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근절, 중개사협회 ‘법정단체’ 승격하면 해결될까?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3.04.2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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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중개인 범법 정황 포착해도 협회 차원 ‘단속’ 불가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자정 노력하려면 승격 필수”

‘빌라왕’ 사건이 발생한 서울 화곡동, ‘건축왕’ 사건으로 들끓은 인천 미추홀구 일대 지역 공인중개사들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 유명했다”는 말이 공통적으로 나온다. 사기범이 최소 수백 건에서 수천 건의 매물을 쓸어 담고 비싼 가격에 전세 계약을 맺는 동안 지역에선 수차례 경고음이 울렸다는 것이다.

해당 사건에 대해 사전에 위험성을 인지하고 단속에 나서는 일은 불가능했을까. 업계에선 사전 단속은 사실상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공인중개업소를 관리‧감독하는 기구에 단속의 권한이 없는데다, 경찰이나 지자체는 사후 조치에만 관여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전세 사기 근절 대책의 일환으로 한국공인중개사협회의 ‘법정단체’ 승격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전세 사기 피해가 잇따르는 가운데, 공인중개사 협회 측에선 해결책의 일환으로 법정단체 승격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전국적으로 전세 사기 피해가 잇따르는 가운데, 공인중개사 협회 측에선 해결책의 일환으로 법정단체 승격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중개사 사기 가담 정황 포착해도 사전 단속 불가능”

25일 조원균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홍보팀장은 시사저널과 통화에서 “사실 대규모 전세 사기 정황은 그 지역에 있는 공인중개사들이 가장 잘 안다. 나쁜 짓을 제일 먼저 포착할 것”이라면서도 “현재 시스템 상에선 이 같은 첩보를 입수하고도 고발에 나설 수 없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국내 최대 공인중개사 협회인데도 의무 가입 조건이 없기 때문에 협회 차원의 지도‧관리나 단속에 나설 수 없다는 게 조 팀장의 설명이다. 그는 “대표적으로 변호사협회의 경우 소속 변호사가 사해 행위가 가담하면 업무 정지나 자격 정지 처분으로 자체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는데, 공인중개사협회는 법정단체가 아니어서 그럴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조 팀장은 “문제가 있다는 첩보를 받아서 해당 공인중개업소에 찾아가면 협조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경찰이나 시청에 고발하려면 증거를 수집해야 하는데, 서류 하나 들춰보기 어려운 상황이라 증거수집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법률상으로 중개인의 중대 과실을 입증할 책임은 세입자에 있다. 조 팀장은 “협회 차원의 자체 조사도 어려운데 세입자가 증거를 수집하고 입증하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협회 측은 법정단체 승격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협회를 법정단체로 승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해당 법안은 수개월째 국토교통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협회 측은 “하루라도 빨리 협회가 법정단체로 승격돼야한다. 그러면 이미 협회 차원에서 조직해놓은 시도별 지도단속위원회를 통해 불법 증거를 수집하고 경찰이나 시청에 고발 조치를 할 수 있어 전세사기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 화곡동 빌라왕 사건이나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사건 등 조직적 전세 사기 사건에 일부 공인중개사가 가담한 정황이 드러나 수사를 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다세대·연립(빌라) 일대 ⓒ 시사저널 최준필
서울 화곡동 빌라왕 사건이나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사건 등 조직적 전세 사기 사건에 일부 공인중개사가 가담한 정황이 드러나 수사를 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다세대·연립(빌라) 일대 ⓒ 시사저널 최준필

“계약서 도장 찍기 전 임대인 신용정보 확인하세요”

다만 중개사협회의 법정단체 승격 문제는 법적 영역이라 통과 여부가 불투명한데다 시일도 오래 걸려, 당장의 해결책이 될 순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에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측은 자정 노력의 일환으로 중개사가 임대인의 신원조회를 쉽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입장이다.

협회 측에 따르면,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이달 초부터 자체 계약서 프로그램 ‘한방’에 ‘임대인 신용조회’ 기능을 신설했다.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 임대인의 신용도를 확인해 보증사고나 거래사고의 위험성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조 팀장은 “임대인이 다른 주택을 구입한 내역은 없는지, 사채나 비금융권을 사용한 이력은 없는지, 이자를 제대로 못 갚고 있거나 세금 체납을 한 사실을 한 적은 없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행법상 신용정보 조회는 개인정보에 해당하기 때문에 임대인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조 팀장은 “중개인이나 세입자가 자체적으로 임대인의 신용정보 조회를 하는 것은 불법에 해당한다”며 “계약서를 쓰기 위해 임대인과 임차인이 만났을 때 그 자리에서 임대인 동의하에 중개사가 신용조회를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엔 중개업자의 공인중개사 자격증과 신분증을 확인해야 하며, 공인중개사 사무소가 정상적으로 영업 중인 곳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해당 중개업소가 적법하게 운영 중인 업장인지 여부는 한국공인중개사협회(kar.or.kr)나 씨리얼(seereal.lh.or.kr)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공인중개사 사무사 사업자등록증 사본을 받아 국세청 홈페이지(nts.go.kr)에서 휴‧폐업 여부를 조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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