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는 사치? ‘이상민 블랙홀’에 휩싸인 여의도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2.12.0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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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해임건의안→탄핵소추’ 주장에 與 “이재명 리스크 가리려해”
정쟁 과열에 정치권 일각 “여야 모두 정치력 발휘할 때” 지적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연일 충돌하는 모습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건의안과 내년도 예산안 처리 등을 놓고 이견을 보이면서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 장관을 해임하지 않는다면 탄핵소추안까지 발의할 계획이다.

정치권 일각에는 여야의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는 이면에는 양 지도부의 ‘정략적 판단’이 있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상대의 ‘불통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 각 진영의 ‘집토끼’(전통적 지지층)를 결집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일 오전 국회의장 주재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마치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일 오전 국회의장 주재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마치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野, ‘탄핵 카드’는 사실상 공수표?

민주당은 이상민 장관을 반드시 해임하겠다는 각오다.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 개최를 반대할 경우 국회의장을 움직여 의장 직권으로 개의하거나, 민주당 단독으로라도 소집해 해임건의안 처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1일 국회에서 정책조정회의를 열고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를 반드시 열어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안을 가결하고, 그 이후에도 이상민 장관이 자진 사퇴를 안 하거나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한다면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이번 정기국회 내 반드시 이상민 장관에 대한 문책을 매듭짓겟다”고 밝혔다.

법률상 해임건의안과 탄핵소추안은 재적 의원 3분의1 이상 발의와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된다. 민주당 의석수만으로 해임건의안을 의결할 수 있다. 다만 해임건의안은 법적구속력이 없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여권 일각에서 민주당의 해임건의안을 ‘쇼(show)’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민주당은 해임건의가 무산되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역시 쉬운 시나리오는 아니다. 정기국회 일정을 감안하면 여야가 추가 본회의를 여는 데 합의해야 하는데, 국민의힘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국무위원 탄핵소추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전례도 없다. 만약 탄핵소추안이 겨우겨우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이 장관의 직무상 책임을 ‘법’으로 심판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에 여권에서는 민주당이 ‘이상민 블랙홀 정국’을 의도적으로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장관 해임에 여야의 관심을 집중시켜, ‘이재명 사법리스크’를 가리려 한다는 주장이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경찰 수사를 통해 책임 소재를 밝히고 결과에 따라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며 “특수본 수사와 국정조사를 통해 문제점이 드러나면 엄중하게 책임을 물으면 될 일인데, 민주당은 일단 처벌부터 하고 책임을 묻자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처음부터 민주당이 요구하는 국정조사가 정쟁에만 이용될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집권여당으로서 민생정치 시작인 예산안 처리를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국정조사를 수용한 것”이라며 “민주당은 검수완박, 감사완박, 예산완박으로 횡포를 부리고 국민이 주신 입법권을 이재명 대표의 방탄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與, 대야 전선 확대는 ‘윤심’ 발맞추기?

반면 야권에선 국민의힘이 이 장관 문제를 ‘어렵게’ 풀어가려고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장관만 사퇴하면 모든 정쟁이 일순간 정리될 것이란 얘기다. 그런데도 이 장관에게 기운 ‘윤심’(윤 대통령 의중)을 의식, 국민의힘이 ‘민심’을 잃은 이 장관 보호에 나섰다는 비판이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본청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국민의힘을 향해 “여야가 희생자·유족·생존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합의한 국정조사다. 집권여당이 합의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하고 ‘국정조사 보이콧’ 운운하는 건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자기 고백이자, 참사의 진상을 영원히 봉인하겠다는 국민기만”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정치권 일각에선 일부 친윤계 의원들이 윤 대통령에게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조언을 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이 장관을 해임하는 순간 정국의 주도권이 야권으로 넘어간다는 우려를 대통령실에 전했다는 것이다. 즉, 이태원 참사가 ‘제2 세월호’로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주장이 여권 내에서 제기되는 모습이다.

여권 한 핵심관계자는 “최근 대통령실과 당 내에서 TK(대구·경북) 민심을 주의깊게 보고 있다. 일단 (침체된) 지지율을 올리려면 당원들의 의견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분위기”라며 “이런 상황에서 상대(민주당)의 무리한 요구(이 장관 해임)를 들어줄 이유는 더더욱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치권 한켠에선 이 장관 해임을 둔 여야의 정쟁 탓에 ‘민생’이 외면 받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경기 침체가 가중되는 가운데 여야가 국무위원 1명의 유임과 해임을 두고 너무 큰 ‘당력’을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민주당은 정치를 못해서 (대선에서) 심판받았고, 국민의힘은 그 덕에 정권을 잡았다. 즉, 여야 모두 ‘우리가 정치를 잘한다’고 착각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며 “그런데 최근 여야의 모습은 오합지졸 그 자체다. 국민의 상식과 대치되는 정쟁을 계속 벌이는 것은 (참사로)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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