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과 다르다? 첫 스텝부터 꼬인 김기현의 ‘서진 전략’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3.03.2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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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號, 전주서 첫 현장 최고위…5·18 광주 ‘의원 총동원’ 검토
‘수습 전략’ 그칠 가능성도…신인규 “김재원 망언부터 처분해야”

“보여주기 아닌 진정성으로 동서통합 실천하겠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2월16일 국민의힘 전당대회 호남연설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실제 김 대표는 행동에 나섰다. 김기현 지도부가 첫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전북 전주에서 열기로 결정하면서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는 의원 전원이 광주 기념식에 참석하는 안도 검토 중이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선 김 대표의 호남행(行)이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일 정상회담과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의 ‘5·18 발언 논란’ 이후 호남 민심이 차게 식은 탓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이준석 전 대표가 공을 들였던 ‘서진(西進) 전략’에 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연합뉴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연합뉴스

‘강한 서진 전략’ 외쳤던 이준석號

김예령 국민의힘 대변인은 22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23일 오전 전주에서 최고위 회의를 연 뒤 국회 본회의 일정을 위해 바로 상경할 예정”이라며 “김 대표가 전당대회부터 민생을 강조해온 만큼 각 지역의 고충도 들으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전주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때부터 공을 들이기 시작했는데 중간에 멈춘 느낌이 있었다”며 “다시 공을 들이는 차원에서 첫 방문지를 전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이번 행보는 오는 4·5 국회의원(전주을) 재보궐 선거를 지원하는 취지도 있다. 전주을 지역구는 이상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재선거를 치르게 된 만큼 민주당은 후보 공천을 하지 않았다. 김 대변인은 “그런 목적(재보궐 선거 지원)만으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전주 시민들과 국민들이 그런 분위기를 느끼신다면 자연스럽게 표심에 반영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여권에선 이러한 행보들이 ‘서진 전략’의 일환이란 주장도 나온다. 비윤(비윤석열)계 국민의힘 초선 의원실 관계자는 “김 대표가 전당대회 호남 연설회에서도 ‘동서통합’을 강조한 만큼 이준석 체제의 서진 정책을 오마주(인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추측했다. 김예령 대변인은 “꼭 서진정책이란 용어를 쓰진 않더라도 위축된 민생과 경제를 챙기는 순수한 차원”이라며 “호남에선 여전히 당에 부정적인 견해들도 있고 저희가 못한 부분도 있어 믿음을 드리려는 취지”라고 전했다.

앞서 이준석 전 대표는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서진 정책을 펼친 바 있다. 이 전 대표는 행사가 없는 날에도 호남을 수시로 찾았다. 또 이른바 ‘광주 복합쇼핑몰’ 건립을 화두로 올리는 등 민주당보다 호남 관련 이슈를 먼저 발굴했다. 그 결과는 수치로 나타났다. 지난해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호남에서 12.8%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얻은 득표율(10.3%)을 뛰어넘었다.

이어진 지방선거에서도 국민의힘은 총 7명의 호남 광역·기초비례의원을 냈다. 특히 호남에 출마한 광역단체장 후보들은 모두 15% 이상의 지지율을 얻은 것은 물론, 27년 만에 광주에서 당선자가 나오는 이변도 연출했다. 당시 이 전 대표도 이러한 결과들에 자신감을 가지고 “지금까지의 서진 전략보다 강한 수준의 서진 전략이 곧 있을 것”이라며 “전주을 보궐선거는 물론 총선에서도 국민의힘 의원을 내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7월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로운미래 혁신24' 주최 권영세 통일부 장관 초청 세미나를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7월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로운미래 혁신24' 주최 권영세 통일부 장관 초청 세미나를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김재원 망언’-‘한·일정상회담’에 호남 민심 추락

그러나 이 전 대표가 쌓아놓은 ‘호남 민심’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김기현 지도부가 출범하자마자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의 ‘5·18 망언’ 논란이 일면서다. 김 최고위원은 전광훈 목사의 예배에 참석해 “표 얻으려고 하면 조상묘도 파는 게 정치인”이라며 5·18 정신을 헌법에 수록할 수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해당 논란은 김 최고위원의 사과에도 일파만파 커졌다.

여기에 윤석열 정부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안’ 해법은 물론 ‘굴욕외교’ 지적까지 받은 한·일 정상회담으로 인해 여당을 향한 민심은 추락했다. 리얼미터가 미디어트리뷴 의뢰로 13~17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0일 발표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37.0%를 기록해 전주보다 4.5%포인트나 하락했다. 특히 호남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18.4%까지 추락했다.

정치권에선 국민의힘의 전주을 재보궐 선거 판세도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이번 재보궐 선거가 호남 민심을 가늠할 바로미터 역할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민주당 후보가 나오지 않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국민의힘 후보의 득표율이 15%조차 넘기지 못한다면 이준석 체제 이후 공들여온 서진 전략이 물거품이 됐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

또 당내에선 과거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시절 ‘5·18 물폭탄 사태’를 재현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앞서 황교안 전 대표는 2019년 5·18 기념일에 광주 현장을 방문했다가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거센 항의와 물 폭탄 세례를 맞은 바 있다. 친윤계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호남 여론이 떨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며 “작년과 달리 현장 분위기가 좋지 않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선 김기현호 지도부의 호남 공략이 ‘수습형 서진 정책’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신인규 국민의힘바로세우기(국바세) 대표는 “이 전 대표의 정책과 결이 맞아 보이는 정책을 통해 호남의 소구력을 되찾으려는 의도로 보인다”면서도 “‘이준석 따라 하기’ 방식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라고 혹평했다.

신 대표는 “5·18 기념일에 의원 전원이 참석하고 최고위원회의를 전주에서 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막말을 한 김 최고위원부터 윤리위원회를 열어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상처받은 호남인들을 먼저 어루만진 후 이런 행보를 해야 진정성을 인정 받는다”며 “그러지 않으면 오히려 이율배반적이란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기사에 인용된 리얼미터 조사의 응답률은 3.2%,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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