을 방증한다. 특히 집에서 가깝고,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재고 정보를 알아볼 수 있다는 장점 등이 부각되면서 편의점은 접근성 좋은 주류 구매채널로 거듭났다. 이전에는 한두 종류의 위스키만 비치해 놨지만 현재는 조니워커, 와일드 터키, 잭 다니엘, 발렌타인 등 주류 전문점에서 팔던 다양한 위스키들을 판매하고 있다. GS25의 주류 판매 플랫폼 와인25플러스의 위스키 등 하드 리큐르 매출 비중(35.6%)은 와인(31.2%)을 넘어섰고, 올해 10월까지 매출은 전년 대비 56% 이상 늘어났다.

CU의 1~10월 위스키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137% 증가했다. 양주 매출에서 2030세대가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높아졌는데, 2021년 38.7%에 그치던 매출 비중이 2022년 53.4%까지 상승했다. GS25의 경우, 위스키의 구매고객 중 2030이 차지하는 비중은 70%를 넘었다. 위스키뿐 아니라 섞음주의 재료가 되는 품목 매출도 늘어났다. GS25에 따르면 토닉워터는 54.1%, 탄산음료는 24.8%, 주스는 13.5%(올해 2월 기준)의 매출 신장률을 보였다. 3년 전에 100억원에 미치지 못했던 토닉워터 시장 규모도 300억원까지 확대됐다.

실제로 위스키 구매의 배경이 믹솔로지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 결과도 있다. KPR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소가 매스미디어와 SNS, 웹 등의 빅데이터 155만 건을 대상으로 연관어를 분석한 결과, 소셜미디어상에서 위스키에 대한 언급량은 2019년 15만1395건에서 2022년 43만1275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상위 연관어를 분석한 결과 위스키 구매는 칵테일과 하이볼 제조를 위해 구매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김은용 KPR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은 “MZ세대 소비자들은 일종의 놀이처럼 개성에 따라 주종을 선택하고 있다”며 “유통·식음료 업계를 비롯한 관련 산업군에서도 변화한 주류 트렌드를 반영해 색다른 마케팅 전략 구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MZ세대 겨냥해 마케팅 나선 주류·유통업계

당연히 주류업계와 유통업계도 변화하는 트렌드를 외면할 수 없다. 이미 다양한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킨 믹솔로지 주류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도 확대됐다. 탄산수에 알코올과 향미를 첨가한 미국식 섞음주 하드셀처를 판매하는 화이트클로의 미국 판매량은 전년 대비 120% 증가했고, 일본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었다. 특히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얻는 레시피의 섞음주를 제품 형태로 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명 RTD(Ready To Drink·바로 마시는 주류)다.

국내 주류업계도 빠르게 믹솔로지 시장에 진입했다. 오비맥주는 지난해 럼, 데킬라, 보드카 등을 활용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캔 칵테일 제품인 컷워터를 국내에 선보이고 MZ세대에게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서울 성수동에서 팝업스토어를 운영했다. 홈술 트렌드에 힘입어 주류 부문의 실적 개선에 성공한 롯데칠성음료는 믹솔로지 주류를 중장기 핵심 사업으로 정하고 드라이브를 걸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술과 여러 음료를 혼합한 RTD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고, 올해 초에는 1만원대의 저렴한 위스키를 출시해 섞음주 열풍에 올라탔다. 지난여름에는 국순당과 손잡고 막걸리와 칠성사이다를 섞은 주류를 출시하는 등 믹솔로지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통업계는 어떨까. 이마트는 지난해부터 매장을 리뉴얼해 RTD존으로 꾸렸다. 판매하는 섞음주 종류를 확장하고 RTD존도 늘려가는 추세다. CU는 최근 편의점에서도 섞음주 관련 상품의 매출이 크게 증가한 점을 반영해 RTD 하이볼 제품을 출시했다. 특히 인기를 끌었던 얼그레이 하이볼과 레몬토닉 하이볼을 제품화해, 얼음만 넣어 간편하게 마실 수 있게 했다. 이승택 BGF리테일 주류 TFT장은 “홈술 문화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으면서 다양한 주류를 찾는 소비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하이볼 역시 모디슈머(기존 제품을 나만의 방식으로 조합해 새롭게 사용하는 소비자) 문화에 익숙한 MZ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어 고객 니즈를 겨냥한 맞춤형 상품이 지속적으로 출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유의 향과 풍미를 강조하던 위스키 브랜드들까지 믹솔로지 트렌드에 스스로 취하며 젊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조니워커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조니워커를 활용한 믹솔로지 레시피를 직접 선보였다. 수박에이드나 딸기주스 등을 넣은 하이볼 레시피를 소개하고 그와 어울리는 음식을 페어링하면서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MZ세대에게 친숙한 아티스트인 CL과 지코를 앰배서더로 등장시키고, 뮤직 페스티벌 등에도 참여하면서 2030세대와의 접점을 넓히는 것 역시 주류시장에서의 MZ세대 위상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프리미엄 주류 유통사 트랜스베버리지는 칵테일 도구와 주류로 구성된 홈텐딩 키트를 출시해 한정판매했고, 국산 위스키 브랜드 골든블루는 하이볼 전용 위스키를 출시했다.

인기 레시피와 제품군의 변화는 물론 존재하겠지만, 기성세대와 다른 술 문화를 추구하는 MZ세대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섞음주 열풍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광고마케팅 회사 이노션 인사이트그룹은 “MZ세대의 술자리는 라이프스타일이 담겨있는, 새로운 세대의 가치관이 반영된 문화의 단면”이라며 “이들의 술자리는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X세대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술자리 문화가 오랫동안 유지된 것처럼 점차 기존의 술자리를 대체하면서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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