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선 내치-달리는 외교’ 尹 1년…내년 총선 향해 “속도 더 낸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3.05.12 12:05
  • 호수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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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反文 기조’…‘탈원전 정책’ 폐기 ‘한미 동맹’은 더 밀착
지지율 30%대 갇혀 국정 동력 ‘흔들’…‘3대 개혁’ 시작도 못 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을 맞았다. 지난해 5월10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년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정치적 성향과 평가 기준 등에 따라 성적표는 다르게 매겨질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윤 대통령은 전임 문재인 정부와는 뚜렷하게 다른 길을 걸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 지우기에 올인하는 모습이었다. 

윤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 대신 민간 주도의 시장경제 노선을 채택했다.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했다. 북한과의 대화를 우선으로 하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는 외교·안보 노선도 폐기했다. 대신 한미 중심의 가치동맹을 추진하고, 경색됐던 한일 관계도 먼저 손을 내밀며 개선을 시도했다. 북한의 거듭된 도발에는 한미 연합훈련 강화로 맞섰다. 모두 이전 정부와 반대되는 양상들이다.

민심은 윤석열 정부의 1년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지지율로 표현되는 성적표는 좋지 않다.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대다수 여론조사 기관에서 긍정평가 30%대, 부정평가 60%대로 ‘저공비행’ 중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민심이 싸늘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3월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있다. ⓒ뉴시스

문재인 정부와는 다른 길…국정 기조 대전환

차가운 민심은 어두운 경제지표 때문일 수 있다. 수출은 7개월 내리 역성장 중이고, 무역수지 연속 적자는 14개월째다. 외환위기 이후 가장 긴 적자 행진이다. 반도체 수출은 41%나 감소했다. 원화는 나 홀로 약세다. 고환율과 고금리, 고물가의 3고 현상으로 국민 살림살이는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어려운 경제 상황이 지지율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수 있고, 반대로 정부의 경제·민생 관련 미흡한 대처가 낮은 지지율을 불러왔을 수도 있다.

지금 중요한 점은 윤 대통령과 당·정·대(대통령실)가 지난 1년을 어떻게 평가하고, 다음 4년을 어떻게 보낼지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은 흥미로운 메시지를 내놨다. 윤 대통령은 5월2일 기자간담회에서 “변화의 속도가 느린 부분은 다음 1년에 더 속도를 내고, 변화의 방향을 조금 더 수정해야 하는 것은 수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 기존의 국정 노선에 더 박차를 가하겠다고 들리기도 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국정 기조는 바꿀 수 있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의중은 ‘방향 수정’이 아닌 ‘속도 조절’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현 정부가 전임 정부의 비정상적 부분을 정상화하고 있는 만큼 이를 국민에게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게 더욱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이에 윤 대통령은 내년 총선까지 ‘강한 정부’라는 콘셉트를 갖고 국정 장악력을 한층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새로운 국정 기조에 맞추지 않고 애매한 스탠스를 취한다면 과감하게 인사 조치하라”는 취임 1주년 메시지도 이런 기조의 일환이라는 게 여권 고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윤 대통령은 조만간 소규모 개각을 통해 공직사회 기강을 다잡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윤 대통령은 지난 1년을 스스로 어떻게 기억하고 평가하고 있을까. 바로 여기에 내년 총선까지의 여권의 모든 전략과 기조가 녹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권의 운명이 여기에 달린 셈이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6월29일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IFEMA)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지층에서도 “추진 방식이나 과정에 아쉬움”

‘정치 신인’ 윤 대통령은 복합위기라는 대외 환경 속에서 취임 초를 시작했다. 도전의 연속이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신냉전 등 세계사적 대전환의 위기 속에 북한은 날로 핵·미사일 개발을 고도화하며 위협 수위를 높였다. 군사적 안보의 위협 말고도 빠르게 재편되는 글로벌 공급망 변화 등 급변하는 대외 경제 질서에도 대응해야 했다. 

윤 대통령의 선택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는 달랐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 강화’를 최우선 외교·안보 기조로 삼았다. 막혀 있던 대일 관계를 전향적으로 풀어 한·미·일 3각 협력의 토대를 만들었고, 한미 동맹을 강화해 ‘핵협의 그룹’을 창설하고 북핵 억제력을 좀 더 실질화하려고 노력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선의에만 기댔던 대한민국 안보를 탈바꿈했다”며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닌 적의 선의에 기대는 평화는 가짜”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에게 외교·안보 분야는 국정 과제 중 각별하다. ①여소야대라는 구조적 난관을 우회해 성과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분야가 외치인 데다 ②사실상의 국정 기조로 내세우는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가시적으로 지지층에게 보여줬고 ③최소한 집토끼(지지층)에게는 방향과 속도 모두에서 지지를 얻어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5월9일 국무회의에서 지난 1년간의 국정을 돌아보며 “외교·안보만큼 큰 변화가 이루어진 분야도 없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실제 5월 1주 차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긍정평가하는 이유 1위와 2위는 외교와 국방·안보다.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 상당수가 현 정부의 외교·안보 기조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미국 국빈방문에 대한 평가도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됐다’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의견이 각각 42%로 팽팽하게 나타났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에 머물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여권 입장에선 나쁘지 않은 평가다. 

숙제도 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을 가장 까먹고 있는 분야도 역시 외교·안보이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부정평가하는 이유 1위가 외교, 3위가 일본 관계·강제동원 배상 문제로 나타났다. 

야권 지지층과 중도층 일부는 한·미·일 공조 체제에 빠르게 편입되는 만큼 북·중·러와의 진영 대결에 휩쓸려 결국엔 신냉전의 최전선에 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는다. 한일 관계 개선을 강조하지만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외교가 거듭되고 있고,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에 별다른 대응을 못 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최근 유독 주요국 통화 중 한국의 원화만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되는 현상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에 대한 우려와 함께 정부가 키운 지정학적 리스크가 반영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 야권 지지층이 반대하는 것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전문가 집단과 윤 대통령 지지자 사이에서도 “국정 방향은 옳지만 추진 방식이나 과정에 아쉬움이 있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데 있다. 정책 추진의 핵심 동력인 소통과 태도, 공감 능력, 인사(人事) 등에서 허점을 보인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도청 의혹이 논란이 됐을 때나 강제징용 문제를 풀어나갈 때도 상대국과의 협상에 공을 들이는 만큼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고 소통하려는 데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 이런 과정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런 지적은 외교·안보 분야를 넘어 국정 전반에 대해 제기되고 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최근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여론과 멀어지면 어떤 정책도 추동력을 받기 어렵다. 국민과 다양한 채널로 소통하면서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구해야 하는데, 이런 면에서 윤석열 정부가 충분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대한민국호의 방향키를 지난 정부 때와 다르게 바꾼다면, 그 배에 올라탄 국민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줘야 불안하지 않고 불만이 생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야당과의 협치’와 ‘국민과의 소통’ 요구 높아

평가가 엇갈릴지언정 윤 대통령은 그래도 외치에서는 지난 1년간 존재감을 보였다. 반면 내치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법안은 144건 중 36건만 통과됐다. 민생 개선이나 경제 활성화 등에서도 큰 성과를 냈다고 보긴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취임 때 약속한 연금·노동·교육 등 3대 개혁은 첫발도 못 뗐다.

윤 대통령은 여소야대의 벽을 내치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로 든다. 최근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전세·금융 관련 사기 사건도 전임 정부 때 이념에 치우친 정책 때문에 잉태됐다고 주장한다. 여권 지지층에는 소구력 있는 논리이자 메시지일 수 있다. 문제는 최근 발표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내년 총선 구도가 ‘국정 안정론’보다는 ‘정권 심판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윤석열표 개혁’에 야당이 협조하지 않는 상황을 환기시키면서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 평가를 받겠다고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여당은 물론 보수언론에서도 공통적으로 윤 대통령에게 ‘야당과의 협치’와 ‘국민과의 소통’에 좀 더 힘써줄 것을 요구한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것처럼 내년 총선을 ‘윤석열 브랜드’로 치러 승리하려면 국민이 체감하는 국정 성과가 요구되는데, 이를 위해선 최소한 여소야대 정국 속 야당과의 협치나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낼 국민 여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내각과 대통령실 참모진에 대한 인사 쇄신을 통해 역량을 강화하고 지지 기반을 넓히는 일도 중요하다는 조언도 잇따른다. 

즉 윤 대통령에게는 총선 승리를 위해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 셈이다. ‘통합의 길’과 ‘개혁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국민을 한데 묶어 상대편도 끌어안고 가는 방향이다. 국정 기조에 대한 속도 조절이나 방향 수정이 요구될 수 있는 길이다. 반면 후자는 상대적으로 국민에게 옳은 방향을 제시하고, 그 길에 지지층을 묶어 가는 방향이다. 국정 기조의 방향 전환은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빨리 가자고 속도를 더 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후자의 길을 확실히 택했다. “강 위에 배를 타고 가는데 배 속도가 너무 느리면 물에 떠있는 건지 가는 건지 모른다.” 윤 대통령은 5월10일 취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이런 비유를 들며 “속도를 더 내야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공직 기강 다잡기 기조와 함께 ‘정부·대통령실 2기 인적 개편’으로 속도를 더 내기 위한 동력을 찾을 방침이다. 일각에선 현 정부와 코드를 충분히 맞추지 못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한화진 환경부 장관 등을 시작으로 개각이 시작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속도를 분명히 택했다. 배의 속도는 물론 방향을 정하는 것은 리더(지도자)의 몫이다. 그리고 그 배를 띄울 것인지 뒤집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물(민심)이다. 11개월 후 총선에서 확인될 결과지만, 그 주사위는 바로 오늘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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