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되는 간암 환자, 늙었다고 치료 포기하면 안 돼 
  • 박효순 경향신문 의료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3 13:05
  • 호수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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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10명 중 4명이 65세 이상…고령 환자 수술 후 생존율은 비고령 환자와 차이 없어 

매년 2월2일은 간암의 날이다. 1년에 두 번, 2가지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아 간암을 초기에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자는 의미를 담았다. 2가지 검사는 간 초음파검사와 혈청알파태아단백검사(혈액검사)다.

간암은 전 세계적으로는 6번째, 국내에서는 7번째로 많이 발생하는 암이다. 지난해 말 발표된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20년 국내 간암 신규 환자는 1만5152명으로 하루 평균 41.5명의 간암 환자가 새롭게 발생했다. 전체 암 발생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6.1%로 높은 편이다. 인구 10만 명당 암 사망률은 폐암(36.8명)이 가장 높고 간암(20.0명), 대장암(17.5명), 위암(14.1명), 췌장암(13.5명) 순이었다. 하지만 간암은 한창 경제활동을 하는 40·50대 남성에서 암 사망률 1위를 차지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서울아산병원 제공

고령자 간암에도 다양한 치료법 가능 

간암은 간세포암, 담관암, 전이성 간암, 혈관육종 등이 있다. 보통 간암이라고 하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간세포암을 지칭한다. 흔히 간암의 원인으로 음주를 떠올리지만, 그보다는 B형이나 C형 바이러스성 간염 등에 의한 만성간염과 그 합병증인 간경변증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2022년에 나온 ‘간세포암종 진료 가이드라인’에서는 간암의 원인을 B형 간염, C형 간염, 알코올 순으로 꼽았다. 지방간이나 자가면역성 간염 등도 원인이 될 수 있다.

2월2일 간암학회는 “저출산과 고령 인구 비율이 18.4%에 이르는 고령화 사회가 본격화됨에 따라 간암 환자도 고령화되고 있는 시점”이라며 “안전하고 적절한 치료 적용에 대한 고민과 해법이 필요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간암학회 간암등록사업위원회의 ‘무작위 간암등록사업’ 자료 분석을 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새롭게 간암으로 진단받은 환자(1만5186명 대상) 중 65세 이상 고령 환자는 38.4%였다. 특히 최근 80세 이상 고령에서 간암 환자가 전보다 증가하는 추세다. 고령 간암 환자는 비고령에 비해 B형 간염 관련 간암이 차지하는 비율이 29.7% 대 68.1%로 낮았다. 하지만 C형 간염(18.1% 대 6.1%), 알코올 간질환(16.8% 대 7.9%) 및 기타 간질환(28.0% 대 10.0%)으로 인한 간암은 더 높았다.

그런데 고령 간암 환자는 비고령 환자에 비해 간암 진단 후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25.5% 대 16.9%). 특히 혈관 침범이나 간외 전이를 동반하는 진행성 간암의 경우 치료를 받지 않는 고령 환자가 40.2%였다(비고령 21.4%). 간암학회는 “고령 간암 환자에서 치료를 받지 않거나 덜 침습적인 치료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으나 최근 간암 환자의 기대 수명 증가로 이러한 치료 경향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적극적 간암 치료는 연령과 무관하게 생존율 향상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치료를 포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콩팥병 등 다수의 동반 질환을 가진 고령의 간암 환자에서도 근치적 치료법인 수술이나 고주파열치료술 후 생존율이 비고령 환자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조기 간암을 지난 병기에도 경동맥화학색전술이나 방사선치료, 면역항암제 치료 후 생존율에서 고령과 비고령 환자가 마찬가지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기존 치료법의 발전, 방사선색전술이나 면역항암제 등 새롭고 효과적이며 안전한 치료법 도입으로 고령의 간암 환자에게도 적극적인 치료가 적용되는 추세다. 윤상민 간암학회 홍보이사(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연령에 관계없이 각 환자의 위험도를 면밀히 평가해 적합한 치료를 시행할 경우 안전하고 효과적인 결과를 얻음으로써 예후를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간염-간경화-간암의 ‘고리’ 끊어야 

간암뿐 아니라 전 단계인 간경변(간경화), 간경변의 전 단계인 간섬유화 및 간염 등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고 예방 대책을 강화하는 것이 간암 정복의 관건이다. 특히 간경변증은 간암 발생에 큰 영향을 준다. 간암 환자의 80%에서 간경변증이 선행하고 간경변증을 앓는 경우 간암 발생률이 현저히 높아진다.

간경변증은 만성간염으로 오랜 기간 염증과 섬유화, 괴사, 재생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딱딱하게 굳는 현상을 말한다. 간암이 만성간염이나 간경변증 등이 있는 환자에게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은 만성간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만성간염이 생기면 효과적인 치료를 가급적 빨리 시도해 간경변증, 간암으로의 진행을 차단하는 것이다. B형 간염 예방접종이 필요하고, 만성 B형 간염과 C형 간염의 항바이러스 치료를 조기에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 간경변증 환자의 70~80%는 B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해, 10~15%는 C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며, 나머지는 알코올 과다섭취와 기타 질환에 의해 발생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C형 간염은 주사침 1회 사용, 부적절한 성접촉 피하기, 문신이나 피어싱하지 않기 등이 매우 중요하다. 여럿이 쓰는 손톱깎이나 면도기를 사용하는 것도 절대 피해야 한다. 현재 C형 간염에 대한 국가선별검사 도입 여론이 의료계에서 높고, 대한간학회 등 관련 학계에서도 적극적인 연구를 통해 선별검사에 대한 유용성을 입증하려 애쓰고 있다. 배시현 간학회 이사장(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은 “간경변(간경화)이나 간암 등 심각한 질환으로 진행할 수 있는 C형 간염을 조기에 발견하고 신속하게 치료까지 이뤄지려면 정책적인 차원에서 C형 간염 조기진단 사업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상습적인 음주나 과음 또한 간암의 주요 위험인자로 꼽힌다. 간암학회 등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매일 알코올 20g 이상(소주 2잔, 1잔 50mL, 20도 기준) 마실 경우 이보다 적게 마시거나 아예 금주를 하는 경우보다 간암 발생률이 1.3배, 간암 사망률은 1.2배 높게 나타났다. 간염환자뿐 아니라 가족력, 습관성 음주, 빈번한 과음·폭음, 심한 지방간, 비만, 당뇨(고혈당), 독한 약 복용 등 고위험군은 정기검진으로 간경화나 간암 여부를 체크해야 한다.

‘고위험군은 1년에 두 번 2가지 검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간암학회의 권고사항이다. 주요 고위험군은 국가의 지원으로 간초음파와 혈청태아단백검사, 이 2가지를 동시에 6개월마다 한 번씩 2회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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