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기소된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몰고온 2024 대선 후폭풍
  • 김현 뉴스1 워싱턴 특파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8 10:05
  • 호수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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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택연설’로 사법 당국 때려…공화당 지지층 트럼프로 결집 가능성 

미국 뉴욕주 맨해튼 지방검찰이 역대 전·현직 대통령 중 최초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형사 기소하면서 미 정치권에 엄청난 후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맨해튼 지검은 4월4일(현지시간) 공개한 공소장에서 ‘성추문 입막음 의혹’과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을 34건의 혐의로 기소했다. 

‘최초로 형사 기소된 역대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쓴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같은 날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열린 기소인부 절차에 출석해 34건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후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로 돌아가 기자회견을 열고 “급진좌파 검사의 선거 개입”이라고 주장하며 정면 돌파에 나섰다. 2024년 대선을 앞두고 이번 기소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맨해튼 지검은 공소장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성추문을 폭로하겠다고 한 성인배우 출신 스토미 대니얼스와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모델 캐런 맥두걸, 트럼프타워 도어맨(관리인) 등 3명에게 ‘입막음 돈(hush money)’을 지급한 후 기업문서를 조작한 혐의가 있다고 적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2016년 대선을 앞두고 2006년 성관계를 폭로하겠다고 한 대니얼스에게 13만 달러를, 2006~07년 4차례의 성관계를 한 것으로 알려진 맥두걸에게 15만 달러,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혼외자가 있다고 주장한 도어맨에게 3만 달러를 각각 주고 이를 감추기 위해 장부를 조작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뉴욕주 법률에 따르면 통상 기업문서 조작 행위 자체는 경범죄지만 다른 범죄를 저지르거나 이를 방조·은폐하려는 의도가 있을 경우엔 중범죄로 처벌된다. 해당 범죄는 건별로 최대 4년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기소를 이끈 앨빈 브래그 맨해튼 지방검찰청장은 성명에서 “불리한 정보와 불법행위를 유권자들에게 숨기기 위해 기업정보를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4월1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 인근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미국을 다시 고치자’라고 쓴 깃발을 흔들고 있다. ⓒAFP 연합
4월1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 인근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미국을 다시 고치자’라고 쓴 깃발을 흔들고 있다. ⓒAFP 연합

‘사법 리스크를 정치공세로’ 프레임 전환

트럼프 전 대통령과 변호인단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붉은 넥타이를 매고 기소인부 절차에 참석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거의 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1시간여 만에 기소인부 절차를 마치고 자택으로 복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이 같은 일이 미국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도 못 했다”면서 “미국에서 전에 보지 못했던 수준의 대규모 선거 개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에 대한 사법 리스크를 민주당의 정치공세로 몰며 프레임을 전환한 것이다. 

그는 “민주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에 대한 사기 같은 조사로 나를 공격했으며 첫 번째 탄핵 사기에 이어 두 번째 탄핵 사기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기밀문서 유출 의혹과 관련한 미 연방수사국(FBI)의 압수수색에 대해선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습격도 여기에서 있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기소한 브래그 지검장과 이번 사건을 담당하는 후안 머천 판사를 각각 “급진좌파 검사” “트럼프를 혐오하는 판사”라고 공격하면서 수사 당국과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깎아내리는 데 주력했다. 

외신에 따르면 머천 판사는 오는 12월 다시 검찰과 변호팀의 의견을 듣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재판은 내년 이후로 잡힐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재판 개시 시점을 내년 1월로 잡아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내년 봄 이후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ABC방송은 내년 1월엔 “(각 정당의) 첫 번째 대통령 후보 경선이 시작될 것”이라고 지적했고, 내년 봄 이후는 “경선이 끝나고 (대선후보 확정을 위한) 공화당 전당대회를 앞두는 시점”이라고 밝혔다.    

미 언론들은 이번 기소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범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브래그 지검장이 기업문서 조작과 관련한 추가 범죄로 연방 및 주 선거법 위반 혐의를 지적하고 있지만,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론자들 사이에서도 주장을 중단한 전제를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여성들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이 (선거법 위반과 관련한) 선거 비용인지 사적 비용인지 모호할 수 있고, 주 검사가 연방법 위반 범죄를 기소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치 전문매체인 더힐도 “스모킹건도 없었고, 극적인 새로운 디테일도 없었다”고 평했다. 

다만 미 언론과 정치권은 이번 기소가 향후 대선에 미칠 파장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우선 트럼프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법 리스크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현재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사건 외에도 2020년 11월 조지아주의 대선 결과 조작을 지시한 혐의, 2021년 1·6 미 의사당 폭동 사태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각각 수사를 받고 있다. 

만약 이들 사건에서도 기소된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차기 대선을 앞두고 피고인으로서 여러 건의 재판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이런 상황이 현실화된다면 공화당 내에선 ‘트럼프 대항마’이자 정치적·법적 리스크가 없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향한 대안론이 커질 수 있다.  

 

‘트럼프 대 反트럼프’ 구도 굳어지나

중범죄 처벌 여부를 떠나 전직 대통령이 형사 기소돼 법정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노출시켜 대선후보 이미지에 손상을 준 것은 물론 성추문과 관련됐다는 점은 특히 여성 유권자들의 표심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0년 대선 패배엔 여성의 부정적 표심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당시 폭스뉴스 등의 유권자 분석에 따르면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전체 여성 득표에서 12%포인트를, 교외 여성들에게선 19%포인트를 각각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앞선 것으로 분석됐다.     

이와 달리 공화당 경선에선 이번 기소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쏠림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대체적이다. 당장 이번 기소를 “정치적 기소”로 보고 있는 공화당 지지층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결집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소 소식이 알려진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상승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 기소를 자신에 대한 민주당의 정치공세라고 국면을 전환하고 있는 것도 이를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은 당내 경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경쟁해야 하는 다른 후보들에겐 부담이다. 더힐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상승은 “트럼프의 도전자들을 박스에 가둘 수 있다. 그들은 트럼프와 차별화를 원하지만, 트럼프의 지지자들을 소원하게 할 여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공화당 지지층의 결집은 차기 대선 구도를 다시 ‘트럼프 대 반(反)트럼프’로 만들면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반트럼프 진영의 결집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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