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풍선 스티커가 화장실에 붙은 이유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3.03.06 12:05
  • 호수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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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 없는 혈뇨로 찾아오는 방광염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방광암 예방 위해서는 흡연·염색 등 피해야

서울 지하철 주요 역사 275곳에 있는 공중화장실 남자 소변기에 빨간 풍선 스티커가 붙었다. 이 스티커에 소변이 닿으면 빨간색이 사라진다. 풍선은 늘었다 줄었다 하는 방광을 의미하고, 빨간색은 방광암 증상인 혈뇨를 상징한다. 이는 대한비뇨기종양학회와 화장실문화시민연대가 국민의 방광암 인식 증진을 위해 마련한 ‘빨간 풍선 캠페인’이다. 표혜령 화장실문화시민연대 대표는 “실제 배뇨활동이 이루어지는 화장실에서 방광암의 주요 증상인 혈뇨를 확인하도록 하자는 대한비뇨기종양학회의 제안이 있었다. 빨간 풍선 캠페인이 깨끗한 화장실 문화를 위한 소변기 주변 악취 저감에도 일조할 수 있기에 협업하게 됐다. 빨간 풍선 캠페인이 화장실 이용자의 건강 증진에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방광암에 대한 국민 인식을 높이려는 이유는 최근 국내 방광암 발병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국내 방광암 진단 건수는 2010년 3545명에서 2019년 4895명으로 지난 10년 동안 약 38%, 15년 동안 54% 증가했다. 특히 여성보다 4배 이상 높은 발병률을 보이는 남성은 같은 기간 동안 인구 10만 명당 22.7명에서 34명으로 약 50% 증가했다. 방광암은 국내에서 발생하는 남성 암 가운데 10위의 발생 빈도를 보이며 비뇨기계 암 중에서는 발생 빈도가 가장 높다. 60·70대에서 주로 발생하고 남성이 여성보다 3~4배 정도 발병 위험도가 높다. 

하윤석 대한비뇨기종양학회 홍보간사(칠곡경북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고령 인구와 진단 건수가 늘어 방광암 발병이 늘었다. 그런데 방광의 상피내암(암세포가 주변으로의 침윤 없이 상피조직 내에서만 증식한 경우)은 암 통계로 잡히지 않는다. 상피내암은 악성도가 높으므로 이것까지 통계에 포함하면 실제 방광암 발병률은 지금의 2배가 된다. 특히 최근 3년간 의료 현장에서 방광암 환자가 부쩍 늘어났음을 느낀다. 방광암은 미국에서 이미 남성 암 5위가 됐는데, 국내도 7위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매년 건강검진으로 혈뇨 확인 필요

방광은 신장에서 만들어진 소변을 저장했다가 요도로 배출하는 기관이다. 이 방광에 비정상적인 조직 즉 악성 종양이 생기는 질환이 방광암이다. 방광암의 조기 증상은 통증 없는 혈뇨다. 방광암 환자의 약 85%는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혈뇨를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혈뇨는 항상 관찰되는 것이 아니다.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배뇨의 시작이나 끝에 약간 보이기도 한다. 심할 경우 응고된 혈액 덩어리도 나오지만 혈뇨 정도가 반드시 암의 정도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또 눈에 보이지 않는 혈뇨(현미경적 혈뇨)도 있다. 혈뇨 외에 빈뇨(자주 소변을 봄), 절박뇨(갑작스럽게 요의를 느낌), 배뇨 시 통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증상은 방광염·요로감염 등으로도 나타나므로 감별이 필요하다. 방광암이 진행된 경우에는 체중 감소, 골반 통증, 옆구리 통증 등이 발생한다.   

혈뇨라고 해서 무조건 방광암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혈뇨가 사라졌다고 해서 병이 없는 것도 아니다. 혈뇨는 비뇨기계 이상의 중요 신호이므로 한 번이라도 혈뇨가 보이면 비뇨의학과를 방문해 정확한 원인을 찾는 검사를 받는 것이 이롭다. 김선일 대한비뇨기종양학회장(아주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은 “국내에서 매년 방광암으로 새로 진단받는 환자 수가 꾸준히 증가해 지난 15년간 약 54% 증가했다. 방광암은 조기에 진단해 치료를 시작할 경우 생존율이 높지만 이미 진행된 후에 발견하면 생존율이 크게 낮아지기 때문에 통증 없는 혈뇨와 같이 방광암을 의심해볼 수 있는 증상이 나타나면 비뇨의학과 전문의와의 상담 및 진단을 통해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면 대부분은 깜짝 놀라 병원을 찾는다. 혈뇨를 보기 전에 방광암을 의심할 방법은 없을까. 하윤석 교수는 “혈뇨의 95%는 신장 기능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고, 5%는 결석·염증·방광암·신장암 등이 원인이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현미경적 혈뇨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50세 이후부터는 매년 건강검진에서 소변검사를 받고 여기에서 현미경적 혈뇨가 확인되면 반드시 비뇨의학과 전문의의 정밀 진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방광암 인식을 높이기 위한 빨간 풍선 캠페인, 서울 지하철역 화장실 소변기에 붙은 빨간 풍선 스티커 ⓒ 대한비뇨기종양학회·화장실문화시민연대 제공

혈뇨 때문에 병원에 가면 우선 소변검사를 받는다. 이를 통해 눈에 보이는 혈뇨뿐만 아니라 현미경적 혈뇨까지 확인할 수 있다. 만일 소변검사에서 암세포가 검출돼 방광암이 의심될 경우에는 방광경 검사가 필수다. 국소 마취 후 요도로 내시경을 넣어 요도나 방광에 종양이 있는지 의사가 눈으로 확인하는 검사다. 종양이 확인되면 조직검사를 진행한 후 방광암 유무를 확진한다. 방광암이 얼마나 진행됐는지는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암이 방광 벽을 뚫고 림프절 등 주변으로 퍼졌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전이 여부를 더 세밀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초음파검사,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뼈 스캔 등을 진행한다. 

치료는 방광암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암이 방광의 근육층을 침범했느냐에 따라 나뉘는데, 방광 점막이나 점막하층에 국한된 암을 비근침습 방광암(표재성)이라고 하며 전체 방광암의 70%를 차지한다. 점막하층을 지나 근육층까지 뿌리를 내린 암은 근침습 방광암(침윤성)이며 전체 방광암의 20%에 해당한다. 나머지 10%는 방광 상피내암이다. 방광 상피내암은 점막을 따라 평평하게 존재하다가 침윤성 방광암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아예 방광을 벗어나 다른 장기로 퍼진 전이성 방광암이다. 방광암을 진단할 때 상당수는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전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근침습 방광암은 주로 방광 내시경(방광경)으로 치료한다. 방광경을 요도로 넣어 방광 내부를 눈으로 보면서 암과 주변을 긁어내듯이 종양을 제거하는 방광종양절제술이다. 이후 몇 주 동안 방관 내부에 항암제나 BCG(생결핵균)를 주입해 암의 재발이나 진행을 억제한다. 방광을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비근침습 방광암은 재발이나 전이가 잦다. 그래서 비근침습 방광암이라도 세포 검사 등을 통해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면 방광을 제거하기도 한다. 

근침습 방광암에는 방광뿐만 아니라 주변 림프절과 요도를 제거하는 시술(근치방광절제술)이 표준 치료법이다. 소변을 저장하는 방광이 없어지므로 소변주머니를 배 주변 피부에 부착하거나 인공 방광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불편함 때문에 항암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로 암을 제거하고 방광을 보존하는 시도가 있다. 그러나 방광을 절제하는 것보다 생존율이 낮다는 단점이 있다. 

ⓒ일러스트 정현철
ⓒ일러스트 정현철

대사증후군·당뇨병·고혈압 등도 위험도 높여

나이는 방광암의 위험인자다. 방광암의 90%는 55세 이상이다. 또 가족력도 방광암 위험인자지만 유전 때문인지 환경 탓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방광암을 예방하기 위해 나이를 되돌릴 수 없고 가족력을 제거할 수도 없다. 일반인이 방광암 예방을 위해 할 일은 피할 수 있는 위험인자를 회피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흡연과 화학물질이다.

흡연은 방광암 위험인자로 알려졌다. 방광암 환자의 25~60%는 흡연자다. 비흡연자의 방광암 위험도를 1로 볼 때 20갑년(하루 1갑씩 20년 흡연) 흡연자는 1.62이고 특히 여성 흡연은 1.98이다. 흡연을 시작한 나이가 어릴수록 방광암 위험성은 높아진다. 흡연이 왜 방광암을 유발하는지 그 원인은 명확하지 않으나 담배 연기의 화합물에 의한 것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방광암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서는 금연이 필요하다.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직업군에서 방광암 환자가 많이 발생한다. 방광암 환자의 20~25%는 주유소나 가죽공장 등에서 석유제품이나 화학물질의 유해 성분에 노출된 사람이다. 이 외에도 고무, 가죽, 페인트, 인쇄 재료 등이 방광암 위험인지로 알려졌다. 일반인이 머리를 염색할 때 사용하는 염색약의 착색제 성분도 방광암을 일으킨다. 15~20년 동안 머리를 염색한 사람은 염색하지 않은 사람보다 방광암 위험이 1.6배 높다. 염색 횟수를 줄일수록 특정 성분에 대한 노출 빈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방광암 발병 위험은 작아진다. 

또 대사증후군, 당뇨병,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복부비만 환자는 일반인보다 방광암 위험이 약 1.2배 높다. 대사증후군은 복부비만, 고(高)중성지방, 저(低)고밀도지단백(HDL) 콜레스테롤, 고혈압, 고혈당 가운데 3가지에 해당하는 경우다. 자궁경부암이나 전립선암 치료를 위해 골반 부위에 방사선을 쬔 사람의 방광암 발병 위험도 일반인보다 2~4배 높다. 그 외에 방광결석이 있는 만성 방광염과 기생충(주혈흡충) 감염 등도 방광암 발생 인자로 알려졌다. 하윤석 교수는 “방광암 예방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금연이다. 그다음은 염색약과 농약 등 화학물질을 피하는 일이다. 방광암 환자에게는 염색하지 말라고 권한다. 방광암이 농촌에서도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농약이나 화학제품을 접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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