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2~3조원씩 쏟아지는 한전채…자금시장 ‘블랙홀’ 재현?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6 18: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달 들어 1조원 규모 회사채 발행 전망
전기요금 인상 없다면 추가 차입 불가피
필요성 동의하지만 결정 못 내리는 당정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 요금 민·당·정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 요금 민·당·정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전력의 회사채 발행 규모가 예사롭지 않다. 올해 1분기에만 8조원 넘게 한전채를 발행한 것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7% 늘어난 규모다. 문제는 전기요금 인상 여부에 따라 한전채 발행 규모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이후 불거진 채권시장 자금경색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정은 6일에도 협의회를 개최했지만 요금 조정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지난 4일 한국전력이 발행한 회사채(한전채) 수요예측에서 1조원이 넘는 자금이 몰렸다. 이날 수요예측에서 2년, 3년 만기에 각각 7900억원, 4400억원이 응찰해 2700억원, 2600억원이 낙찰됐다. 발행금리는 각각 3.99%, 4%로 결정됐다. 이에 더해 이번 주 내로 5000억원 안팎의 채권을 추가 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은 올해 들어 매달 4회(평균 9일 간격) 사채를 발행해 발전사에 지급하는 전력구입대금을 조달하고 있다. 올해 한전채 발행 규모를 보면 1월 3조2000억원, 2월 2조7000억원, 3월 2조900억원 등 1분기에만 8조100억원이 발행됐다. 매달 2~3조원의 한전채가 채권시장에 나오는 것이다.

올 1분기 한전채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 6조8700억원을 발행한 것과 비교하면 약 17%가 늘어났다. 전기요금을 지난해 세 차례(4·7·10월)에 걸쳐 h(킬로와트시)당 19.3원(21.1%) 오른 데 이어 올해 1월 h당 13.1원 인상했지만 원가 이하로 계속 공급하고 있는 터라 적자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한전채 잔액은 68조300억원으로 늘었다. 1년 전 기준 39조6200억원과 비교해 72%가 증가했다.

한전채 발행이 연일 이어지면서 지난해 말 레드랜드 사태로 촉발된 채권시장 자금경색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최우량(AAA) 등급인 한전채가 일반 회사채로 가야 할 수요를 빨아들이는 ‘구축효과’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서울 시내 전기·가스 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전기·가스 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연말 수준은 아니라지만 비우량채는 미매각 중

시장에선 우량 등급 회사채 발행이 원활히 이뤄지면서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지난 4일 AAA 등급인 SK텔레콤의 공모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도 1조원 이상의 자금이 몰렸다. 하지만 A급 이하의 비유량채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신세계건설(A)은 건설업 부실 우려로 지난달 28일 진행된 회사채 800억원어치 수요예측에서 100억원의 주문을 받는 데 그친 것이다. 신용등급 A등급의 GS엔텍은 700억원 모집에 120억원의 주문만 들어와 발행 목표액을 채우지 못했다. 모회사 GS글로벌의 지급보증에도 미매각을 면하지 못한 것이다. 

문제는 큰 폭의 전기요금이 없다면 한전채 발행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남은 하반기에도 전기요금 인상이 쉽지 않을 경우 한전은 추가자금 조달을 위해 한전채를 발행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지난해 하반기 5%대 후반의 고금리인 한전채가 과다 공급되면서 국내 채권시장의 수요를 잠식하고 국채와 시장금리의 동반 상승을 유발했던 상황이 재현될 우려가 높다”고 밝혔다.

이에 6일 전기·가스요금 민·당·정 간담회가 열렸지만 요금 조정의 윤곽은 드러나지 않았다. 이날 간담회에는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을 비롯해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과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이 참석했다.

박 정책위의장은 “전기·가스 요금은 제로섬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현재와 미래가 모두 윈윈할 대안을 찾아야 한다”며 인상의 묘를 찾는 모습이었다.

박 차관 역시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과 우리 금융시장 등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때 에너지 요금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다만 요금 조정 폭과 속도는 어떻게 할지 더 검토해야 한다”며 “오늘 논의된 사항들은 다음 요금 조정방안에 충실히 반영하겠다”고 덧붙였다. 2분기 요금 조정 방안 발표를 연기한 당정은 시간을 두고 인상 해법을 찾는 데에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