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핫100’ 점령한 K팝의 서로 다른 성공방식
  • 김영대 음악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8 13:05
  • 호수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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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K‘팝’의 시대

요즘은 어딜 가나 ‘넥스트 K팝’ 혹은 ‘비욘드 K팝’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로 대표되는, 소위 3세대 아이돌들이 북미를 비롯한 세계시장을 점령하고, 이제 4세대 후발주자들이 론칭과 동시에 세계적인 스타로 주목받는 상황이 되면서 K팝 산업은 그들이 꿈꿔오던 세상에 훨씬 근접해 있는 느낌이다. 이렇듯 일견 낙관적으로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중에서도 K팝의 글로벌한 인기를 이끌어온 방탄소년단의 잠정적 공백은 누가 채울 것인가라는 질문은 가장 필연적이다.

방탄소년단 지민 ⓒ빅히트 뮤직 제공

‘포스트 방탄’의 차기 주자는 여전히 방탄소년단

아이러니하게도 방탄소년단의 잠재적 휴식기 이후 방탄소년단의 지배력은 오히려 더 단단해진 듯 보인다.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지배적인 팬덤 중 하나로 기록될 ‘아미’가 여전히 건재하고, 이들의 지원은 멤버들의 솔로 활동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민은 새 앨범 ‘FACE’를 내놓으며 새 기록을 썼다. 21세기 최고의 바이럴 송 중 하나인 싸이의 《강남스타일》조차 이루지 못했던 빌보드 핫100 차트의 정상을 차지했고, 동시에 어떤 의미에서는 미국 차트인 빌보드보다도 더 공고한 벽이라고까지 여겨지는 영국 오피셜 차트에도 8위에 오르면서 현재까지는 솔로 활동 시대 방탄소년단의 가장 큰 성공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한 시대를 지배했던 해외 보이그룹이나 틴 팝 아이돌 그룹들의 경우 그룹 활동의 시대가 지나고 나면 그 동력이 꺾이는 경우가 많지만 방탄소년단의 경우 그룹 활동의 휴식 와중에 멤버들은 오히려 그룹 활동에서 하지 못했던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일 기회를 얻으며 자연스럽게 그룹 이후의 다음 챕터를 열어가고 있다.

아이돌 음악 산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낯선 부분일 수 있으나 아이돌 그룹은 일정 시기가 지나면 그룹으로서보다는 다양한 개인의 합으로서 정체성이 더 강해지며 팬덤 규모나 양상도 개인을 위주로 확장된다. 음악적으로 보나 BTS라는 브랜드의 지속성으로 보나 이 편이 더 발전적이라는 사실은 이번 지민의 앨범을 통해서도 분명히 확인된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다소 어둡고, 일관된 컬러가 감도는 이 앨범은 아티스트 지민의 색다른 일면을 드러낸다.

정확한 시기를 알 수는 없으나 정국, 뷔 등 멤버 역시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향성을 통해 솔로 작 발표를 고민 중에 있을 것이다. 결국 BTS를 하나의 거대한 세계라고 봤을 때 그 지경은 오히려 그들이 《Dynamite》로 정점의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보다 더 넓어지고 있다. 이는 K팝 산업 전체를 봤을 때도 더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한다. 최근 몇 년간 K팝은 이 산업 자체가 반짝 인기가 아닌 20여 년간의 긴 사이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중이다. 다행히 소녀시대와 카라가 성공적으로 컴백했고, 밀레니얼의 아이콘 윤하가 그것도 신곡으로 역주행 열풍을 일으켰다. 여기에 멤버 모두가 군백기를 앞두고도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이어가는 방탄소년단의 사례까지 더해지면서 K팝 특유의 고관여 소비층, 그러니까 쉽게 무너지지 않는 공고한 팬덤의 지지를 통해 유례없는 긴 전성기의 가능성을 타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현상은 국내외 K팝 시장을 점령한 4세대 걸그룹들의 열풍과 중소 기획사 아이돌들의 약진이다. 메이저 기획사 혹은 그 산하 출신의 걸그룹 세 팀인 뉴진스(어도어), 에스파(SM), 르세라핌(소스뮤직) 등이 이 흐름을 앞서 이끌고 있다. 특히 데뷔 반년밖에 되지 않은 뉴진스는 ‘현상’이라고 불러도 좋을 새로운 트렌드의 주역이 됐다.

복잡함과 난해함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글로벌 청중 누구든 공감할 만한 동시대적 세련미와 간결한 호소력을 채워넣은 뉴진스는 K팝이 그간 취해온 ‘2등’ 혹은 ‘틈새’ 전략에 반하는 접근방식으로 K팝의 새로운 시대정신이 됐다. 팬덤의 폭발력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기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오히려 결과는 정반대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령 뉴진스의 빌보드 핫100 차트 성적은 《OMG》가 기록한 74위에 불과하지만 음악팬들이 느끼는 인기는 여타 톱10 곡의 위상에 뒤지지 않는다.

그룹 피프티피프티(FIFTY FIFTY) ⓒ뉴시스
그룹 피프티피프티(FIFTY FIFTY) ⓒ뉴시스

뉴진스 현상이 말해 주는 것들

SNS에는 이들의 춤과 노래를 따라 하는 유저들의 영상이 수없이 넘쳐나고 유명한 팝가수가 이들의 안무를 자신의 음악에 접목하는 등 차트 성적 그 이상의 화제성을 쉼 없이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이 인기가 대중적 인기의 지표인 ‘스트리밍’ 성적에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아이돌의 경우 K팝 커뮤니티 내의 인지도와 일반 대중 사이의 인지도 간에 격차가 큰 경우가 많았지만 뉴진스는 사뭇 다르다. 국내-해외, 대중-팬덤, 대중-평단 사이의 온도차가 크지 않다는 점은 뉴진스가 이끌어낸 매우 중요한 변화다.

최근 빌보드 핫100에서는 낯선 K팝 그룹의 이름이 포착됐다. 3월28일자로 100위에 올라 4월4일 94위로 상승한 노래 《Cupid》의 주인공 피프티피프티(FIFTY FIFTY)가 그들이다. 데뷔한 지 이제 4개월, 신생 기획사 어트랙트의 첫 걸그룹. 아직 국내 팬들에게 이름조차 생소한 이 그룹은 가요의 가장 주요한 인기 지표인 멜론을 거치지 않고 바로 빌보드 차트에 진입하는 믿기 힘든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방탄소년단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포착되기 시작한 해외발 K팝 인기 역수입 현상의 연장선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른 K팝의 대응전략과 맞물려 있다고 보는 쪽이 좋을 것이다. 최근 대중음악에는 ‘소셜 미디어 팝’이라는 독특한 하위 장르가 종종 거론되곤 한다.

SNS 유저들의 취향에 맞는, 그러니까 쉽게 들을 수 있고, 각자의 영상에 다양하게 활용하기 쉬운, SNS 시대의 쉽고 세련된 ‘이지 리스닝 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뉴진스 현상, 아이브의 대중성, 그리고 피프티피프티의 깜짝 성공도 모두 이 같은 흐름의 어딘가에 걸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현상이 흥미로운 건 ‘K팝’의 정체성에 대한 부분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K팝이 그동안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빠르게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었던 건 결국 ‘K’라는 정체성과 대형 기획사 중심의 브랜드 컬러를 강조해 왔던 전략이 주효했다. 하지만 음악의 국적이나 고전적 장르 구분에 관심을 두지 않는 새로운 청자들은 ‘K’팝스러움보다는 K‘팝’스러움을 요구하기 시작하고 있고, 그것은 어찌 보면 K팝이 그렇게 바랐던 ‘무국적’적이고 ‘혼종적’인 대중음악 세계의 진정한 참여자들일지 모른다. K라는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코스모폴리탄’ K팝의 시대가 생각보다 가깝게 다가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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