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팔 잃은 尹, 부메랑 걱정 野…‘이상민 탄핵’의 대차대조표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0 10:05
  • 호수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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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동훈-우상민’ 尹 국정의 한 축 무너져…경찰 장악력 흔들릴 가능성
180일 후 ‘헌재 청구서’ 나와…헌재 ‘기각’ 시 총선 앞두고 野 역풍 맞을 수도

늦게나마 실현된 정의일까. 거대 야당의 의회주의 훼손일까. 2월8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여야의 엇갈린 주장 속에 국회에서 가결됐다. 이태원 참사 발생 103일 만의 일이다. 이 장관 탄핵안이 국회에 올라오는 데까지 100일이라는 충돌과 숙고의 시간이 소요됐다. 그렇게 올라온 탄핵안을 처리해 이 장관의 직무를 정지시키기까진 사흘도 채 걸리지 않았다.

헌법재판소에 의해 이 장관의 최종 운명이 결정되는 데 앞으로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지 뾰족하게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이상민 탄핵’이라는 타임라인에서 지나온 시간 못지않게 앞으로 거쳐야 할 시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심판의 날이 미뤄져 내년 총선 국면과 맞닿게 되면서 정치권에 대한 심판도 함께 내려질 수 있다는 전망 또한 나온다.

ⓒ연합뉴스
2월8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의 표결 결과를 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각되면 이상민 면죄부 될까 우려”

결국 헌재의 결정에 따라 정부·여당과 야당이 받아볼 정치적 청구서 내용도 갈릴 것으로 보인다. 현행법상 헌재는 사건 심리를 180일 이내에 마치고 선고하게 돼 있다. 하지만 강제 규정이 아닌 만큼 충분히 이를 넘길 수 있으며, 실제 선례도 존재한다. 특히 헌재 재판관 9명 중 2명의 임기가 오는 3월과 4월 종료되기 때문에 이 자리를 온전히 채운 후 본격적으로 심리를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 헌정사 첫 국무위원 탄핵이라는 중대한 사안이니만큼 헌재 역시 최대한 9명 완전체에서 결론을 내리려 할 수 있다. 후임 재판관이 추천된 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최종 임명되는 과정까지 고려하면 늦어질 경우 올가을 이후가 디데이가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장 올여름만 지나도 정치권은 온통 내년 4월 총선 모드에 돌입하게 된다. 여야 모두 지금보다 더 헌재를 향한 촉각을 곤두세우게 될 것이다. 헌재의 결정에 대한 당장의 부담감은 아무래도 ‘행한’ 쪽, 즉 민주당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에서도 헌재의 결정에 대한 전망이 첨예하게 엇갈린다. 민주당이 정부·여당을 향해 날린 회심의 일격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 확률이 최소 절반인 것이다. 당장 국민의힘에선 헌재에서 탄핵이 기각될 경우 민주당이 정치적으로 책임을 질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탄핵 추진은 ‘정치적 계산기’를 내려놓고 내린 판단”이라고 강조한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원하는 일을 마땅히 한 것이란 입장이다. 하지만 당내에선 좀 더 정무적이고 현실적으로 판단해야 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당의 탄핵 추진 과정에서 신중론을 펼친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탄핵 기각 결정이 내려질 경우 나타날 부작용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우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물론 이 장관의 잘못은 많지만 탄핵안이 헌재에서 기각되면 한순간에 ‘이 장관은 잘못이 없다’는 평가를 받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윤 대통령이 이 장관을 해임하지 않았던 점이 정치적으로 정당화될 수도 있다”며 “결론이 이상하게 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즉 헌재의 결정으로 인해 참사에 대한 책임 규명의 동력이 한순간에 종식돼 버릴 수 있으며, 이후 참사는 더욱 답 없는 정쟁으로만 소모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총선에서도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따져 묻는 메시지의 힘이 반감될 수 있다.

민주당 안팎에선 참사 직후 이 장관에 대한 책임론이 가장 극에 달했을 때 탄핵을 밀어붙이지 못한 데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여전히 나온다. 계속 헌재의 탄핵 기각 가능성과 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다가 실기(失期)했다는 게 중론이다. 차라리 내년 총선 정국까지 ‘이상민 책임론’을 끌고 가 사법적 평가가 아닌 대국민 평가를 받게 해야 했다는 뒤늦은 아쉬움도 새어나온다. 그것이 절반의 위험 부담을 떠안고 사법부에 운명을 맡긴 지금보다 정치적으로 더 안전하고 효과도 컸을 거란 지적이다.

이 장관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 대통령실은 곧장 ‘의회주의 포기’이자 ‘의정사의 부끄러운 역사’라며 격앙된 입장을 내놓았다. 비록 야 3당 주도로 이뤄졌지만 75년 헌정사에서 처음 발생한 장관 탄핵은 윤석열 정부로서도 불명예일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경찰 원심력 커지고 경찰국 시비 재현될 수도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될 경우 그동안 여론의 부담을 무릅쓰고 이 장관을 비호해온 윤 대통령의 리더십에 타격이 가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 중간평가 성격이 짙은 내년 총선 정국에서 인용 결정이 내려진다면 그 여파는 배가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기각이 결정돼 이 장관이 직무에 복귀한다 하더라도 이 장관의 부처 장악력은 물론, 윤석열 정부의 명예 또한 탄핵 이전으로 온전히 회복될 순 없을 거란 분석도 있다.

국정에서도 실질적으로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당장 행안부 간부들 사이에선 새해를 맞아 계획했던 주요 정책과 사업의 추동력이 차관 대행 체제하에서 약화할 수밖에 없을 거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차관이 장관의 공백을 채우는 여느 대행 체제와 달리, 헌재 결정이 있기 전까지 새로운 장관을 임명하지 못하는 만큼 이러한 업무 공백은 장기화할 예정이다.

나아가 이 장관의 퇴장은 당초 좌동훈-우상민(左한동훈-右이상민) 두 실세 장관을 중심으로 꾸려진 윤석열 정부의 한 축이 무너졌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정부 집권 초부터 윤 대통령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주도로 검찰을 재편하고, 이상민 행안부 장관 주도로 경찰을 통제하는 ‘법치’의 완성을 공공연히 목표해 왔다. 행안부 내 경찰국은 그 일환으로 이 장관이 강행한 상징적 존재다. 하지만 이 장관이 탄핵 트랙에 올라타면서 그동안 경찰국과 관련해 불만을 쌓아온 일선 경찰들의 원심력이 크게 작동할 거란 관측이 제기된다. 경찰 조직 전체에 대한 행안부의 통제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은 물론, 경찰국 설치의 불법성 논란 또한 제대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부처 장악력을 지키고 대통령실과의 소통을 지속하기 위해 대통령실이 검찰 출신 ‘실세’ 행안부 차관을 새로 임명할 거란 이야기도 곧장 흘러나왔다. 하지만 검찰 출신 차관의 등장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경찰 조직의 반발만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러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대통령실은 차관 임명설에 대해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즉각 부인했다. 다만 탄핵 국면이 길어지고 그사이 경찰 내 모종의 움직임이 감지될 경우 대통령실의 결단이 이뤄질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관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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