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실 특허청장의 3대 전략 “반도체 기술 유출 막으려면 사람 유출부터 막아야”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4.14 15:05
  • 호수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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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취임 1년 만에 반도체 기술 보호 정책 패키지 완비…다른 분야 확대 ‘박차’

‘반도체 특허 심사 기간 단축’과 ‘반도체 기업 퇴직 인력 특허 심사관으로 채용’ ‘반도체 전담 심사국 설치’. 이인실 특허청장(62)은 지난해 5월 취임 후 반도체 기술 보호책 3가지를 거침없이 시행했다. 윤석열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 움직임을 감안해도 정책 패키지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완성되는 건 이례적이다. 더군다나 법 개정, 관계 부처 설득 등 지난한 과정이 필요해 특허청 안팎에서 실현되기 어렵다고 평가했던 대형 정책들이다. 이인실 청장은 “반도체 기술 유출 우려가 점점 더 커지는 가운데 불가능하다는 판단에만 매몰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 등을 설득하고 특허청 내부를 독려한 끝에 조직·인력 개편 작업을 일단락했다”고 설명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이인실 특허청장이 4월7일 서울 강남구 특허청 서울사무소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반도체 기술 보호 위해 제도 대수술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부터 국내 반도체 관련 기업이나 연구개발(R&D) 기관, 대학 등이 우선심사제를 이용할 경우 기존(2022년 기준 평균 15.6개월 소요)보다 6배가량 빠른 평균 2.5개월 만에 특허 심사를 받게 됐다. 올해 2월에는 반도체 분야 전문임기제(5급 상당) 특허 심사관 30명이 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뽑혀 업계의 기대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어 4월엔 반도체 기술 특허만 전담 심사하는 반도체 심사 추진단이 주요 지식재산 선진국 중 최초로 만들어졌다. 

이 청장은 “반도체 산업은 기술이 전부다. 기술 유출로 인해 망하는 기업도 부지기수”라면서 “정책 패키지를 놓고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정부가 기술 보호를 위해 이렇게까지 발 벗고 나설 줄 몰랐다’며 굉장히 고마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반도체 등 산업기술 유출의 실제 피해액이 매년 2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며 “반도체뿐 아니라 다른 첨단 기술 분야 보호책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4월7일 서울 강남구 특허청 서울사무소에서 이인실 청장을 만나 반도체 등 산업기술 탈취에 대항한 치열한 방어 태세를 전해 들었다. 

특허청의 반도체 기술 보호정책에 대한 업계 반응이 뜨겁다. 그만큼 기술 유출 문제가 심각함을 방증한다. 

“기술은 반도체 산업의 전부이기 때문에 유출되면 피해가 (연구개발비, 예상 매출액 등) 겉으로 드러난 부분을 초월한다. 기술이 유출된 후 기반을 잃고 망하는 기업도 숱하다. 이런 반도체 기술 유출 문제는 계속 반복돼 왔지만, 사회적 문제로 급부상한 건 지난해 하반기 들어서다. 윤석열 정부의 반도체 기술 ‘초격차’ 전략이 본격화하면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모든 산업이 재편되고 있는 영향으로 보인다.” 

특히 반도체 업계 베테랑 연구원 30명을 특허 심사관으로 임용한 게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어떻게 추진하게 됐나. 

“지난해 5월 취임하자마자 특허청 각 부서의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관련 아이디어를 처음 접했다. 한정된 인력으로 부쩍 늘어난 반도체 특허 심사 업무를 감당하기 버거워져 심사 기간도 자꾸 늦어지는 상황을 두고 나온 여러 복안 중 하나였다. 경직된 공무원 사회에서 추진은 물론 논의된 적조차 없는 제도였기에 ‘실현 불가능’이란 부연이 뒤따랐다. 그러나 갈수록 늘어나는 반도체 기술 유출 우려를 불식하고 (공무원 증원에 따른 부담 없이) 특허 심사관을 충원하기에 이만한 게 없다고 확신했다. 결국 그해 6월부터 정책 마련에 착수해 11월 채용 공고를 냈다.” 

해외로 갔던 인재 4명도 특허 심사관에 지원 

반신반의하며 뚜껑을 열어 보니 결과는 상상 이상의 ‘대박’이었다. 30명을 채용하는 공고에 무려 175명이 몰려 6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나타냈다. 보통 2대 1이나 3대1 정도인 전문임기제 특허 심사관 채용 경쟁률을 월등히 앞선다. 비록 합격하진 못했으나 중국 등 해외 기업으로 갔다가 이번 채용 공고를 보고 문을 두드린 반도체 연구원도 4명이나 됐다. 민간 대비 낮은 급여와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임기제 공무원이라는 특성상 지원이 저조할 수도 있다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두 달여 동안 채용 전형을 진행해 올해 2월 최종적으로 뽑은 30명의 반도체 분야 평균 경력은 23년9개월, 평균 연령은 53.8세, 석·박사 학위 보유율은 83%, 현직자 비율은 90%였다. 이들은 4월17일부터 실전 심사에 돌입한다. 이미 반도체 설계·공정·소재 등 세부 기술 분야별 부서에 나뉘어 배치된 상태다. 향후 기업들이 특허 심사 건당 지불할 수수료는 심사관들의 급여를 충당하고도 한참 남을 전망이다. 

해외로 갔던 인재까지 국내로, 그것도 공무원으로 ‘유턴’을 원했을 줄은 몰랐다. 

“채용 공고를 낼 때 ‘반도체 전문가의 2막은 특허 심사관으로’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반도체 특허는 나라를 지키는 핵심 특허라는 점을 강조했다. 해외로 가기 전까지 한국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사람들에게 다시 나라를 위해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특허청 제공
특허청이 반도체 분야 전문임기제 특허 심사관 채용 공고를 내면서 공개한 그래픽 ⓒ특허청 제공

반도체 분야 핵심 인력의 해외 이직 동향을 전해 준다면.

“반도체 기술 연구의 사이클이 굉장히 빠른 탓에 사기업 연구원들은 50대 초중반이면 대거 퇴직한다. 이들은 중국과 인도 등 반도체 경쟁국 기업들의 타깃이 된다. 반도체 설계도면을 빼돌리는 등 적극적인 기술 유출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이들이 해외 기업으로 스카우트되면 머릿속 기술은 고스란히 이전된다. 기술 유출을 막으려면 사람 유출부터 막는 게 절실한 이유다.”

퇴직 인력의 해외 유출 문제로 시름하던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특허청이 해당 제도를 더욱 활성화해 주길 원하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우수한 연구원을 퇴직시킬 수밖에 없고, 이들이 속수무책으로 해외로 유출되는 상황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는 와중에 묘수가 나와 기쁘다”면서 “특허청이 중단 없이 계속 제도를 이어가 많은 퇴직 인력이 해외로 가지 않고 국내에서 기술 보호에 역량을 쏟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첨단 기술 보호책, 다른 분야로도 확대 

특허청은 올 하반기에 민간 출신 반도체 특허 심사관 37명을 추가로 뽑을 계획이다. 성과를 분석하며 바이오, 이차전지 등 여타 산업의 퇴직 인력도 특허 심사관으로 흡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반도체 특허 심사관이 1000여 명은 더 뽑혀야 국내 기업들이 기술 유출 우려 없이 핵심 기술을 적기에 보호받을 수 있다”며 “반도체뿐 아니라 다른 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전문임기제 특허 심사관을 서둘러 뽑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허청의 관심이 반도체에 너무 쏠린 건 아닌가. 

“현재 기업들이 가장 절실하게 도움을 호소하고 있는 분야가 반도체라서 먼저 지원을 시작했다. 산업계 의견과 심사관 증원 여부 등을 신축적이고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문임기제 특허 심사관 채용과 우선심사제 등 지원책을 여타 산업으로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최근 국가 간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모든 산업 분야의 기술 탈취 우려가 커져 왔다. 

“그렇다. 겉으로 드러난 피해액만 지난 5년 동안(2018년 1월~2022년 12월) 25조원 정도일 것으로 추산하는데, 실제론 (모든 유·무형 피해를 합산하면) 연간 22조원에 달하리라 생각한다.” 

군사안보와 경제안보의 구분도 모호해지는 추세인데, 이에 관한 대책이 있나. 

“비밀 대상 기술을 경제안보와 관련한 것으로 확대하는 등 특허법 개정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은 필요한 경우 해외 특허 출원을 제한하거나 발명을 비밀로 취급하는 비밀특허제도를 운영한다. 미·중과 달리 우리나라는 비밀 대상 기술이 국방 관련 기술로 한정돼 있고 벌칙 규정도 없어 경제안보 기술의 해외 유출 방지에 한계가 있다. 산업계, 관계부처 등과 충분히 소통해 비밀 대상 기술 범위를 선정할 예정이다.” 

이인실 특허청장이 4월7일 서울 강남구 특허청 서울사무소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이인실 특허청장이 4월7일 서울 강남구 특허청 서울사무소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 첫 민간 출신 특허청장, ‘속전속결’로 제도 개선 

이인실 특허청장은 특허청 개청 이래 민간 출신으로는 처음 특허청장 자리에 올랐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출신 공무원들이 주로 특허청 수장을 맡은 바 있다. 그는 최초의 여성 특허청장이기도 하다. 

1985년 국내에서 여성으론 세 번째로 변리사 시험에 합격한 이 청장은 40년 가까이 지식재산 분야에서 쭉 활동해 왔다. 이 청장은 취임 후 3대 반도체 기술 보호책을 속전속결로 추진하는 동시에 다른 제도 개선 작업에도 박차를 가했다. 핵심은 자신의 ‘비즈니스 마인드’를 전파하는 것이었다. 그는 “변리사로 활동하며 외부에서 바라본 특허청과, 청장이 돼 내부에서 살펴본 특허청은 굉장히 달랐다”며 “한국이 지식재산 5대 강국임에도 주무부처인 특허청은 주요국 대비 부족한 심사 인력, 과중한 업무량으로 인해 역량을 충분히 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이 청장은 직원들 의견을 청취해 집중근무시간제 도입, 민원 응대 절차 개선 등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특허청 본연의 업무인 심사·심판에 부담을 주는 일을 줄여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 청장은 더 나아가 특허청 위상 강화를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특허청은 5억3000만 건에 이르는 특허 데이터를 기초로 기술 개발 방향에 가장 전문적인 의견을 낼 수 있는 부처임에도 과학기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는 측면이 있다”면서 “이는 기술패권 시대의 국가 경쟁력 확보와 직결되는 문제다. 국가 R&D 전 과정에서 특허청의 역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적인 비전을 묻자 이 청장은 대뜸 “지금이 굉장히 재미있다”고 입을 뗐다. 그러고 보니 인터뷰 내내 ‘재미있다’는 표현을 가장 많이 쓴 그다. 이 청장은 “민간에서 축적한 수많은 노하우와 아이디어를 공무원이 되어 정책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고 즐겁다”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는 기술 보호와 육성 노력이 얼마나 중요하고 자랑스러운 일인지를 특허청 안팎에 일깨우며 계속 열심히 일해 보려 한다”고 했다. 

 

■ 이인실 청장 프로필 

△1961년 부산 출생 △1983년 부산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1985년 제22회 변리사 시험 합격 △1995년 프랑스 로베르슈맹법과대학원 수료 △2001년 이화여대 대학원 법학 석사 △2005년 미국 워싱턴대 법학 석사 △2011년 고려대 대학원 법학 박사 △1985~94년 김앤장법률사무소 변리사 △1996~2022년 청운국제특허법인 대표 변리사 △1996~2001년 한국여성변리사회장 △2013~15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 △2015 대한변리사회 부회장 △2015~17년 세계전문직여성 동아시아지역 의장 △2015~18년 국제변리사연맹 한국협회장 △2019~22년 한국여성발명협회장 △2021~22년 지식재산포럼 회장 △2022년~ 제28대 특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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