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탈원전’ 기조 버린 일본의 과제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1.29 10:05
  • 호수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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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포기 방침 철회
탈원전 정책 폐기한 윤석열 정부에도 시사점 던져

2022년 12월 일본 정부는 원자력발전을 향후 최대한 활용한다는 내용을 담은 ‘그린 트랜스포메이션 실현을 위한 기본 방침’을 확정했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자력발전소 신설 및 증설을 포기했던 방침을 10년 만에 철회한 것이다. 일본은 기존에 폐로하기로 결정했던 원자로를 보수해 다시 가동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후 원전 신설이나 개량형 원전 도입 등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현재까지 최장 60년으로 지정돼 있는 원자로의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운전 중단 및 정지 기간 역시 운전 기간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지난 10년 가까이 유지되던 일본의 ‘탈원전’ 기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EPA 연합
일본 정부가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고수하던 탈원전 정책을 철회하면서 배경이 주목되고 있다. 사진은 2022년 6월 후쿠시마 제1원전을 찾은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 ⓒEPA 연합

몇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된 日 ‘탈원전’

일본의 정책 변화는 급작스러워 보이지만, 몇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돼 왔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정부는 기존 원자로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 2013년 9월 후쿠이 원전 4호기 가동을 마지막으로 일본은 23개월 동안 ‘원전 제로’ 정책을 유지했다. 하지만 2015년 8월 센다이 원전 1호기를 재가동하면서 원자력발전을 다시 시작했다. 당시 아베 정부의 원전 재가동 결정은 원전 가동 중단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을 탈피하기 위함이었다. 원전 가동 중단으로 에너지 수입비용이 대폭 증가하면서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했는데, 이를 만회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일본 전력회사들 역시 원전 재가동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설파했다. 원전 가동 중단에 따라 장기적으로 전력요금 인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언론은 천연가스 가격 하락으로 전력회사들이 흑자로 전환한 점을 들면서 원전 재가동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런 반발 때문에 일본의 원전 재가동 정책은 매우 느리게 진행됐다. 2010년 일본의 전력생산에서 원자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4.8%였는데, 후쿠시마 사고 이후 1.5%로 감소했다. 이후 단계적으로 회복하고 있지만 2019년 6.4%에 머무르는 등 아직까지 사고 이전과 비교하면 한참 낮은 수준에 그치고 있다.

원전 복귀 필요성에 대해 일본 정부 역시 내심 불가피함을 인정했다. 하지만 일본 국민의 여론은 전적으로 정부 입장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2022년 3월 닛케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3%가 원자로 안전이 보장된다면 재가동을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재가동 찬성률이었지만 안전이 어느 수준인지, 무엇보다도 정부와 전력회사들의 공약과 약속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2022년 5월 홋카이도 지방법원은 홋카이도전력의 원자로 3기 재가동 시도에 대해 “계속 유휴 상태로 놓아두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원자로의 근본적인 폐기 및 해체를 요구하는 지역 주민 1000여 명의 소송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이었다. 원전 해체의 필요성은 없지만 안전성이 아직까지 확보되지 않았다는 것이 당시 법원의 판단으로, 2014년 후쿠이현과 이바라키현의 원자력발전 가동 중단 유지 판결 이후 법원의 세 번째 결정이었다.

2022년 중반 이후 이런 분위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2022년 6월 일본 도쿄 지역은 정전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름철 폭염에 따라 전력수요는 폭증했지만 전력공급은 이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가스 시장의 혼란과 가격 폭등이 큰 요인이었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자력발전 비중을 대폭 낮추고 가스화력발전으로 충당하고 있었는데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런 상황 변화를 이유로 본격적인 원자력발전 복귀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다만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전까지 54개 원자로에서 전체 전력의 약 3분의 1을 공급받고 있었다. 현재는 단 9개 원자로만 재가동되고 있기 때문에 완전한 재가동과 복귀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히타치·도시바 등의 원전 투자도 증가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단기적으로는 기존 원자로 추가 증설, 중장기적으로는 소형원자로(SMR) 및 업그레이드된 원자력 기술 개발과 실용화라는 투 트랙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GE와 일본 히타치 합작법인인 GE히타치는 영국 롤스로이스, 프랑스 EDF, 미국 뉴스케일파워(NuScale Power) 등과 함께 SMR을 개발 중이다. 미쓰비시중공업의 경우 SMR 실용화와 본격 가동은 2040년 전후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사이를 겨냥해 기존 원자로의 안전성을 높인 개량형인 SRZ-1200을 개발하고 있다.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이나 히타치, 도시바 등은 원자력에 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원자력에 대한 재평가는 이들 기업에 회생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10년 동안 일본의 원자력 관련 엔지니어링 및 제조업은 크게 위축됐다. 과거 원자력 산업의 주요 업체였던 가와사키중공업과 스미모토전기공업을 비롯한 20여 개 업체가 문을 닫거나 원자력 관련 사업 부문을 폐지한 상태다. 원자로 전면 가동 중단과 느린 단계적 복구로 인해 기존 원전에 대한 설비 교체, 수리 등의 작업 노하우도 사라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의욕적으로 원전 생태계 부활을 추진하고 있지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본 원자력 장비 공급 업체와 전문인력 등은 대폭적인 축소와 상실을 겪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일본전기공업협회는 원자력 장비 제조 담당 숙련 엔지니어가 45% 감소했으며, 대학 및 대학원의 원자력공학 전공자도 2011년 이후 14% 감소한 것으로 파악한다. 일본 전문가들은 원자력 연료봉의 피복재를 공급하던 지르코사의 부도로 인해 일본 내에서 더 이상 원전 연료봉 제조 생태계가 작동하지 않는 것을 전체 생태계 붕괴의 전조 현상으로 간주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최근 기존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의 역할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정책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는 점 역시 인식해야 한다.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적합한 대부분의 입지는 이미 활용되고 있고, 사용후 핵연료 처리시설 등 필수적인 시설 건설은 아직 논의조차 못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사고를 겪은 일본의 원자력 복귀 결정은 의지와 이상만으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고 없어진 것처럼 받아들여서도 곤란할 것이다. 안전과 적정한 비율 그리고 산업생태계 유지라는 상반되고 모순된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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