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공개는 회피…“언론 앞이라 꺼려져”
몬테네그로에서 위조 여권을 사용한 혐의로 체포돼 기소된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가 현지 법원에서 무죄를 주장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빚어진 테라·루나 폭락 사태는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총 50조원이 넘는 피해를 입힌 일명 희대의 사기극으로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권씨와 그의 측근 한아무개씨는 11일(현지 시각)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공문서 위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고, 법원에 보석을 청구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상·하의 검은색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법정에 선 권씨는 위조 여권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나는 무죄"라며 "나는 코스타리카에서 적법하게 취득한 여권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권씨는 "코스타리카 정부의 입장을 듣고 싶다"며 "코스타리카 정부에 공식적으로 여권 자료를 요청해 확인하길 바란다. 그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전부"라고 첨언했다.
권씨 등 두 명은 각각 40만 유로(한화 약 5억8000만원)의 보석금을 통해 보석을 요청했다. 그는 재산 규모를 묻는 베치치 판사의 질문에 "한국에 아파트 1채가 있다"고 답변했다. 권씨는 판사가 거듭 재산 규모를 묻자 "언론 앞에선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판사는 권씨가 재산 규모를 밝혀야 보석과 관련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며 재산 규모를 계속 숨길 경우 향후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권씨는 "한국에 있는 아파트는 300만 달러(한화 약 40억원) 정도 된다"며 "아내와 공동명의"라고 했다.
그는 "다른 재산은 유동 자산이라서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며 "내 회사에 대한 지분도 이 회사가 주식시장에 상장되지 않은 회사라서 얼마만큼의 '밸류'(value·가치)가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권씨는 법정에서 영어로 진술했다. 셀만 아조비치 통역사가 몬테네그로어로 진행된 재판 과정을 권씨 등에게 영어로 설명했다.
권씨의 변호인 브란코 안젤리치는 판사에게 재판정에 있는 취재진을 2~3분 동안 퇴정시킨다면 재산 규모를 밝히겠다 했지만, 판사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권씨 등의 보석 청구에 대해 하리스 샤보티치 검사는 이들이 은닉한 재산에 비해 보석금 규모가 턱없이 적고, 이들에게 인터폴 적색 수배가 내려진 만큼 보석 허용 시 도주 우려가 있다며 보석을 강하게 반대했다.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은 아직 권씨 등에 대한 보석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현지 언론은 사흘 이내에 보석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전했다. 검사와 피고인 양측의 진술을 모두 들은 판사는 오는 6월16일 다음 재판을 열겠다고 밝혔다.
앞서 권씨 등은 지난달 23일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 위조 여권을 갖고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다 몬테네그로 경찰에 검거됐다. 당시 현지 경찰은 권씨 등이 사용하던 코스타리카 여권이 위조된 것임을 확인하고 체포했다.
권씨는 테라·루나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지난해 4월 싱가포르로 출국한 뒤 도피생활을 해왔다. 이후 UAE를 거쳐 세르비아에 머물던 권씨는 좁혀오는 수사망을 피해 세르비아 인접국인 몬테네그로로 넘어와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 위조 여권을 사용하려다 체포됐다.
권씨는 몬테네그로에서 사법 절차가 종료되면 다른 나라의 법정에도 서야 하는 상황이다. 권씨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 싱가포르 등이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