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그머니 부활시킨 용산 ‘감찰팀’…사정 정국 칼바람 예고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03.31 15:05
  • 호수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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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총리실, 잇단 감찰팀 신설…“사정 컨트롤타워 폐지” 尹 공약 사실상 번복
반대 세력 타깃 삼은 감찰 의혹…공직 비리 첩보, ‘5월 개각설’에 영향 미칠 듯

민정수석이 원래는 청와대부터 단속해야 하는데 본연의 기능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사정기관을 관장하는 조직은 대통령실에 두지 않겠습니다.”(윤석열 대선후보, 20211228BJC 초청 토론회)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 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습니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2022314)

대통령비서실에서는 정책 위주로 해야지 어떤 사람에 대한 비위나 정보를 캐는 것은 안 하는 게 맞습니다. 그래서 민정수석실을 없앤 겁니다. 사정 컨트롤타워나 옛날 특감반(특별감찰반) 이런 거 있죠? 사정은 사정기관이 알아서 하는 거고, 대통령비서실이 사정의 컨트롤타워 역할 안 하고 공직 후보자에 대한 비위나 비위 의혹에 관한 정보 수집도 안 합니다.”(윤석열 대통령, 2022527일 출근길 도어스테핑)

대통령실의 사정 컨트롤타워기능을 없애겠다던 현 정부의 약속이 깨지고 있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사정기관을 관장하는 기구를 대통령실에 뒀을 때 생겨났던 부작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에서였다. 실제로 현 정부는 박정희 정부 때부터 이어져온 민정수석비서관을 54년 만에 폐지하고 민정수석실 기능도 대폭 축소했다. 과거 민정수석실은 산하에 민정·공직기강·법무·반부패 등 4개 비서관실을 뒀으며 검찰·경찰·국정원·국세청·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총괄하고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 공직기강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를 담당했다. 현 정부 들어서는 공직자 감찰 기능은 없앴고, 인사 검증 기능은 법무부와 경찰 등으로 이관했다. 청와대 내부 기강만을 담당하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대통령이 법률 자문을 구하는 법률비서관만 남겼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8월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대통령에게 듣는다’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8월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대통령에게 듣는다’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경찰·국세청 등 핵심 인재들 모여들어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불과 7개월 만인 지난 1월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 산하에 검찰과 경찰, 국세청 파견직들로 구성된 감찰조사팀을 신설하면서 과거 민정수석실의 공직감찰반을 사실상 부활시킨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같은 시기 이와 별개로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에도 감찰팀이 신설되면서 사정·정보 수집 기능을 한층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더해 현 정부에서 윤 대통령의 공언과 달리 정치적 반대세력을 타깃삼은 감찰이 이뤄지고 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해 보면, 현 정부에 공직 감찰을 위한 검찰 등 사정기관의 핵심 인재들이 모여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직기강비서관실 산하에 신설된 감찰조사팀에는 올해 들어 검찰과 경찰, 국세청에서 10여 명의 직원을 파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 공직자의 비리 정보를 수집하고 혐의가 짙으면 수사기관으로 넘겼던 과거 공직감찰반과 인적 구성이 닮았다. 검찰수사관 출신인 A행정관이 새 감찰팀 팀장을 맡은 것으로 전해졌다. A 행정관은 검찰청 근무 시절 국정농단 특검과 대기업이 얽힌 굵직한 특수수사를 두루 거치면서 윤 대통령,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오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 취임 후 공수처에 사표를 내고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실에 합류했다가 이번에 감찰조사팀으로 옮긴 것으로 전해진다.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도 새 감찰팀을 꾸리기 위해 올 초 8명 내외의 직원을 늘렸다. 기존에 운영되던 5개 감찰팀에 더해 검찰·경찰·국세청 등에서 파견받은 직원들로 6번째 팀을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실 관계자는 인력 보강 차원에서 8명 내외 인원을 늘렸다면서 모두 다른 부처에서 파견된 직원들이며, 어느 부처에서 누가 파견됐는지는 업무 수행에 차질을 빚을 수 있어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법무부에서 국무조정실로 파견된 검찰공무원이 해당 팀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와 관련해 총리실과 법무부 측은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팀은 13급 이상 고위 공직자의 비위를 중심으로 감찰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5월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5월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모습 ⓒ연합뉴스

기획사정에 대한 필요성 검토됐을 가능성

공직감찰반과 유사한 감찰팀들은 왜 7개월 만에 부활한 것일까. 사정 기능은 사정기관에 맡기겠다고 했던 윤 대통령이 사실상 공약을 번복한 셈이다. ‘여소야대국면에 원인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국정철학이 다른 인사들이) 공공기관 곳곳에서 버티고 있으니 감찰해야 될 기관이나 부처가 너무 많을 것이라며 민정수석실의 가장 큰 폐해는 전략과 기획을 세워 사정을 주도하는 기획사정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수사도 하고 감찰도 나름 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뤄지는 게 없으니 효율적인 기획사정에 대한 필요성이 내부적으로 검토되지 않았겠나라고 진단했다.

엄 소장은 그러면서 용산 대통령실이 공직기강 컨트롤타워의 무력화로 공직기강에 대한 효과적인 관리가 안 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면서, 사실상 보완 수순을 밟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고 짚었다. 이어 감사원·검찰 등 현 제도를 잘 활용하면 충분히 효과를 거둘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감찰팀을 부활시키는지 모르겠다“‘검찰정부 성격을 갖고 있는 현정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더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통령의 눈과 귀로 불린 민정수석실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는 평가도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지낸 윤영찬 민주당 의원은 민정수석실은 사정과 공직기강 기능도 있지만 여론을 듣고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역할까지 하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데 이를 포기하고 없앤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감찰팀을 만든 것은 공직기강의 역할을 어떻게든 부활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민정수석실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한 야권 관계자는 “(민심을 파악하고 보고하는) 민정수석실 부활까지는 아니고, 아무 계획이나 대안 없이 일단 없애 놓고 보니 공직기강 기능이 필요해 어쩔 수 없이 하나씩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감찰조사팀과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 감찰팀 간 역할 분담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연초 한덕수 국무총리는 새 감찰팀을 신설한 것과 관련해 “(대통령실은) 민정수석실 폐지에 따라 양적으로 줄어든 기능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우리(총리실)는 하고 있던 일을 보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총리실이 비리 정보를 수집하고 대통령실이 조사를 맡느냐는 질의에는 대통령실과 총리실 사이에 업무 분장을 하는 건 전혀 없다. 우리는 우리 일을 하는 것이고, 용산은 용산 일을 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유시춘 EBS 이사장·한상혁 방통위원장 등 감찰

총리실 감찰팀이 중요 사안에 대해 대통령실에 직보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 정부 들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유시춘 EBS 이사장에 대한 감찰이 진행됐는데, 대통령실 감찰조사팀과 총리실 감찰팀이 모두 동원됐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유 이사장 선임 절차와 과정이 적절했는지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 실무진에 대한 대통령실과 총리실 감찰팀의 조사가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20189EBS 이사장에 임명된 유 이사장은 2021년 한 차례 연임됐으며 임기는 내년까지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은 유 이사장이 2017년 정치·문화계 원로 4인방으로 이뤄진 문재인 캠프 내 꽃보다 할배 유세단에서 활동한 이력을 갖고도 이사장으로 선임됐다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했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다.

유 이사장은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친누나다. 이 때문에 감찰팀이 현직 공무원들을 감찰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데, 정치적 반대세력을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운영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본연의 목적을 벗어난 감찰을 경계하던 윤 대통령의 공언과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전형적인 찍어내기 아니겠냐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방통위는 지난해 6월부터 감사원의 감찰을 받아왔는데, 총리실과 대통령실까지 감찰 주체로 나서면서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한상혁 방통위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통령실 측은 공직기강비서실의 감찰 대상에 대통령실이 아닌 외부 기관도 포함되느냐는 질의에 공직자에 대한, 여러 공직자의 근무태도나 그리고 공직자로서의 적합한 행동 방식에 대한 그 모든 사안을 바라볼 수 있다고 답했다.

산발적으로 배치된 감찰팀들의 모호한 운영 시스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윤영찬 의원은 대통령실 산하에 민정수석실을 두고 민정수석이 공직기강에 대한 총괄을 하도록 해놓은 것은 투명한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감시받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불투명하게 팀들을 만들고 운영하다 보면 반드시 정치적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329일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의 전격 사퇴 등 최근 대통령실 외교안보 분야 비서관들의 퇴진이 잇따르면서 여권 주변에서는 개각설과 참모 교체설이 다시 불거지는 등 조만간 대규모 인사가 뒤따를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그 시기를 놓고도 윤 대통령이 미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취임 1주년이 되는 5월경이 될 것이란 얘기가 많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첫 번째 개각이 단행되는 만큼 대통령실의 감찰조사팀과 총리실의 감찰팀이 수집한 첩보들이 이 인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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