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지자 전기·가스요금 인상 행보…한전·가스공사는 벙어리 냉가슴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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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의견 모았던 당정…돌연 여당의 입장 선회
인상 없인 내년 채무불이행 우려 직면한 상황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 요금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 요금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분기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잠정 보류됐다. 정부는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여당은 인상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추후 결정하겠다며 불확실성만 키웠다. 당정의 갈지자 행보에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재무 상황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전채를 발행해 전력구입대금을 조달하고 있는 한전은 현 상황이 유지될 경우 내년 사채발행한도가 초과될 전망이다. 가스공사는 올해 연료비 미수금이 13조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공공요금 인상 여부를 놓고 정책 난맥상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불과 지난달 29일까지만 해도 정부와 국민의힘은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가스·전기요금 인상 계획 재검토 요구에 대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달 28일 “국회 제1야당이 전기요금 인상의 근본 원인을 제공한 데 대해 사과하고 해결책 마련에 협조하기는커녕 서민들의 고통마저 무책임한 포퓰리즘 선동 소재로 삼고 정부를 공격하고 정부에 부담을 떠넘기는 데 노력하고 있다”며 일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틀 만에 여당이 입장을 뒤집었다. 지난 31일 당정협의회 이후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전기와 가스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재확인했다”면서도 “다만 인상 시기와 폭에 대해서는 산업부가 제시한 복수의 안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에 대해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제 에너지가격 추이, 물가 영향 등을 검토해 인상안을 발표하겠다는 계획이다. 동결이 아닌 ‘연기’를 선택한 배경에는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 하락세를 고려한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정부 내에서도 혼선을 빚는 모습이다. 3일 이창양 장관 주재로 열리기로 했던 ‘에너지요금 관련 에너지위원회 민간위원 간담회’가 취소된 것이다. 앞서 지난 2일 산업부는 박일준 2차관 주재로 정승일 한전 사장과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요금조정 지연 결정으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점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회의 역시 시작 1시간 전에 돌연 취소됐다. 산업부는 입장문을 통해 “공기업 재무상황 재점검과 국제연료비 변동 추이 및 공기업 자구 노력에 대한 종합적인 점검 등에 시간이 걸려 불가피하게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요금 인상 보류로 인한 에너지 공기업의 재무 상황이 점점 악화될 전망이라는 점이다.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올 1월 한전은 전력을 1킬로와트시(㎾h)당 164.2원에 구매해 147.0원에 판매하면서 17.2원씩 적자를 냈다. 여기에 임직원 급여나 송·배전 등 운영비를 고려하면 전기요금을 통한 원가회수율은 약 70%에 불과하다. 원가만으로도 30% 가량 밑지며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시내 전력 계량기 ⓒ연합뉴스
서울 시내 전력 계량기 ⓒ연합뉴스

원가회수율 60~70%…빚 내는 것도 한계에 봉착

한전은 이를 충당하기 위해 매달 4회 한전채를 발행해 발전사에 전력구입대금을 지급하고 있다. 빚을 지며 전기를 사오고 있는 것이다. 적자가 계속되면 한전채 발행금리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재무 상황이 좋지 않은 회사의 사채를 발행하려면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해서다. 문제는 한전채가 사실상 ‘국채’로 여겨지기에 지난해 연말처럼 자금의 블랙홀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요금 인상 없이 현 상황이 유지될 경우 올해 5조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하는데 내년에는 한전의 법정 사채발행한도가 초과된다는 점이다. 한전은 사채발행이 차질을 빚을 경우 전력구매대금 지급 차질, 기자재 및 공사대금 지급 곤란으로 한전의 재무위기가 발전사 등 전력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스공사의 상황도 악화일로다. 지난해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8조6000억원이었다. 지난해 해외에서 수입하는 가스값은 급등했지만, 가스 공급가는 올리지 못하면서 대규모 미수금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미수금은 천연가스 수입 대금 중 판매 요금으로 회수되지 않은 금액으로 사실상 손실이지만, 가스공사의 독특한 회계 규정 때문에 손실로 반영하지 않고 자산으로 잡는다.

현재 가스요금을 통한 원가회수율은 62.4%다. 1분기 동결을 단행한 가스요금의 인상이 없다면 올해 말 미수금은 13조원에 달할 것으로 가스공사는 보고 있다. 가스공사는 이 경우 미수금에 대한 연간 이자비용만 약 4700억원(하루 13억원)이 발생해 추가적인 재무부담 및 요금인상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전과 가스공사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자구책을 먼저 강구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라고 강조한 데 따라 인건비 조정, 자산 매각 등의 조치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요금 인상이라는 실질적인 해결방안이 없이 적자폭을 줄일 방도가 없는 터라 여당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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