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표’ 걸그룹 뉴진스의 신선한 도발, 글로벌에 통했다
  • 김영대 음악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1.07 15:05
  • 호수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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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Ditto》과 《OMG》로 저력 입증
K팝 신에서 뉴진스를 프런트 러너로 꼽는 이유

데뷔한 지 이제 겨우 반년. 통상적인 정규 앨범의 절반 분량에 해당하는 다섯 곡만을 발표했을 뿐이지만 걸그룹 뉴진스(NewJeans)는 이미 K팝 시장을 중심에서부터 뒤흔들고 있다. 그것도 매우 은근하게,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말이다. 뉴욕타임스가 ‘맥시멀리즘’이라고까지 명명한, K팝의 지배적인 미학을 역행하는 담백한 사운드와 그에 정확히 부합하는 비주얼의 일관성, 틀에 박히지 않은 자연스러운 보컬 스타일 등은 이 그룹에 직관적인 차별성을 부여한다.

데뷔곡 《Attention》의 시크한 청량함, 커버 댄스 열풍을 몰고 온 《Hype Boy》나 《Cookie》의 고급스러운 중독성을 떠올려보자. 신기하지 않지만 충분히 놀랍고, 강요하지 않는데 설득되고, 설명할 수 없어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탁월한 아티스트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K팝 신에서도 뉴진스를 새 시대의 프런트 러너로 꼽는 이유다.

ⓒADOR 제공

K팝의 공식·관습 깨…MZ세대 플레이리스트 잠식

뉴진스의 데뷔는 실로 특이했다. 이들은 데뷔 전부터 ‘민희진표 걸그룹’이라 불렸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 업계와 팬덤의 주목을 이끌어냈다. K팝의 역사에서 기획사의 브랜드가 아닌 개인, 그것도 작곡가나 음악 프로듀서 출신이 아닌 아트 디렉터 출신 여성 프로듀서의 이름이 전면으로 부각돼 그 자체로 셀링 포인트가 됐던 사례는 없었다.

뉴진스의 데뷔를 둘러싼 독특한 면모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뉴진스는 이제는 K팝의 공식이자 관습적인 프로모션의 일환이 된 티저 영상을 일절 배제했고, 음반 발매 이전에 앨범의 네 곡 중 세 곡을 타이틀곡으로 과감히 내세워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알 만한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이미 뉴진스의 독특하고 대범한 면모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뉴진스는 단순히 사운드, 퍼포먼스, 비주얼의 개별적 총합이 아니라, 총체적인 이미지의 선언이라는 것을 말이다.

현대적이지만 히트곡의 공식과는 다분히 거리를 둔 뉴진스의 곡들은 어느새 음원 차트의 꼭대기를 차지했고, 누구나 따라 입고 추고 싶은 춤과 패션을 앞세워 MZ세대들의 플레이리스트와 각종 숏폼 콘텐츠를 놀라운 속도로 빠르게 잠식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아이돌 그룹들이 회사의 지명도나 멤버들의 명성을 통해 팬덤을 미리 구축해 그것을 유지·확장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데 반해, 뉴진스는 프로듀서의 지명도를 빼고, 그 어떤 화제성도 없었지만 음악과 이미지의 신선함을 앞세워 인지도의 커브를 빠르게 꺾어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낯선 풍경에 많은 이가 그 이유를 분석하기 바빴다. 프로듀서인 민희진의 영민함을 거론하는가 하면 뉴진스의 음악이 가진 뉴트로적인 분위기를 꼽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 더 명확한 이유가 하나 있다. 뉴진스는 K팝 팬덤의 독특한 취향을 넘어선 보편적인 매력에 호소하는 음악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신곡 《Ditto》와 《OMG》는 몇 달 전 뉴진스의 데뷔에서 느낀 신선함이 결코 착시나 과장된 감상이 아니었음을 재차 확인시켜주는 문제작들이다. 산뜻한 감각과 세련된 만듦새는 유지되었으되 전체적인 이야기의 맥락은 복잡해졌고, 이야기를 다루는 표현의 방식은 대범해졌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뮤직비디오로 선공개된 이 두 곡은 아이돌이라는 존재에 대한 서글픈 성찰이며 고백이자, 일방적이고 부당한 바깥의 시선에 대한 일침이면서, K팝 아이돌 산업 안에서 가장 건드리기 어렵고 예민한 팬과의 관계에 대한 색다른 비평이다.

하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뮤직비디오들이 보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콘텐츠일지는 모르지만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난해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뮤직비디오는 명쾌한 설명을 해주지 않지만,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정서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게 본질인 것은 아닐까. 이것은 그들의 음악이 가진 특징과도 절묘히 맞닿아 있다. 뉴진스는 일반 대중에게는 보편적인 매력을 가진 아이돌이지만, 더 깊이 파고드는 이들에게는 해석의 여지가 다분한 아티스트로 변모한다. 물론 그 어느 쪽을 택하든 그것은 그대로 본질이 된다.

뉴진스 《Ditto》의 가사 일부가 실린 모션 포스터 ⓒADOR 제공

난해해진 K팝 속에서 돋보이는 세련된 심심함

K팝 신의 가장 유능한 아트 디렉터, 이제는 프로듀서이자 기획사의 대표로 포지션을 확대한 민희진이 꿈꾸는 아이돌 산업의 미래가 문득 궁금해진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는 오랜 K팝 팬들, 그리고 K팝에 무심하거나 친해지기 어려웠던 일반 대중이 갖고 있던 공통된 의문에 답을 내놓으려 한다는 점이다. “K팝다운 건 뭐지?” 혹은 “K팝은 왜 꼭 K팝다워야 하지?”와 같은 질문이 그것이다.

쉽지 않은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K팝이 걸어온 어제와 현재를 동시에 알아야 하고, 그 안에서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꿰뚫고 있어야 한다. 실용적인 질문이라기보다는 사변적인 질문에 가깝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잘나가고 있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K팝의 전형적인 미학만으로 세계를 휩쓰는 이 글로벌 K팝의 시대에 왜 우리는 그런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져야 할까.

조금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K팝이 전 세계적인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의도적으로 주류가 되기를 거부하는 2등 전략이 존재했다. 영미권의 주류 팝에 싫증을 느끼고 독특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의 취향을 저공비행하며 정밀 타격한 결과, 일종의 틈새시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전면전이 아닌 국지전 전술에 가깝지만 그것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K팝의 ‘퍼포먼스’는 그 자체로 예술 장르가 됐고, B급 감성으로 여겨졌던 음악적 장치나 미학적 요소들 역시 K팝만의 매력으로 납득시켰다. 그 와중에 K팝은 대중음악 역사상 그 어느 장르보다도 열성적인 마니아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대중의 보편적 취향을 자극했던 음악들은 다양한 콘셉트를 구현하는 무대 퍼포먼스의 매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간결함 대신 복잡함을 택하며 난해해졌다. 그룹의 차별화는 음악 자체보다는 ‘세계관’이라고 불리는 설정을 통해 꾀해지면서 일반 대중에게 일종의 진입장벽을 세웠다. ‘대중’ 음악의 가장 중요한 미덕을 희생함으로써 더욱 공고한 지지를 확보하며 산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어쨌든 흥미로운 일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만이 정도일까. 뉴진스를 통해 민희진이 던지고픈 질문은 아마도 이렇게 도발적인 것일 테다. 정교하지만 어렵지 않고, 복잡하지만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무엇보다도 누가 봐도 아름답고 신나는 음악과 영상으로 대중과 팬덤을 모두 잡을 수는 없는 걸까? 놀랍도록 세련된 심심함을 가진 뉴진스의 음악과 보편적인 감성의 서사를 담은 이들의 뮤직비디오는 그래서 일종의 대안적인 K팝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글로벌 시장의 반응이다. 뉴진스의 파격 아닌 파격에 글로벌 음악 팬덤 역시 비슷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저명한 음악평론가는 작년 음악계를 정리하면서 K팝 중 유일하게 뉴진스의 노래를 선정했으며, 오랫동안 이 산업을 취재해온 언론인들 역시 개별적인 평가를 떠나 기분 좋은 도발을 감행한 뉴진스의 ‘다름’에 이의를 표하지 않는다. 대중적인 성공과 평단의 관심을 끌어낸 뉴진스의 실험은 일단 성공한 듯 보인다. 안티-K팝 방법론을 앞세운 뉴진스의 행보가 과연 비틀어보기의 통쾌함에 그칠지, 아니면 K팝의 재영토화로까지 이어질지 아직 확신하기엔 이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산업에 더 이상 ‘새로움’이 어렵다고 느껴지던 바로 그 시점에 통찰과 감각의 차이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뉴진스를 통해 입증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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