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_창업] 고객 줄 서는 일본 골목상권의 비밀
  • 도쿄=김상훈 창업통TV 대표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1.22 08:05
  • 호수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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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불야성인 2023년 도쿄 골목상권 리포트
일본 자영업 시장의 성공 코드 눈여겨봐야

요즘 일본을 여행하는 한국인의 수요가 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일본 여행 규제가 풀렸기 때문이다. 엔화 가치 하락도 한국인들이 일본 여행을 선호하는 이유다. 일본 돈 1000엔은 한국 돈 9500원 수준까지 하락했다. 일본 물가가 한국 물가보다 저렴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3년 만에 찾은 도쿄 골목상권에는 여전히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 많았다. 특히 가격이 싸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생맥주 한 잔 190엔(1800원), 하이볼 한 잔 99엔(940원)을 써붙인 곳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가다랑어회 한 접시를 100엔(950원)짜리 시그니처 메뉴로 내세우면서 고객몰이를 하는 식당도 있었다.

요즘 일본 상권은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저렴한 동네로 인식되고 있다. 골목상권마다 줄을 서는 식당은 여전하다. 줄을 선다는 것은 외식 소비자 입장에서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음식점 주인 입장에서는 즐거운 일일 수 있다. 매장 앞에 줄 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이미 매장 안은 만석이라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테이블 회전율도 높다. 한국의 골목상권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일본 정부가 2022년 10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무비자 입국과 개인 자유여행을 허용하면서 골목상권 역시 살아나고 있다. 사진은 1월7일 도쿄 최고의 번화가 중 한 곳인 신주쿠 ⓒ김상훈 제공

한일 자영업 생태계는 ‘비교 불가’

일본 골목상권에 줄 서는 식당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맛집이 많기 때문일까. 일부 그런 요인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구조적인 측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일본 현지 골목상권을 돌아보면서 일본 자영업의 속내를 깊숙이 들여다봤다.

일본 총무성 통계국 2010년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음식점 수는 67만468개다. 일본의 자영업 수는 초고령화 영향 등으로 인해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10년이 지난 현재 일본 음식점 수는 65만 개 정도로 추산된다. 통상적으로 알려진 데이터의 경우 우리나라와 일본의 음식점 개수는 각각 70만 개로 동일하다. 우리나라 인구수는 5100만 명, 일본의 인구수는 1억2400만 명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73명당 1개 음식점이 영업 중이고, 일본은 177명당 1개 음식점이 영업 중이다.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음식점이 과포화 상태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미국이나 싱가포르, 유럽 등 다른 나라의 음식점 수는 일본의 음식점 수보다 훨씬 적다. 때문에 일본 자영업 시장에서는 음식점 인허가 규정 등 진입장벽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물며 일본보다 경쟁이 치열한 우리나라 현실을 돌이켜본다면 어떨까. 우리나라도 이제는 자영업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통계학적으로 보면 일본 골목상권에서 줄 서는 식당이 많은 것은 어쩌면 일본 외식 소비자의 볼륨이나 음식점 분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일본의 식당들은 일본 인구 수요층 대비 매장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때문에 줄을 서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라도 음식점을 찾는 일본 소비자가 많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다. 물론 양국 간 외식 소비 스타일이나 소비자들이 작은 가게를 선호하는 라이프스타일 성향 차는 존재한다.

일본 골목상권에서는 서서 먹는 음식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스탠딩 주점, 스탠딩 초밥집도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서서 먹는 주점, 서서 먹는 음식점은 낯설다. ‘얼마나 급하다고 술까지 서서 먹어야 할까?’라는 인식도 있다. 일본의 서서 먹는 초밥집이나 스탠딩 주점을 보면 가격은 앉아서 먹는 가게보다 훨씬 저렴하다. 주머니가 얇은 일본 소비자들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스탠딩 음식점을 찾는 근본적 이유이기도 하다.

1월8일 도쿄도 신주쿠구 와세다대 상권의 한 라멘집에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김상훈 제공

고객 사로잡는 신박한 마케팅 코드

고객을 유인하는 작은 가게들의 신박한 마케팅 코드는 주목할 여지가 많다. 미끼 상품을 매장 외부에 내세우는 가격 파괴 전략은 기본이다. 100엔 안주를 내세우는 가게를 가보면 뒤통수를 맞는 느낌도 있다. 맥주 한 잔 가격은 다른 집에 비해 비싸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고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푸짐함 코드’로 승부하는 식당도 많다. 세숫대야 같은 빅사이즈 그릇을 내세운 우동집, 탑을 쌓은 듯한 대형 회덮밥 가게도 있다. 우동의 양을 2배, 3배를 먹어도 가격만큼은 똑같이 판매하는 우동집, 라멘집도 있다. 하이볼 한 잔도 500엔을 내면 1리터 대형 잔에 하이볼을 주는 매장도 있고, 1인당 1만5000원만 내면 무제한으로 하이볼이나 맥주를 먹을 수 있는 음식점도 있다. 일본의 골목상권은 어쩌면 스몰 비즈니스 마케팅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골목상권에서 고전하는 소상공인 창업자 입장에서 보면 일본 골목상권을 면밀히 살펴야 하는 코드가 곳곳에 숨어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 프랜차이즈 시장은 어떨까. 2019년 기준으로 일본의 프랜차이즈 브랜드 수는 1300개에 불과하다. 직영점과 가맹점을 합한 매장 수는 26만2800개 수준이다. 일본 프랜차이즈 시장 규모는 26조 엔(약 250조원)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3년 1월 기준 공정위에 등록된 프랜차이즈 브랜드 수만 총 1만1998개에 달한다. 이 중 외식업 브랜드가 9567개(80%), 도소매 브랜드 603개(5%), 서비스업 브랜드 1825개(15%)다. 우리나라의 가맹점과 직영점 수는 합해서 29만 개에 달한다. 프랜차이즈 브랜드 수 측면에서는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무려 9배나 많은 셈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프랜차이즈 시장 규모는 120조원으로, 일본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매장 수를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3만 개 정도 많다. 인구수로 보면 일본 인구의 40%에 불과한 우리나라가 프랜차이즈 브랜드 수, 체인점 매장 수를 비교해 보면 압도적으로 많다. 일본 자영업 시장의 대형 점포들은 대부분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주도하고 있다. 반면 작은 가게, 10평 내외의 소형 매장 중에는 독립 매장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한국과 일본의 프랜차이즈 데이터만 비교하더라도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시장의 자정 노력, 전반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된다. 무작정 따라 하기 방식의 ‘미투 브랜드’ 난립도 문제다.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다. 브랜드만 믿고 투자한 자영업 창업자들의 수명만 단축시키는 역효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100엔짜리 안주로 고객을 유인하는 한 가다랑어 횟집 ⓒ김상훈 제공
99엔 하이볼 광고를 매장 입구에 내건 한 주점 모습 ⓒ김상훈 제공

신오쿠보 한인 상권이 북적이는 이유

일본 자영업 시장의 또 다른 속살을 살펴보면, 오래된 장수가게가 많다는 사실이다. 대를 이어 영업하는 작은 가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오래된 가게가 많다는 것은 자영업 종사자들의 초고령화와도 연동되는 문제다. 실제로 일본의 자영업 매장 수는 최근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고령화로 인해 문을 닫는 가게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중장년 창업자가 갈수록 늘고 있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그럼에도 일본 자영업 시장은 우리나라 자영업 시장보다는 분명 나은 점이 많다. 일본 대기업들은 어렵다고 토로하지만, 일본 소상공인 시장에서 어렵다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우리나라와는 정반대다. 식당의 수익성을 보더라도 매출이 100%면 식재료 원가는 30%, 인건비 25% 내외, 임대료 10% 수준이다. 순이익률은 20~30% 수준이다.

우리나라 음식점은 식재료 원가 40%, 임대료 10%, 인건비 25% 수준이다. 순이익률은 10~20%에 불과하다. 일본 자영업 시장은 우리나라 입장에서 눈여겨봐야 할 코드가 많은 곳이다. 도쿄의 신오쿠보 한인 상권에서는 한국 가게가 600개 넘게 영업 중이다. 하루에 10만 명, 연간 900만 명의 일본 신세대 수요층이 신오쿠보 한인 상권을 찾고 있다. 상권 선호도에서도 10대들의 천국이라 불렸던 하라주쿠를 앞서고 있다. 한국 자영업 시장 관점에서는 주목해야 할 대목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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