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 판·검사, 공무원까지…김만배 ‘전방위’ 로비 정황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01.1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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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드러난 의혹 순차적으로 확인 방침
대장동 개발 사업 민간사업자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9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장동 개발 사업 민간사업자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가 9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장동 특혜 의혹 사건의 불씨가 언론계와 법조계로 번지면서 파장이 커지는 모양새다. 의혹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가 기자는 물론 판사들에까지 로비를 벌인 정황이 드러나면서 수사 범위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대장동 개발 사업을 통해 대장동 일당의 배당금 2000억여원이 논란에 휩싸일 경우 여론전에 필요한 전방위적 '방패'를 마련하려 했다는 시각이다.

김씨가 금전을 매개로 언론계에 광범위한 '인맥'을 구축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중앙 일간지 간부 등 전·현직 기자들이 언론사를 퇴직하고 화천대유 임직원으로 계약한 후 거액의 연봉을 받았거나 김씨와 수억원대 금전거래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한겨레신문이 의혹에 연루된 해당 기자를 해고하고 경영진도 모두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내놓는 등 파문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중앙 일간지에서 논설위원을 지낸 A씨는 연봉 1억2000만원에 화천대유 고문으로 계약했고, 2021년 6∼9월 총 3500여만원의 급여를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민영 뉴스통신사 부국장이었던 C씨 또한 연봉 3600만원에 고문 계약을 맺고 2021년 1∼8월 총 2400만원을 받았다. 경제 일간지 선임기자 출신인 B씨는 화천대유 홍보실장으로 재직하며 2019년 7월부터 27개월간 총 9000만원을 급여로 받았다. 경제 일간지에서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한 D씨는 2021년 8월부터 1년간 연봉 9600만원에 고문 계약을 맺었다가, 대장동 의혹이 불거진 2021년 9월 사직했다. 

검찰은 이들이 급여를 받은 기간에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고문 역할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1부(엄희준 부장검사)는 이들의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여부를 수사 중이다. 청탁금지법은 언론인이 직무 관련 여부나 명목과 상관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금품 수수자는 물론이고 제공자까지 처벌받는다.

김씨와 현직 기자간의 금전 거래 정황도 포착됐다. 한겨레신문 부국장을 지낸 E씨는 2019∼2020년 김씨에게 6억원을 받았다. 이에 더해 E씨의 3억 추가 수수설이 제기돼 검찰이 사실 확인 중이다. 또 한국일보 F기자는 2020년 김씨에게서 1억원을 빌렸고, 중앙일보 G기자는 2018년 김씨에게 8000만원을 건넨 뒤 2019년 9000만원을 받았다. 

검찰은 이들 간에 오간 금전 거래가 '언론계 로비' 목적이 아니었는지를 의심하면서 수사 범위를 넓히고 있다. 검찰은 지난 9일 김씨를 불러 이들에게 돈을 건넨 경위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김씨와 금전 거래를 한 이들은 차용증을 쓴 정상적인 거래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검찰은 해당 대여약정서 등이 허위로 작성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다. 민간사업자 정영학씨가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에는 "카톡으로 차용증을 받는다" "아파트를 분양받아준 적도 있다" 등 기자들과 돈 거래를 암시하는 표현들이 등장한다.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 ⓒ연합뉴스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 ⓒ연합뉴스

김씨의 청탁 대상에는 판·검사 등 법조인들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대장동 업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을 목적으로 수시로 고위 법조인들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씨가 현직 판사의 술값을 대신 낸 정황을 포착해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엄희준 부장검사)는 대장동 일당이 자주 어울리던 유흥주점 직원 H씨의 2017∼2021년 휴대전화 통화 목록에서 술값 대납 의혹을 받는 I변호사와 J판사의 번호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장동 사건이 개발 특혜 의혹을 넘어 김씨의 전방위적인 로비 의혹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검찰은 이런 의혹들이 수사의 본류는 아니지만, 제기된 의혹에 대해 하나하나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30년간 기자생활을 하면서 주로 검찰과 법원을 출입한 김씨는 스스로를 '로비스트'라고 칭하며 판·검사들을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대장동 사업 당시 언론사 2곳을 인수하려 한 정황까지 밝혀지면서, 사업에 언론의 영향력을 동원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깊어지고 있다. 또 김씨가 대장동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판·검사들과 골프를 치고 금품을 건넸다는 의혹, 성남시 주요 인사들에게 뇌물을 수수한 의혹까지 불거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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