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 의혹에서 사실로
  • 박선우 디지털팀 기자 (psw92@sisajournal.com)
  • 승인 2023.02.0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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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의혹 관련 사법부 첫 판단…法 “명백한 불법행위”
“원고 응우옌 티탄씨에게 3000만100원 배상”…원고 일부 승소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 응우옌 티탄 씨가 2019년 4월3일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를 방문해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 응우옌 티탄 씨가 2019년 4월3일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를 방문해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모습 ⓒ연합뉴스

1968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의혹과 관련해 대한민국 정부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 해야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그간 의혹 수준에 머물던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첫 사법부 판단이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68단독(박진수 부장판사)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 피해자 중 하나인 응우옌 티탄씨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3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했다. 정부가 응우옌씨에게 3000만100원을 배상하고 지연손해금까지 지급하라는 것이다.

응우옌씨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2월 한국군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소속 군인들이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퐁넛 마을에서 민간인 약 74명을 학살했다며 2020년 4월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후일 ‘퐁니·퐁넛 학살 의혹’으로 명명됐던 사건이다. 당시 8세에 불과했던 응우옌씨는 한국군에 의해 복부에 총상을 입고, 이모, 언니 등 가족들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재판의 주요 쟁점은 학살 당사자들의 한국군 소속 여부, 소멸시효 만료 여부 등 여럿이었다. 먼저 응우옌씨 측은 미군 측 감찰 보고서, 남베트남군 측의 관련 보고서, 베트남전 참전 한국군들의 진술 등으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의 실행이 입증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베트남전 참전 군인이나 목격자 등 또한 ‘한국 군인들이 민간인을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특히 당시 해병대원으로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류진성씨의 경우, 2021년 11월16일 재판에 나와 “다른 소대원들이 중대장에게 민간인들을 어떻게 할지 물어봤더니 중대장이 엄지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고 한다”고 진술했다. 그는 같은 해 7월7일 국회서 열린 관련 간담회에서도 “중대원으로부터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를 쏘니까 아기가 총알의 반동 때문에 날아가더라’는 말을 들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다. 

반면 우리 정부 측은 한국군으로 위장한 다른 세력에 의한 학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맞섰다. 학살 실행 인원들이 한국 군복을 입었고, 베트남어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군을 가해자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릴라전 양상을 띠었던 베트남전 특성상 정당 행위일 수 있다는 주장, 불법행위 시점이 이미 수십 년 경과해 민법상 소멸시효가 만료됐다는 주장도 함께였다.

재판부는 피해자 측 손을 들어줬다. 이날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에 따르면, 한국 군인들이 작전 수행중에 원고의 집에서 수류탄과 총으로 위협하며 밖으로 나오도록 명령한 후 총격을 가한 사실이 인정된다”면서 “명백한 불법 행위”라고 봤다.

민법상 소멸시효가 만료됐다는 정부 측 주장에 대해선 “원고(응우옌씨)에게 이 사건 소를 제기할 무렵까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유가 있었다”고 판시했다. 앞서 응우옌씨 측이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거나 채권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큰 경우 소멸시효를 주장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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