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선거제 화두’ 띄워놓고 묵묵부답인 이유는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3.04.11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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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대회서 드러난 ‘尹心’, 선거제 개편 논의 정국선 실종
“총선 앞두고 현실적 정치 셈법…입법권 침해 반발 우려도”

“선거가 너무 치열해지고 진영이 양극화됐다.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대표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2일 조선일보와의 신년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며 ‘선거제 개편’을 화두로 올렸다. 양당제의 폐해를 극복해야한다는 취지에서다. 윤 대통령의 발언에 정치권이 들썩였다. 이후 세 달 뒤, 여야는 국회 전원위원회(전원위)를 통해 선거제 개편 논의에 들어갔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국민의힘이 ‘중대선거구제’에 힘을 싣지 않는 분위기다. 되레 소선거구제 유지를 바라는 친윤석열(친윤)계 의원들까지 등장했다. 중요한 국면마다 ‘윤심’(윤 대통령 의중)을 따랐던 여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동시에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 운을 띄웠던 윤 대통령도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8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축사를 마친 후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8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축사를 마친 후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與 다수 “소선구제 유지해야”…尹 의견과 역행?

지난 10일 여야 의원들은 20년 만에 국회 전원위를 개최했다. 이들은 내년 총선에 적용할 선거제 개편안(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두고 치열한 난상토론을 펼쳤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대부분 소선거구제 폐지에 힘을 실었다. 대신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 ‘사표(死標)를 막자’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에서는 소선거구제 유지는 물론 21대 총선 이전의 비례대표제로 ‘원상복구’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토론의 주제인 3가지 결의안(▲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과 벗어나는 ‘비례대표제 폐지’ 목소리도 나왔다.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은 “현행 대통령제하에서는 소선거구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들은 소선거구제 유지 응답 비율이 훨씬 높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비례제 폐지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도 “제대로 된 연동형 비례제 도입이 어렵다면 차라리 원점으로 돌아가는 편이 낫다”고 역설했다.

이 같은 주장들은 윤 대통령이 신년에 밝혔던 정치개혁 의지에 역행한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선거제 개편과 관련해 신년인터뷰 이후 어떠한 메시지도 내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실도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는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해 5월 취임한 윤 대통령의 '1호 거부권'이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해 5월 취임한 윤 대통령의 '1호 거부권'이다. ⓒ연합뉴스

“선거제 개편 타이밍 늦어”…“尹의 관심 시들해졌을 수도”

정치권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일부러 말을 아끼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TK(대구·경북)를 중심으로 중대선거구제가 보수 표심 집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마이너스 정책’이란 인식이 확산하고 있어서다. 친윤계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은 이미 자기 지역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고 내년 공천이 더 중요한 문제”라며 “특히 국민의힘의 경우는 중대선거구제를 해야 하는 이유가 단지 수도권 의석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의원 다수가 몰린 영남권에선 중대선거구제를 시행할 경우 손해라서 소선거구제 유지의 목소리가 많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여권 내 ‘대통령실·검찰 출신’ 공천 잡음이 거센 상황에서 대통령이 선거구제 개혁까지 주도할 경우 당정 간 갈등이 커질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거구제로 또 대통령이 ‘감 놔라 배 놔라’ 하면 국회에서 ‘입법부 권한을 침해했다’며 반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당대회 같은 당내 행사도 아닌 입법부 행사에 침범하면 헌법 위반의 소지가 될 수도 있다”며 “대통령 입장에선 선거제 개편 관련 화두만 던져놓고 메시지를 내지 않는 게 맞는 방향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에는 윤 대통령이 선거제 개편 화두를 던진 ‘타이밍’이 아쉽다는 시각도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대통령 입장에선 양극단 정치구도랑 지역감정 해소하기 위한 국민적 대의명분에서 중대선거구제를 제시한 것 같다”면서도 “총선 1년 전에 갑작스레 선거구제 개편을 얘기하고 논의하면 국민들이 그 진정성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여야도 총선 앞두고 득실 따지며 계산할 것은 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선거제를 바꾸려면 대통령이든 국회의원들이든 기득권을 더 많이 내려놓은 후 이른 시기에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선거제 개편에 대한 윤 대통령 관심이 시들해졌을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한·일 정삼회담 이후 여권의 시선이 외교·안보 분야에 집중되고 있어서다. 안희철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윤 대통령이 당초 중대선거구제를 제기했을 때도 ‘중장기적으로 정치 질서를 개편하겠다’ 이런 깊은 구상 속에서 나온 것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며 “윤 대통령이 지금 상황에서 선거제 개편에 관심이 있을까 회의적”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여기에 현실적으로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계산에 더 무게가 갈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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